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안지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이커머스 업계의 합종연횡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올해 들어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각자 이익과 노선에 따른 기업 간 각종 협업과 굵직한 인수합병(M&A)이 계속됐다. 이 같은 변화로 시장이 크게 재편되면서 하반기부터는 시장판도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사고팔고 손잡고…반쿠팡연대 전선 확대
이커머스 시장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크게 늘면서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산업군 중 하나다. 이커머스 산업이 성장하면서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사업자도 늘고 있으며,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에게도 온라인 사업은 이제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시장이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후발주자들은 기업 간 협업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고 있다. 단기간 내 상위 사업자를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독자노선으로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을 들여 끝이 보이지 않는 투자를 이어가야 하지만, 경쟁력을 갖춘 다른 기업과 손을 잡는다면 그보다는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는 경쟁 구도로 여겨지는 기업 간에도 동맹을 맺으면서 ‘적과의 동침’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세계그룹와 네이버다. 신세계는 후발주자로서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을 운영하면서 이커머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네이버는 경쟁자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양사는 오히려 협업을 통해 각자의 온·오프라인 경쟁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구상했다. 지난 3월 신세계는 네이버와 2500억 규모의 지분 맞교환을 진행했다. 이마트 1500억 원, 신세계백화점 1000억 원 규모로 네이버와의 상호 지분 교환을 통해 양 사 간 결속과 상호 신뢰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양사는 커머스, 물류, 멤버십 등 전방위적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오프라인에 기반을 둔 신세계는 네이버의 IT·플랫폼 경쟁력을, 네이버는 신세계의 전국적인 물류망과 오프라인 거점을 상호 교환하게 되는 셈이다. 각각 2000만 명, 5400만 명에 달하는 신세계와 네이버의 고객 수는 규모만으로도 시장 판도에 위협이 된다. 양사는 45만 명에 이르는 판매자수, 즉시·당일·새벽배송이 가능한 전국 물류망, 7300여 개의 오프라인 거점도 단숨에 확보하게 된다.
네이버와 신세계의 동맹은 업계에서 일명 ‘반(反)쿠팡연대’로도 불린다. 승자독식 구조로 돌아가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현재 네이버는 쿠팡과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시장 거래액 기준 네이버는 26조8000만 원, 쿠팡은 20조9000억 원을 기록했으며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로는 네이버가 18%, 쿠팡이 13%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신세계의 손을 잡는 방식으로 ‘운용의 묘’를 찾은 것이다.
신세계는 네이버와의 협업뿐만 아니라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도 사들였다. 신세계 이마트가 이베이 미국 본사가 보유한 이베이코리아 지분 80.1%를 3조4400억 원에 인수하는 조건이다. 시장 점유율 12%의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신세계는 온라인몰 SSG닷컴의 점유율(약 3%)을 더해 단숨에 쿠팡을 제치고 업계 2위 사업자로 부상했다. 이마트가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 인수 후 이마트의 점유율은 15%로 집계돼 네이버에 이어 2위로 뛰어오른다.
신세계는 이베이의 270만 유료고객과 국내 최대 규모 수준의 셀러를 확보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극강의 온라인 기업’으로 완벽히 탈바꿈한다는 목표다. 또한 최근 국내 IT 전문가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이베이의 숙련된 IT 전문가를 얻게 돼 온라인 사업의 규모와 성장의 속도도 가속화시킬 수 있게 된다. 유통기업으로서 쌓아온 오프라인 운영 노하우와 물류 역량을 이베이와 결합해 시너지도 극대화한다. 장보기부터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 전반에 걸친 종합플랫폼을 확고히 구축하고, 통합매입으로 가격경쟁력 확보도 가능해져 ‘완성형 이커머스 모델’에 다가선다는 전략이다.
SK텔레콤이 운영하는 11번가는 아마존과의 협업을 생존 전략으로 택했다. 아마존과 손잡고 11번가를 ‘글로벌 유통허브 플랫폼’으로 성장시킨다는 게 SKT의 계획이다.
