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과 싸웠고 부정선거사범과 싸워" “강정구·국정원 도청건 수사로 미운털”
“통진당 해산 헌재 결정은 국민 뜻 따라” “내가 한 일은 반 민주세력과 싸운 일”
“4·15총선서 패배… 간첩단 움직였을 것” “부정선거 주장, 유불리 따지는 것 아냐”
“투쟁해 文정권 실체 알리고 조국 퇴진” “나는 죄인, 공천 잘했다고 말한 적 없어"
“홍준표 유승민 인기? 역선택 문제일수도" “이재명 기본소득 시리즈, 무책임 정치인"
“文정부 총체적 위기…총체적 회복 필요" “비정상 정상화, 초일류 정상국가로 가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구술 황교안 |정리 정세운 기자, 윤진석 기자 )
“황해도 연백에 제법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6·25전쟁으로 월남한 아버지는 만리재 고개 근처 서부역 앞 중림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정직했던 분이었다.
여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나를 세심하게 챙겨줬던 기억이 난다. 교회로 인도해 준 큰 누님 덕에 신앙심을 갖게 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경기고등학교 때는 학도호국단장(총학생회장)을 맡았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학업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대학을 보내겠다’는 어머니 뒷바라지가 아니었다면 성균관대 법학과에 입학할 수 없었을 거다.
아내와는 고시 합격 후 큰 형수의 소개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들, 딸 낳고 손주들까지 생겼다. 내
인생에 들어와 준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황교안의 답> 중 일부 개략 -
검사 시절부터 정치인이 된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내가 한 일은 반민주세력과 싸운 일이었다. 그때는 간첩과 싸웠고 지금은 부정선거사범들과 싸우고 있다. 정의를 세우기 위한 싸움의 날들이었다. 지난 8월 23일 영등포 선거 사무실에 기자들이 찾아왔다. 공안검사 시절부터, 법무부 장관, 총리 등을 거쳐 정치에 들어선 과정과 소회를 듣고 싶다고 했다.
악수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여담을 나눌 것도 없이 인터뷰가 시작됐다.
- 공안검사 시절 재밌던 일화 좀 들려주죠?
“재밌게?”
재미란 말에 자신이 없어졌다. “재미는 없는데. 사실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가만있자. 자료를….” 어디에 뒀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얘기해도 될 것 같네요.” 그리 말하고, 차근차근 생각을 더듬어갔다.
(※<시사오늘>의 ‘시대산책’은 인터뷰이의 구술을 화자의 시점으로 재구성해 정리하는 형식의 코너입니다. 기술상의 이해를 돕고자 화자의 심리적 기법을 가미하거나 배경 상의 설명을 부연한 점 말씀드립니다. 괄호부분은 본지 설명입니다.)
1. 공안검사 시절
‘국가보안법을 지킨 일화’부터 거슬러 올라갔다.
“김대중(DJ) 대통령이 1997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개폐 소위를 만들었어요. 나는 폐지되면 안 된다고 6개월 동안 설득해나갔죠. 그 결과 개폐 소위원 7명 중 5명이 신중론으로 바뀌었습니다. 없어질 뻔한 법이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게 된 거예요.”
내 별명은 ‘미스터 국보법’으로 통했다. <국가보안법 해설서>도 집필했다. 국가관과 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억에 남는 해는 2005년이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동국대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 사건을 담당했다.
“그걸로 문재인 대통령(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미움을 받았죠.”
- 외압을 받았다는 말인가요?
“허허.”
(그는 <황교안의 답>에서 강 교수 사건에 대해 ‘내 삶에 큰 파란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소회 한 바 있다. 2005년 9월 30일 한 토론회에서 ‘한국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한 강 교수 발언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동조에 해당한다 보고 구속 수사하려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구속 수사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청와대와 수사팀이 마찰을 빚었다. 어쨌든 이런 일 등으로 참여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고 스스로는 보는 듯했다)
강정구 교수 사건과 관련해 나는 구속하겠다 했고,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불구속했다. 중간에 있던 분이 김종빈 검찰총장이었다. 내 의견을 받아주자, 최초로 천정배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집행이었다. 김 총장은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것이 선례가 돼 지난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수사지휘권이라고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남발했다. 혀를 찰 노릇이었다.
