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 시절 명동성당 한복판 현장 취재해”
“2만 명 모여도 2000명으로 축소·왜곡 보도돼”
“6·29 선언 발표 당시 이겼다…! 언론노조 결성”
“민주항쟁 너머 시대 과제로 빈부격차 극복해야”
“일 통한 분배만이 빈부격차 해법, 그것이 진보”
“당사주의 우선 정책은 인존주의 나라로 가는 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당신을 잊지 않았나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이 만들어버린 어떤 존재로만 계십니까당신은 어떤 존재가 아닙니다
무엇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무엇으로 평가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비교되는 존재도 아닙니다여기 최초의 인간이 있습니다.
당신입니다
‘내가 있다’
당신은 존재로부터 시작합니다
존재 자체입니다.당신을 이루는 원소들과 분자,
세포들이 만들어낸 조직과 뇌의 신비로운 활동들이
어떻게 구성됐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신비이며 완전체입니다. 완전한 전체입니다당신은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 수많은 꽃과 함께
당신은 높은 존재입니다. 눈 덮인 산들과 함께
당신은 넓습니다. 강물 너머 바다와 함께
당신은 장쾌합니다. 그 모든 풍광과 함께
때때로 당신은 홀로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당신은 우주 전체로부터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당신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우주는 당신을 어디에 쓰려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수단이 아닙니다
어디에 쓰려고 온 우주가 온 힘을 기울여 탄생시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자체로 목적입니다
우주의 목적입니다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도 당신을 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당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
우리가 목숨 걸고 싸워온 민주주의도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모두 수단일 뿐입니다
무엇을 위한 수단일까요. 당신을 위한 수단입니다
당신을 귀하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그 모든 존재하는 이유가
인간을 존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당신은 그런 존재입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가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존재입니다.그 자체로 귀한 존재입니다
귀한 선물입니다- 최문순 강원지사 에세이 <당신은 귀한 사람> 개략-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다. <글루미선데이>란 영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헝가리가 배경이다. 피아니스트 안드레스가 죽은 건 인간의 존엄성 때문이었다. 자신을 모욕 줘 존엄을 훼손하려는 독일 나치 장교 앞에서 스스로 권총을 쏴 자살했다. 저항의 표시로써 목숨을 내걸고 맞선 거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이기에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존엄을 지키려는 걸까.
“당신은 귀한 사람.”
앞선 글이 마치 그에 대한 답을 내려주는 것 같다. 나치가 패망한 뒤 독일에서도 반성이 일어나고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쾰른 기본 강령이 발표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문순 강원지사는 그의 책 <당신은 귀한 사람>에서 이 강령을 처음 읽으며 울었다고 했다.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모든 국가기구의 의무다.” 1949년 독일 기본법 제1조1항으로 명문화되면서, 인간의 존엄이라는 철학이 비로소 쾰른 강령을 통해 제도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 역사는 존엄을 확대해온 정책입니다.”
6월 민주항쟁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뜨거운 투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최문순 강원지사는 말했다. 인터뷰는 6월 26일 여의도 모처에서 진행.
1. 인간의 존엄과 ‘1987 그때’
5월 2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고, 진범은 따로 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끌려가 고문받다 사망한 것과 관련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의 이부영(열린우리당 의장 역임)이 감옥에서 보내온 비밀 서한을 토대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김수환 추기경이 물었다.
“창세기의 이 물음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가 있던 해였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돌아오지 못한 죽음 앞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미사를 올렸다. 성명 발표가 있은 지 7일 후(5월 27일), 김영삼·김대중을 필두로 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와 통일민주당, 정의구현사제단, 민통련 등 정치권·종교계·재야단체 발기인 2191명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발족했다. 4·13 호헌철폐 및 직선제개헌 운동을 선언했다.
6월 10일 전국에서 약속이나 한 듯 거리로 쏟아졌다. 시민들까지 합해져 파죽지세였다. 마침내 6월 29일 전두환 정권이 백기를 들었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직선제개헌을 받아들인다고 선언한 것이다. 1985년 2월 12일 12대 총선에서 신민당 승리로 시작된 민주화 대장정이 종착지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6월 민주항쟁 한복판.
최문순 지사는 언론인이었다. MBC 방송사 기자였다. 6월 민주항쟁 기간 동료들과 함께 현장을 취재했다.
- 당시 어땠나요.
“명동성당을 취재했는데요, 넥타이부대(회사원)들이 가세하고, 시위대가 식당에 들어가면 자장면 공짜로 주고 저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어디 건물로 쫓겨 들어가면 숨겨주고, 최루탄 씌워진 얼굴을 보면 물로 닦아주고 그랬지요.”
- 보도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네네. 예를 들어 2만 명이 모여 시위했다고 기사를 보내면, 방송에는 2000명 모였다고 나왔습니다. 시위대가 주장한 것을 물타기 하거나 뒤집어서 나가는 거짓말 방송이 매일매일 나갔지요.”
