제20대 총선 통해 친문 세력 형성…대권 재수에 성공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대한민국은 패자 부활이 어려운 나라라고 한다. 두 번째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는 예외다. 1987년 이후 여덟 차례 대선이 있었다. 여덟 명의 패자가 나왔다. 하지만 그 중 네 명은 재도전 기회를 얻었다. 우리나라 정치는 유독 패자 부활이 활발한 분야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그러나 5년 후,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치러진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당선되며 ‘재수’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제20대 대선에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했다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문 대통령의 뒤를 따를 수 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역사는 힌트를 준다. <시사오늘>은 제18대 대선 패배 후 문 대통령의 행보를 돌아보며 이 전 후보의 미래를 짐작해봤다.
대선 패배 후 잠행한 문재인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승리가 확정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서울 여의도 당사로 나와 패배를 인정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국민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 주실 것을 기대한다. 국민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주시길 바란다”는 게 그가 남긴 말이었다.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민주당 내에선 ‘친노(親盧) 책임론’이 터져 나왔다. 박지원 원내대표와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사퇴했지만 비주류 측은 ‘친노 프레임’을 극복해야 한다며 친노 인사들의 2선 후퇴를 주장했다. 결국 민주당은 대선 9일 후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주류 박기춘 의원을 선출하며 친노 책임론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통합당이 28일 대선 패배 후 당을 추스를 신임 원내대표로 박기춘 의원(3선·경기 남양주을)을 선출했다. ‘범친노(친노무현)’를 중심으로 한 주류가 지원한 신계륜 의원(4선)은 ‘친노 책임론’의 벽을 넘지 못했다. 친노 세력은 1월과 6월 각각 한명숙·이해찬 대표, 9월 문재인 대선후보를 만들어내며 당내 주류로 부상했으나 대선 패배 이후 입지가 약화됐다.
2012년 12월 28일 <세계일보> 민주 새 원내대표 비주류 박기춘…대선 패배 친노 심판
2013년 5월 4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비주류 대표격인 김한길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2014년 3월에는 민주당이 새정치연합과 합당함으로써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수립됐다. 김한길과 안철수의 성향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 시기 민주당은 비노(非盧) 세력이 주류로 올라선 셈이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2일 통합신당 창당을 선언한 데 대해 친노(친노무현)계는 일단 공식적으로는 환영했다.
친노계 좌장인 문재인 의원은 “양측이 통합에 합의하고 선언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기초선거 무공천을 결정한 데 대해서도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노계 중진인 한명숙 전 대표도 트위터에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은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드리는 훌륭한 결단”이라고 환영했다. (중략)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김 대표가 안 위원장과 손을 잡고 친노만 쏙 빼는 통합신당을 구상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문 의원이 사실상 2017년 대선 재도전을 선언한 마당에 차기 대선 도전 의사가 분명한 안 위원장을 불러들인 데 대해서도 문 의원을 대선후보군에서 배제한 것 아니냐는 격앙된 분위기도 감지된다. 당 관계자는 “통합은 야권의 지상명령인 만큼 친노가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4년 03월 03일 <동아일보> 친노, 겉으론 “환영” 밝혔지만…
안철수·김한길 체제 붕괴 후 전면 등장
당시 국회의원이던 문재인은 의정 활동에만 전념했다. 이따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과거만큼의 영향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30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완패, 김한길·안철수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문재인의 입지는 다시 넓어지기 시작했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몰락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차기 대표를 노리는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 임기 2년의 차기 당 대표는 2016년 4월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차기 대권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계파 간 무한투쟁이 예상된다.
우선 친노무현계 문재인 의원의 당권 도전설이 나온다. 당이 위기상황임을 감안해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선두권을 다투는 문 의원이 전면에 나서 강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논리다. (후략)
2014년 8월 2일자 <서울신문> [7·30 재보선 후폭풍] 새정치연 차기 당권주자 벌써 ‘꿈틀’
실제로 친노 책임론에 밀려 잠행하던 문재인은 7·30 재·보궐선거 이후 보폭을 넓혀나갔다. 2014년 8월 19일부터 28일까지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 씨와 함께 단식투쟁을 벌였고, 9월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에는 위원으로 참여하며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에 문재인·박지원·인재근·정세균 의원이 선임됐다. 문희상 위원장과 당연직인 박영선 원내대표를 포함해 6명으로 꾸려진 비대위에는 각 계파 수장들과 차기 당권주자들이 가세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실상 ‘과두정’ 체제를 꾸리게 됐다. (후략)
2014년 9월 21일 <매일경제> 새정치 비대위원에 문재인·정세균·박지원·인재근
11월에는 차기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대표 임기가 2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 당대표는 제20대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였다. 그리고 2015년 2월 8일. 문재인은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당선되면서 다시 당권을 거머쥐었다.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패한 지 2년 2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당권을 거머쥠에 따라 대권 재수를 선언한 그의 행보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표가 지난 18대 대선 패배의 책임에서 제기된 당권·대권 분리 공세를 이겨내고 대권 조기 검증대인 당 대표 자리에 오르면서 당내 대권주자들과 격차를 벌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5년 2월 8일 <서울경제> [새정치연합 새 대표 문재인] 탄력받는 대권 재수 행보
위기의 문재인, 총선 승리로 돌파
그러나 ‘대권 재수’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대표 당선 후 치러진 4·29 재·보궐선거와 10·28 재·보궐선거에서 모두 참패하면서 ‘문재인 책임론’이 불거졌던 까닭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4·29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4석 중 1석도 획득하지 못했고, 10·28 재·보궐선거에서도 광역의원 2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전남 신안군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 후보 2명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당 비주류 의원들에게 “압도적으로 재신임을 받지 않으면 물러나려고 했지만 지금은 사퇴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3일 유성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10·28 재보선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문 대표는 권노갑 상임고문, 문병호·황주홍·김동철·최원식·유성엽 의원 등과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유성엽 의원은 문 대표 면전에서 “재보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후략)
2015년 11월 3일 <매일경제> 野 비주류, 文 면전에서 “사퇴하라”
급기야 12월에는 안철수가 탈당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대표로서 내분을 막지 못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비주류 의원들이 대거 탈당에 가담하면서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야권 분열 속에서 치러야 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이에 문재인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 카드’를 꺼내들면서 반전을 모색했다.