“그게 다 민주주의가 무너져가는 모습이에요. 당시 내가 강정구 교수 사건을 원칙적으로 하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거였습니다.”
강 교수는 불구속 기소됐지만, 결국 유죄판결 나면서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통일전쟁?
일각서는 아직도 ‘한국전쟁이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이 침공한 게 팩트다.
우리는 준비도 없는데 탱크를 몰고 기습 침공했다.
과연 이것을 통일전쟁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나는 반문했다.
- ‘같은 민족이기에 통일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논리를 반박할 근거가 있을까요?
“뭐에 대한 반박이 필요합니까.”
다시 반문했다.
“반박할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 말이죠….”
기자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역으로 질문에 들어갔다.
“무슨 통일이든 관계없습니까. 적화통일도 괜찮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자유평화통일입니다.”
- 그렇죠.
“북한이 자유평화통일하려고 침공했겠습니까. 이것은 통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나라를 무너뜨리려고 한 데 있잖습니까. 6·25는 우리나라를 궤멸시키려고 한 거였어요. 통일에 비견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하게 말했지만, 격앙됨을 감추지 못했다.
“또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화제를 돌리려는지 기자가 물었다.
“2005년엔 강 교수 사건도 있었지만,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도 있었지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있을 때다. 국정원에서 도청을 담당하던 직원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과거 국정원이 광범위하게 도청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졌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도청한 겁니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수사라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특별수사팀을 맡게 된 나는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당시 내 주장은 그거였어요. 상사인 국정원장이 지시하는데, 직원이 안 할 수 없지 않냐. 직원들을 처벌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대신 최고 책임자는 책임져야 한다.”
그중 한 명이 임동원 전 국정원장(통일부 장관 역임)이었다.
“임동원이 누굽니까. DJ 오른팔 아닙니까? 펄쩍 뛰는 거예요.”
(2005년 10월 검찰은 국민의정부 당시 국정원장들의 명단도 공소장에 포함했다. 그해 10월 7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DJ정부 때 국정원 국내담당 김 모 차장이 불법 도청 의혹을 시인함에 따라 동교동계와 청와대, 정치권은 검찰 수사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었다.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은 “사실무근”이라며 일축했다)
“임 전 원장은 ‘내가 도청을 지시했다거나 일일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검찰의 소환요구가 있을 경우 당당히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원장도 ‘언론에 보도된 김 전 차장의 진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미 밝혔듯 국민의 정부 시절 불법감청은 단 1건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세계일보> 2005년 10월 7일 기사 중-
“그렇지만 검사들과 함께 우리의 뜻을 관철시켰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수난이 찾아왔다.
“인사 상 큰 불이익을 받았지요.”
2006년 봄 나와 함께 근무하던 1차장, 3차장 등은 모두 검사장으로 승진했는데 2차장으로 있던 나만 명단에서 제외된 거였다.
“그때 불이익 준 사람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
입이 썼다.
“허허허. 그 사람입니다.”
다시 문 대통령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이었다. 자못 큰 소리로 웃었다. 적막한 가운데 터진 씁쓸한 웃음이 허공을 맴돌았다.