11번가는 8월 말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오픈한다.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는 11번가 사이트에서 아마존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회사 측은 해외직구 서비스 차별화를 통해 기업공개(IPO)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아마존과 e커머스 사업 혁신을 위해 지분 참여 약정을 맺은 바 있다. 아마존은 11번가 IPO 등 한국 시장에서 사업 성과에 따라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신주인수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
지각변동 불가피…하반기 경쟁 더 뜨겁다
상반기 저마다 생존 전략을 구체화한 이커머스 기업 간 경쟁은 하반기 더욱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M&A 시장 물밑작업도 계속되고 있는 데다 상장 준비에 본격 돌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미정인 M&A 결과에 따라 시장 판도는 또 한 번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M&A 시장 매물로 나온 이커머스 업체 중 하나는 1세대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인터파크는 최근 경영권 매각을 결정하고 NH투자증권을 자문사로 선정했다. 매각 대상은 최대주주인 이기형 대표이사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28.41%다.
인터파크는 1996년 6월 국내 온라인 쇼핑 사업을 시작해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이후 시장 트렌드가 바뀌고 경쟁업체가 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주력 분야인 공연·여행 티켓 예매에서 타격을 크게 받으며 실적이 부진한 상태다.
또 다른 1세대 이커머스 기업 다나와도 경영권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나와는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 측은 공시를 통해 “NH투자증권 주식회사를 자문사로 선정 후 필요한 사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결정되거나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내년을 목표로 IPO를 추진하는 업체들도 있다. 장보기앱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는 그동안 해외증시와 한국증시 상장을 동시에 고려해왔고, 최종적으로는 사업 모델과 국내외 증시 상황 등 다양한 조건을 면밀히 검토해 한국증시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컬리는 약 2254억 원에 이르는 시리즈 에프(F) 투자유치를 끝낸 상황이다. 시리즈 F 투자금은 상품 관리·물류·결제 등 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오아시스마켓도 이르면 오는 2022년 상반기를 목표로 국내 상장 준비에 착수했다. 오아시스마켓은 마켓컬리와 함께 신선식품 새벽배송 대표 업체로 꼽힌다. 새벽배송 서비스를 실시하는 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다. 오아시스마켓은 상장 대표 주관사로 NH투자증권을 선정한데 이어 이번 달에는 한국투자증권을 추가 선정하면서 상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새벽배송 가능 일수와 지역을 확대하며 본격적인 몸집 키우기에도 들어갔다.
SSG닷컴은 최근 상장 주관사 선정을 위해 주요 증권사에 RFP(입찰제안요청서)를 발송했다. 국내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물류 인프라와 IT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급변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강력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하반기 SSG닷컴은 이베이코리아와 PMI(인수합병 후 기업통합)를 추진하고, 지난 4월 인수한 패션 플랫폼 W컨셉과의 협업도 본격화하면서 몸집이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SSG닷컴은 연내 IPO 준비를 끝내고 내년 초 상장한다는 방침이다. SSG닷컴 관계자는 “성장 가속화를 위해 임직원을 포함한 이해 관계자들과 상장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으며 그 시작으로 주관사 선정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며 “향후 SSG닷컴은 선정될 주관사와 함께 성공적인 IPO 추진을 위해 다각도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커머스 기업들이 상장을 서두르는 배경은 치열해진 시장 경쟁 때문이다. 특히 지난 3월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한 이후 IPO를 추진하는 업체들은 마음이 급해지고 있다. 승자독식 효과가 큰 이커머스 시장에서 빅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쩐의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향후 이커머스 기업들이 상장을 통해 자금 확충에 나서고 중소업체는 M&A와 제휴 등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 경쟁에서 뒤처지면 선두 경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모든 기업들이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상장, 인수합병 등 이슈가 계속되는 만큼 당분간 전반적인 시장 구도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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