- 힘들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작거부라는 것을 하게 돼요. 이런 방송을 더는 못 하겠다. 아마 그게 방송 사상 최초의 제작거부였을 겁니다.”
- 용기를 내기까지는 민주화 열기에 고무된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시대사 분위기도 그렇고. 기자로서의 부끄러움, 이러느니 사표 낼 각오를 하자….”
- 80년대 언론 침해 사례가 많았잖아요?
“보도지침이란 게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김대중이란 이름을 내보낼 수 없었어요. 보도 불가였지요.”
- 또 어떤 침해 사례들이 있었나요.
“MBC 안에 지금으로 말하면 국정원, 정보 경찰, 보안사가 상주해 있었어요. 사무실이 다 있었지요. 저항적인 기사를 쓰거나 대들면 바로 끌려가 취조당하고 조사받고 그랬습니다. 황당하지요. 황당해.”
- 언론계에서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처음 접했을 때 고문으로 죽은 걸 직감했나요.
“암암리에 민통련을 통해 전해 듣기도 하고…. 최초로 보도한 건 아마 <동아일보>였을 겁니다.”
<동아일보>는 1987년 1월 16일자 사회면을 통해 “전날 조사관이 ‘탁’치니 박종철 군이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에 대한 의혹을 최초 제기했다. 이후 집요하게 취재해 경찰의 발표가 거짓말임을 밝혀내는 보도를 연이어 내보냈다. 신문은 훗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세기의 특종이었다고 자평했다.
- 6·29 선언 때는 어땠나요. 미리 정보를 알았나요.
“우리는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6·29 선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은평구 쪽으로 군부대가 진출해 온다’는 얘기가 나돌던 때죠.”
무성한 소문에 불과했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역력했음이 가늠된다.
“그러다 갑자기 6·29 선언이 나온 거예요.”
야당 정치인들의 공(功)이었다. 김태룡 당시 민추협 대변인은 지난 4월 <시사오늘>과의 대화에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청와대에 가서 6·29 선언을 이끈 비화에 대해 전한 바 있다.
“으름장을 놨어요. 계엄을 확대하고, 철권정치를 강화해 정권을 연장한다면 어마어마한 비극이 올 거라 했지요. 탱크로 진압한다면 결국 그 탱크가 머리를 돌려 청와대로 향할 것이다, 전두환은 물론 참모들 모두 불행하게 될 거다, 계엄을 포기하고, 민주화 조치를 즉각 단행하라.”
-김태룡 민추협 대변인,
2021년 4월 19일자 <시사오늘> 인터뷰 중-
- 6·29 선언이 발표됐을 때 심정은요?
“이겼다! 이런 느낌이었지요.”
- 언론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요, 민주화가 됐기에 가능했던 거겠지요?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언론사 내부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려고는 했지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지만요.”
그러다 6월 항쟁을 계기로 결성하게 된 것이다.
“최일구라고 알지요? (고개를 갸웃하자) 모르시나. 손석희는 알지요? 함께 활동한 동지들이지요.”
- 만들게 된 직접적 이유는 뭔가요.
“6·29선언 후에도 언론에 대한 통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낙하산을 내려보내거나 인사에 국정원이 개입하는 등 관행이 계속됐거든요. 쉽게 깨지지 않더라고요.”
최문순 지사는 편집권 지키기에 앞장섰다. 1998년 전국언론노조 산별 위원장을 맡았다. MBC <카메라출동> 등 사회 고발 보도 분야에서 활약했다.
2. 언론의 독립성과 5·18 그때
- 최연소 MBC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더라고요.
“마흔여덟 살 때였죠(웃음).”
2005년 때다.
- 왜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 보나요.
“당시부터 이미 지상파들 매출이 상당히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나 다음 등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광고가 줄어갔지요. ‘경영을 혁신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에 서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젊은 CEO를 골랐다고 봅니다.”
사장 취임 후 <무한도전> <내 이름은 김삼순> <태왕사신기> 등이 히트했다. 경영실적 면에서 쾌조를 달렸던 듯싶다.
- 언론의 독립성도 성과로 꼽히던데요.
“하하(웃음).”
부끄러운 듯 웃었다.
- 위에서 개입이 없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
“노무현 정부는 언론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과 저도 잘 아는 사이였지만, 서로가 전화 한 통 안 했습니다. 절대 개입을 안 했지요. 사실을 존중하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 정부를 비판한 것은 아니지 않나요?
“갈등을 겪을 때도 있었지요.”
<PD수첩>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의혹 보도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적극 지원 한데다, 열성 지지자들도 상당해 거센 저항에 부닥쳤다.
하지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소회다.
- 원래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어릴 때부터?
“그랬죠.”
1956년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김유정이 살았던 실레마을 옆 신동면 정족2리가 그의 고향이다. 궁박한 마을이지만 감자와 옥수수 맛이 일품인 곳이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춘천으로 등교했다. 그때 친구들로부터 얻은 별명이 감자나 굴뚝새였다고.