(2005년 10월경은 강정구 교수 사건부터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 등 파란의 연속이었다. 이에 당시 강 교수 등 구속 수사 방침을 정했던 검찰에 대한 인사 향방 역시 초미의 관심을 쏠리던 때다)
“노무현 대통령이 천정배 법무부장관을 중심으로 사태 수습을 지시하고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김종빈 총장의 사퇴가 매우 부적절했다고 경고한 점에 비춰 모종의 문책성 조치가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검찰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0월 16일 기사 중-
(이후 2006년 2월 단행된 검찰 고위급에 대한 인사 조치에서 황교안은 승진서 누락됐다고 보도됐다. 이를 두고 천 장관이 ‘강정구 교수 사건’과 ‘국정원 도청 사건’을 진두지휘한 공안검사들에 대한 모종의 인사 조치를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황교안도 책에서 ‘승진이 안 되어 불편한 심경이 들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 직전에 내가 처리한 국정원 도청 사건과 강정구 교수 사건 때문이라는 지적에 내 마음은 더욱 아팠다’고 술회했다. 관련해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별도의 언급은 없었던 듯 보인다. 다만 천 장관 경우 해당 논란이 다시 회자될 무렵,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나 청와대나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저는 검사들의 소신을 존중할지언정 인사상이든 아니든 불이익을 준 바 없다. 당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협의했는데 청와대 쪽에서도 강 교수 불구속 건을 거론한 일이 없었고, 저는 지금까지도 검찰 내에서 누가 강 교수 구속을 주장했는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 천정배, 2013년 2월 13일 페이스북 중-
- 법무부 장관 때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했습니다. 통진당 측에서는 절차적 불합리, 무리한 수사, 강제해산시킨 파쇼 정치라 하던데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9명 중 8명이 위헌 정당이라고 판단했던 겁니다. 당시 결정은 국민 뜻에 따른 거였어요.”
(황교안은 책에서 통진당 ‘이석기 내란 사건’을 계기로 위헌정당 해산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3개월에 걸쳐 준비된 입증 자료만 17만 쪽에 달했다고 했다. 그는 해산 청구 의견서에서 ‘통진당 핵심 세력인 지하혁명조직(RO)은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라 대한민국을 파괴·전복하려 했고, 통진당은 반국가 활동 전력자들을 요직에 대거 기용해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 파괴를 도모하고 있다’고 적었다)
2. 간첩단·부정선거 논란
나는 대한민국 전역에 간첩단이 암약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청주 간첩단 사건도 북한이 ‘4·15 총선에 개입해 반보수 투쟁에 나서라. 참패로 몰아넣고 책임을 황교안에 지워 정치적 매장을 시켜라’고 지령한 게 밝혀졌다.
- 특검도 주장하고 있는데 한 말씀해주죠.
“선거라는 것은 국민 축제가 돼야 하잖습니까. 근데 북한이 끼어들어서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을 매장시키라고 간첩단에 지령을 내렸어요. 공교롭게도 총선에서 우리 당이 지고 저도 졌습니다.”
(2020년 4·15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이 돌아가면서 보수당으로서는 기록적 수모를 겪었다. 종로에 출마한 황교안도 낙선했다)
“간첩 지시를 받은 그자들이 움직였을 거예요. 과연 이런 일이 청주지역에만 국한됐겠습니까? 국민이 볼 때 대한민국 전역에 간첩단이 암약하고 있다고 보지 않겠습니까?”
그럼 안 잡는 걸까. 못 잡는 걸까. 이런 의문도 들 것이다. 우리 때는 잡으려고 노력했다. 근데 이 정부 들어서는 간첩 잡았다는 얘기를 이번에 처음 들었다. 혹자는 청주 간첩 사건을 크게 발표했으니, 정부에서도 간첩을 잡기 위해 노력한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노력한 정부 같으면 4년 넘게 뭐 했느냐고 말이다. 또 혹자는 이런 생각도 할 거다. 이번에 왜 대서특필했을까. 짐작해서 말하긴 어렵다. 발표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는지도.
반대로 부정선거 논란을 보자. 4·15 총선 부정선거나 드루킹 댓글 사건,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은 발표 안 하지 않나. 김기현 원내대표가 총선서 다시 살아났지만, 청와대가 떨어뜨리는 공작을 했던 의혹이 자명한데도 말이다.
“지금도 4·15 부정선거로 많은 국민께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블랙시위를 하고 있어요. 맨 처음에는 ‘부정선거 주장’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정치인들이 많았어요. 우리 당에도 그런 생각이 많았고….”
- 하태경 의원 등 말이죠?
“그런데 내가 이슈를 제기한 이후 지금은 여럿 분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요.”
- 대선 전략상 야권에 도움이 될까요?
“개인의 유불리를 따지거나 표 계산을 한다면 안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공정선거가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불공정 선거로 선출됐다면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 어떤 점요?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하고, 대법원이 주관한 6월 28일 인천연수을 재검표에서 부정선거 증거들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휴대폰을 들어 올려 액정 속 화면을 보여줬다.