삼고초려를 통해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라는 깜짝 카드를 성사시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대표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동안 당내 비주류 진영을 중심으로 당 내홍 수습을 위해 문 대표 사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터라, 그의 거취 역시 더민주의 향후 행보에 절대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14일 김종인 전 의원의 선대위원장 영입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앞으로 통합의 틀이 마련되면 당 대표직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씀 드렸다”며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야권 대통합의 물꼬를 트기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후략)
2016년 1월 15일 <한국일보> ‘김종인 카드’ 성사시킨 문재인의 앞날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참패했으나, 수도권에서 싹쓸이에 가까운 승리를 거두며 원내 제1당에 등극했다. 무엇보다도 제20대 총선을 통해 문재인이 영입한 인사들이 대거 국회로 진입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이때 국회에 입성한 친문(親文)이 ‘대권 재수’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4·13 총선이 끝나고 정치권이 대선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대선주자들의 총선 성적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총선은 대선 레이스의 시작점 성격이 짙었다. 주자들의 대권가도에 힘을 받기위해서는 자신의 측근을 한 명이라도 더 여의도 국회에 입성시켜야 한다. (중략)
야권의 약진과 더불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됐다. 기존 윤호중(경기 구리), 김경협(경기 부천원미갑), 박남춘(인천 남동갑), 김태년(경기 성남수정), 홍영표(인천 부평을), 전해철(경기 안산상록갑), 윤후덕(경기 파주갑)이 그대로 돌아왔고, 참여정부 당시 행정관을 지낸 인사들도 더 늘어났다.
강병원(서울 은평을), 황희(양천갑), 박재호(부산남을), 전재수(부산 북강서갑), 최인호(부산 사하갑), 김해영(부산 연제), 김경수(경남 김해을) 당선자가 당선됐다.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들도 대거 당선됐다. 박주민(서울 은평갑), 손혜원(서울 마포을), 김병기(서울 동작갑), 김병관(경기 성남분당갑), 조응천(경기 남양주갑), 김정우(경기 군포갑), 표창원(경기 용인정), 도종환(충북 청주흥덕), 서형수(경남 양산을), 문미옥(비례대표), 이철희(비례대표), 제윤경(비례대표), 권미혁(비례대표), 정춘수(비례대표), 김성수(비례대표)도 친문 직계였다. (후략)
2016년 4월 16일 <아이뉴스24> 대선 레이스 전초전, 대선주자들의 총선 성적표
이처럼 2015년 당대표 당선으로 당권을 장악하고,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친문(親文) 세력 구축에 성공한 문재인 앞에는 탄탄대로가 놓였다.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과 이재명이 선전하긴 했지만, 이미 당심을 장악한 문재인에겐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문재인은 다시 한 번 대선에 도전했고,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수도권 순회경선에서도 승리해 4전 전승을 거두며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됐다. 이날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치러진 민주당 마지막 수도권·제주·강원 지역 경선 결과 문 후보는 현장 투표소, ARS, 대의원 등 투표에서 총 39만9934표(60.4%)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각각 17.3%와 22%를 얻는 데 그쳤다. 이어 발표된 2차 선거인단 ARS 투표에서도 문 후보는 20만3067표(48.8%)를 얻으며 각각 11만2544표(27.1%), 9만9020표(23.8%)를 얻은 안 지사와 이 시장을 따돌렸다.
이로써 문 후보는 호남·충청·영남·수도권 등 권역별 투표뿐만 아니라 2차 선거인단을 모두 석권하며 대세론을 굳혔다. 문 후보는 최종 93만6419표(57%)로 과반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결선투표 없이 본선에 직행하는 데 성공했다. 안 지사와 이 시장은 각각 35만3631표(21.5%), 34만7647표(21.2%)를 얻어 2, 3위를 차지했다.
2017년 4월 3일 <매일경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확정
이재명이 얻은 문재인의 교훈은
대선 패배 후 잠행하던 문재인은 제20대 총선 직전 전당대회를 앞두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권을 장악한 그는 총선을 통해 ‘친문’ 세력을 구축했고, 이를 기반으로 대권 재수에 성공했다.
이재명 역시 이 루트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차기 대선은 2027년으로 예정돼 있다. 그렇다면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 최대한 많은 ‘친명’ 세력을 국회에 입성시켜야 이재명의 대권 재수 가능성이 높아진다. 2024년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직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아야 한다. 이재명의 8월 전당대회 출마설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러나 너무 일찍부터 전면에 나서는 건 대권 재수에 불리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재명이 8월 전당대회에 나서면 차기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4년이 넘는다. 그 긴 시간 동안 정치적 내상 없이 현재 지지율을 유지해가는 건 불가능하다. 문재인의 선 당권 후 대권 루트가 가능했던 건 전당대회와 제20대 총선, 제19대 대선이 1년 간격으로 촘촘하게 치러졌던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인도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차분히 힘을 기르면서 기회를 기다려야 할 때”라며 “너무 성급하게 나섰다가는 다음 총선도 치르기 전에 후보군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과연 이재명은 문재인이라는 롤모델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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