“요 밑에 찍혀 있는 게 투표 관리관 도장이거든요? 누가 투표 관리한 건지 알 수 있게 하려고 도장을 찍잖아요? 만에 하나 바꿔치기 돼도 이 도장만 추적하면 나올 수 있거든요. 근데 보세요.”
투표용지 하단을 가리켰다.
“이렇게 뭉그러져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태로는 진짜 바꿔치기 돼도 누가 했는지 추적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투표용지가 무려 재검표 현장에서 여러 장이 나왔단 말이에요. 이게 그냥 지나갈 일입니까? 있을 수 없는 증거가 현장에서 나왔는데?”
다시 분노가 치솟았다.
“이 방식으로 선거 치르면 하나 마나 아닙니까.”
공소시효는 남아 있다. 그러니 당연히 나도 문제 제기하는 거다.
-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때는 국민의힘이 압승했잖아요. 그건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부정선거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국민 분노가 대세가 됐을 때잖아요. 무슨 폭탄을 받으려고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 검사 출신에 총리까지 한 분입니다. 리스크 감안도 해야 할 텐데요.
“유불리를 말할 생각 없습니다.”
국민 주권의 문제다. 정치인이 촌각을 다퉈 싸워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언론에서조차 잘 다뤄지지 않는다. 하물며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 의혹 제기 자체를 아예 못 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들린다.
“아, 물론 못하겠죠. 언론중재법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언론통제법 아닙니까. 내가 알기론 OECD 국가 중 이런 법을 가진 사례는 없는 줄 압니다.”
- 민주당이 왜 추진한다고 생각하나요.
“비판 세력 입 막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3. 당대표 시절과 프레임
(부정선거 주장을 떠나, 황교안으로서는 4·15 총선이 아플 수 있다. 당대표가 된 지 1년여 만에 치른 첫 선거였다. 앞서 그는 2019년 1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2월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지리멸렬하던 야권은 리더십 공백 상태였고, 여당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대망론이 불고 있었다. 총리 출신의 황교안 리더십이 대항마로 급부상하면서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이자 새로운 구심점이 돼가던 때다. 하지만 이듬해 총선서 참패하면서 황교안 체제는 일찍 돛을 내렸다)
- 일각서는 여론에 역행하는 당 대표를 뽑았기 때문에 총선서 실패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합니다. 전당대회 당시 일반 여론조사서는 오세훈 후보(현 서울시장)가 앞섰잖습니까.
“내가 출마했을 때는 정치를 시작한 지 불과 보름밖에 안 지났을 때입니다. 오세훈 시장은 오래 정치한 분이지요. 국민들한테 많이 알려졌잖아요. 상대적으로 나는 모르고요.”
- 모를 수가 있을까요. 장관에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는데요?
“‘정치인 황교안’은 잘 모를 때니까요. 나는 계속 정부에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처음 하는 사람에 불과했잖아요. 그럼에도 국민 여론이 대단히 많이 지지해줬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2월 전당대회에서 황교안 당대표 후보는 30%반영 여론조사서 50.2% 받은 오세훈 후보보다 12.5% 뒤처진 37.7%를 받았다. 하지만 당원선거인단 70% 반영을 포함한 최종득표율에서는 50%를 얻게 돼 31.1%를 얻은 오 후보를 큰 차로 따돌리고 당 대표에 선출됐다.)
- 당대표 되고 나서는 강경일변도 투쟁만을 했잖아요.
“아니죠.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은 있겠지만.”
- 그럼 아닙니까.
“나는 강경일변도로 정치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강하게 싸워야 할 때는 강하게 싸우고 대화를 해야 할 때는 깊이 대화하고 국민과 소통할 때는 정말 부드럽게 소통하는 ‘알부남’이었지요.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웃음).”
당대표 시절 내가 맨 먼저 한 것은 ‘우리가 통합하자’는 거였다. 반문재인 정부에 맞선 소통합, 중통합, 대통합이 목표였다. 또 당으로 들어와서는 원내투쟁을 주도했다. 반민주악법인 선거법, 공수처법을 막기 위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을 찾자고 했다.
“이게 강경일변도입니까?”
- 하지만 선거법 문제도 말이죠. 차라리 연동형비례대표제 대안으로 중선거구제를 하자고 역제안했다면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은 받지 않았을까요?
“사실은 물밑 대화도 깊이 했고, 심각하게 원내 협의도 했었습니다. 대표단끼리 만든 합의서까지 도출됐어요. 그런데 막판에 가서 꼭 뒤집히는 거예요.”
난 다 받자고 했는데 저쪽 헤드(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안 된다고 한 거다.
“그래서 장외집회를 시작한 겁니다. 나는 국민에게 호소할 테니 원내에서는 그 힘을 바탕으로 더 협상해 달라.”
투트랙 전략이었다. 더욱이 대한민국 국민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다. 법에 보장된 자유를 누리는 활동이다.
“이게 강경일변도입니까?”
물론 진짜 강경도 있다. 민주당 진영의 민주노총 집회가 그렇다. 폭력 행사도 하고, 집회신고도 않을 때가 있다.
반대로 우리가 집회한 것은 어떨까. 법을 지키면서 해왔다. 특히 누가 주도한 집회인가. 그 당시 국민들은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장외로 나갈 때였다.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 사람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꽉 찼다. 종로, 서소문까지 뻗어 나갔다.
“그렇게 많은 분이 모여 정부의 민생파탄을 규탄했습니다. 그런데 제1야당이 테이블에 앉아서 잘해보자, 잘해보자 말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당을 국민과 함께하는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대목에서만큼은 할 말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을 계속 만들어 갔다. 경제 살릴 민부론, 국민 평화와 안보 지킬 민평론, 교육 지킬 민교론 등의 정책을 스티브 잡스처럼 국민 앞에서 발표도 했다.
“민주당이 그랬습니까, 정의당이 그랬습니까. 우리는 원내투쟁, 장외투쟁, 정책투쟁, 국민과의 소통투쟁, 말하자면 모든 투쟁을 다 한 겁니다.”
- 그런데 왜 그런 말이 나올까요. 강경일변도라고 말이죠.
“한마디로 ‘억지 덧씌우기’입니다.”
나는 잘라 말했다.
“강경일변도다, 하는데 과연 일변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공격해 오는 것일까 싶습니다. 나는 국민과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선거법, 공수처 하나도 막지를 못했단 말이죠. 선명 야당으로서 당연히 장외로 나가야겠지만, 결국 실패한 거 아니냐, 했을 때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성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큰 관점으로 보지 못하는 거예요. 한순간 혁명으로 뒤바뀌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국민들께서 이 정권의 실체를 알게 됐습니다. 그 자체가 우리가 총체적 투쟁을 해온 결과입니다. 이바지한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연전연패했습니다.
“이긴 걸 말해보겠습니다.”
열거에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조국 정국’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이 정부가 순순하게 물러났습니까. 버티고 버티다가 물러난 거 아닙니까. 가만히 있었는데 물러났습니까. 지소미아는 어땠습니까. 폐기되는 걸 막아냈습니다.”
2019년 9월 삭발을 하고 국민의힘 당원들과 함께 ‘조국 파면 촉구’를 외치며 광화문으로 나간 일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힘을 싣는 계기가 됐다. 선거법, 공수처, 지소미아 폐기 정국 때는 한겨울 장외서 단식투쟁을 불사했다. 어떻게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우리가 비례정당을 만들면서 민주당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성과로 이어졌다. 공수처법도 결과는 어떤가.
“국민들께서 ‘참 좋은 법 만들었네’ 합니까? 아니잖아요?”
- 법조인 출신들은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단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습니까?”
나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 알지요. 검사 출신으로 검사장까지 지내고 민정당 대변인, 국회의원을 역임한 분입니다. 이분 보고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합니까. 법조인이기 때문에 부족하다? 그럼 언론인은 풍부합니까?”
“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4. 통합공천에 관한 내홍
기자는 다시 4·15총선 때를 끄집어냈다. 통합은 잘했지만, 아쉬운 점을 생각해 보자면서, 김무성 전 대표 호남 출마가 안 된 것과 홍준표·김태호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한 것 등을 꼽았다.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황교안 고백록 <나는 죄인입니다>(김우석 저)에서는 홍준표·김태호 당시 공천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홍준표 전 대표에 대해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직접적 관계가 없지만, 검사 시절에는 가족 간 교류도 하는 사이였다. 김태호 의원과는 호형호제, 소통이 잘 되는 관계다. (공천 관련) 홍준표 의원의 경우 당내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많아 놀랐다, 김태호 의원한테는 나 역시 (다른 지역) 출마를 권유했는데, 생각대로 잘 진척되지 않았다.”
- <나는 죄인입니다> 중 일부 개략-
(황교안은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탄핵 정국 이후 흩어진 자유민주 진영 재집결에 애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월 17일 자유한국당 당명도 미래통합당으로 변경해 새로 출범했다. 하지만 미완의 통합이라는 비판부터 공천 잡음 논란 여전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 아무튼 공천 자체가 너무….
“그래서 내가 죄인이라고 그랬지요. 공천 잘했다고 말한 적 한 번도 없습니다.”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때 통합을 했다는 것, 국민의힘 기세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 부족하지만 정권교체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다만 통합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고 총선이 임박해 됐기 때문에 현장서 표로 연결되지 못한 것은 뼈아프다.
5. 초일류 정상국가로
총선 참패 후 나는 성찰의 시간을 가진 후 민심 현장을 돌아봤다.
“민생 얘기를 하니 갑자기 열이 나는데….”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13년도만 해도 평균 아파트값이 5억 원이었다. 근데 작년엔 11억, 지금은 12~13억까지 올랐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두 배가 뛴 것이다. 과연 정상적으로 집 살 수 있을까. 거기다 집 사면 보유세, 집 팔면 양도세 폭탄이다. 소비세 등 세금 폭탄에 일자리는 바닥이다.
“사람 사는 데 기본적인 것이 먹고사는 문제 아닙니까.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어요.”
- 근데 어떻게 대통령 지지율은 40%가 나올까요.
“지지율이 40%니까 잘하고 있다? 그렇다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나 몰라라 하면 안 되죠.”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너져가는 나라를 지키고 파탄 난 민생경제를 되살려야 한다. 그게 내가 정치를 재개하고 대선에 출마한 이유다. 지금처럼 총체적 위기일 때는 총체적 회복이 필요하다.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굉장히 중요할 때가 됐다. 나는 국정을 경험해 봤다.
“바꿔 말하면 위기관리 능력이 있다는 것이죠. 내가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대선 경선 본선에 선출되기까지는 무리가 아닐까요.
“1%로 시작해 대통령 된 분도 있지요.”
(언더독을 얘기할 때 많이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예로 든다. 황교안도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듯했다)
- 당장은 1차 예비경선(컷오프)에 드는 게 목표일 텐데요. 8강 안에 들려면 전략이 있어야 하잖습니까. ‘윤석열-최재형-홍준표-유승민-원희룡’ 이 다섯 명은 확정적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그럼 나머지 3명 안에 들어야 하는데 말이죠.
“….”
예컨대 ‘유승민 전 대표가 후보 간 연대론을 들고 나온 것처럼 어떤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이 너무 약하다는 평가가 있다’는 지적도 들려왔다. 나는 전략가가 아니다. 어떤 획책으로 국민을 속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살려낼 것인가, 진정성을 갖고 경제를 살리고 안보를 지키는 데 매진하는 사람일 뿐이다. 국민은 현명하고 지혜롭다. 문재인 정권처럼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아닌 과연 누가 나라를 살릴 사람인가, 진정성 있는 리더를 찾고 있다고 믿는다.
- 대선에 실패한 정치인들은 자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홍준표·유승민 두 정치인은 보수정당에서 양분돼 출마해 낙선한 경험이 있잖아요.
“그러면 YS(김영삼)나 DJ(김대중)는 대통령 되면 안 됐겠지요. 실패했잖아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재선 끝에 된 거 아닙니까. 링컨, 몇 번 패배했습니까. 실패한 사람들은 도전도 하지 말라,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큰 정치인들은 모두 아픈 경험을 밑거름 삼아 성장했다. 실패했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낮은 곳에서 국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 눌려 있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더 큰 힘을 내게 된다고 생각한다.
-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보는데요. 그동안은 대선 출마했던 사람이 당 안에서 계속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다가 또 대선에 나온다면, 이런 것은 이제 지양해야죠.
“국민들께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 민주당 지지자들이 ‘홍준표-유승민’ 두 주자한테 호감을 보내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요.
“글쎄요. 역선택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있잖아요.”
역선택은 막아야 한다. 이는 원칙의 문제다.
“어떻게 보면 도둑질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 기자가 불쑥,
- 외모나 목소리도 좋잖습니까. 잘생겨서 정치에 도움이 되죠?
“하하하. 예. 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쑥스럽지만 웃었다.
-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 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면서 비판했던데요.
“우선 경제 정책이라고 내놓은 게 기본소득제 아닙니까. 계산해봅시다.”
1인당 월 30만 원을 준다면, 1년에 180조 원이 든다. 올해 정부 예산이 580조 정도 됐다. 박근혜 정부 1년 예산은 340조였다. 정상적일 때가 그랬는데, 지금은 돈을 막 써서 올라가고 있지 않나. 하물며 1년에 기본소득 180조를 쓴다면 나머지 교육, 국방, 그동안 쓴 복지는 무엇으로 줄 수 있을까.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해요?”
사상누각의 포퓰리즘 정책이다. 힘든 국민에게 희망 고문하는 것밖에 안 되지 않나.
“이런 사람은 대통령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기본 시리즈를 내고 있어요. 말은 기본인데 기본을 망가트리는 무책임한 정치인이에요.”
순간, 시계를 봤다.
“이제 다 끝나가죠?”
다음 일정으로 재검표 현장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미처 나누지 못했던 두세 가지 질문과 답이 뒤죽박죽 오간 뒤 인터뷰를 마치면서 내가 강조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지도자상, 정치 소신, 이기는 정권교체를 위한 갈무리였다.
“거리에서 마음 놓고 휴대폰 만지며 돌아다닐 수 있는 안전한 나라, 범죄 검거율 세계 2위인 치안이 확보된 나라, 지하철 세계 평가 1위, GDP 세계 11위, 수출 세계 8위, 단기간에 IMF를 극복한 나라, 세계 다섯 번째 고속철도 보유국, 식민지 국가 중 유일하게 OECD에 가입한 나라, 반도체 생산 세계 1위, 철강 제조 산업 세계 1위, 세계 건설 산업 규모 3위,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세계 3위, 특허시장 점유율 세계 7위, 학교 정보화 시설 세계 1위, 국민의 90% 이상이 자기 나라 국기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 문맹률 1% 미만인 유일한 나라, 평균 IQ가 105를 넘어 세계 1위인 나라, OECD 공공데이터 개방 평가결과 세계 1위,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률 1위, 컴퓨터 보급률 세계 1위, 대중교통망으로 어느 도시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나라, 세계에서 A/S가 가장 신속한 나라, 블룸버그 선정 세계혁신국가 1위인 나라….”
- 황교안 <초일류정상국가> 서문 중-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지금의 문재인 정권은 절망이다. 잃어버린 희망을 국민께 되찾아주고 싶다.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 원하는 대학 갈 수 있다고 하는 희망, 결혼할 수 있다는 희망,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 안전한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희망, 이런 나라를 만들고 싶다. 진짜 정상국가를 향한 꿈을 갖고 있다.
정상국가에는 두 가지 중의적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현재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거다. 둘은 정수리 정(頂), 위상(上)을 쓴 세계 정상의 초일류국가를 만드는 거다. 그렇게 나는 국민의 삶과 국정을 정상화하는 회복의 과정을 실현해가고 싶다. 대한민국을 초일류국가로 만드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정상화한 상태에서 더 나아가 우리의 꿈을 이뤄낼 수 있는 초일류 정상국가를 이룩하겠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좌우명 : 꿈은 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