- 청소년 시절 꿈은 뭐였나요.
“하도 독재가 심할 때니까요. 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해야 하나….”
혼잣말처럼 말했다. 유신 때를 말하고 있었다. 1972년 고등학교 2학년 때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기억에 남는 일이라든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 분위기가 굉장히 어수선해졌습니다. 10월 유신이 터진 거지요. 이후 학생회장 선거가 진행됐는데, 우리 선배 한 사람이 반유신 후보로 나갔고, 저도 선배 편에 섰지요. 나중에 보니까 민청학련 발표 명단에 선배 이름이 나오더라고요.”
- 이름이….
“정재돈이란 분인데, 고문당하고 잡혀 갔다 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민청학련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맹의 약칭이다. 청년들이 반유신 체제 운동을 한 것이지만, 박정희 정권은 내란예비음모사건으로 몰아 무기징역형 등을 선고했다. 1974년 8월 15일자 <매일경제> 신문에 따르면 36명의 민청학련 소속 피고인 이름들이 열거돼 있다. 정재돈은 징역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 그러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가요.
“고등학생들이 거의 성인 취급을 받던 때에요. 대학생들 숫자가 적을 때니, 시위 같은 것도 고등학생들이 많이 했지요.”
춘천고등학교서부터 시작된 학생운동은 강원대 영문학도가 되면서 본격화됐다.
- 어떻게 활동했나요.
“10월 유신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대학생들이 지하 운동단체를 만들었어요. ‘거머준다’ 할 때 거로 시작되는 ‘거멀못’이라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지요. 정성환 새마을운동협의회장, 최열 환경운동가 등 이런 분들이 이끌었고요.”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다녔다.
- 특정 이념이 있었나요.
“그땐 없었습니다. 숫자도 얼마 안 되고 무슨 집회만 해도 사형선고를 받을 때니, 이념단체 같은 것을 만들 수가 없던 때지요.”
- 10·26 사태가 났을 때는 대학 졸업 후지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요.
“10·26부터 광주 민주화운동까지 군대에 가 있었습니다.”
5·18 당시를 묻자,
“최전방 화천 7사단이라고 하는 데서 군대 생활을 했거든요. 전부 모이라고 하더니 실탄을 나눠주더라고요. 우리는 전쟁 난 줄 알았어요. 뒤늦게 안 거지만 그날이었지요.”
잠시 정적이 흐른 듯.
3. 6월 민주항쟁의 과제 '빈부격차'
-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의의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시작해 6월 민주항쟁까지의 혁명. 세계사적으로 보면 프랑스 혁명 같은 거지요.”
- 한계와 과제는요.
“그때 구호가 호헌철폐 독재 타도였거든요.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자는 건데 헌법 전체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헌법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헌법’입니다. 박정희 헌법. 그러니까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죠.”
- 본인은 어느 쪽인지요.
“제7공화국 개헌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대선 국면을 통해서 전면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 어떻게 개헌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개헌을 해야 합니다.”
-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등 구체적인 안은요?
“양원제입니다. 미국처럼 상원과 하원이 있는 거죠. 양원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분권 개헌, 평등을 보장하는 구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시대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구조죠.”
- 시대 과제라면?
“빈부격차요.”
그는 6월 민주항쟁 이후의 시대정신도 양극화의 문제, 빈부격차라고 지목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 역시 빈부격차입니다. 불공정, 불평등이란 말은 좀 추상적인 내용 아닙니까? 구체적으로 풀자면 빈부격차.”
- 아이러니합니다. 중산층이 대거 늘어나면서 민주화가 왔는데 빈부격차가 과제가 됐다는 것이요.
“심하게 된 건 신자유주의적 질서 탓이 큽니다. 승자독식, 무한경쟁, 외주화가 되면서 비정규직이 막 늘어났지요.”
- 신자유주의가 한창 유행이던 때는 지난 것 아닌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 전체는 아직도 그 체제하에 있어요.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해법을 제시한다면요.
“핵심은 일자리에 있습니다. 일을 통한 분배, 직업을 통한 분배를 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어요.”
- 부연해주겠습니까.
“기업은 매출을 늘려 회사를 키우려는 욕망이 있잖습니까. 이런 기업을 정부가 적절하게 도와주면 많은 고용이 일어납니다. 실제 저희 강원도에서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기업에서 직원 한 명을 채용하면 월급 중 100만 원을 도에서 지원해주고 있지요.”
- 지방 재정으로 그게 가능해요?
“가능합니다.”
취직사회책임제를 말하고 있었다. 강원도는 이 사업과 동시에 1명을 고용하는 기업에게 3000만 원을 낮은 금리로 빌려주고, 고용을 3년 유지하면 빌린 돈의 30%를 탕감해주는 정책을 폈다.
- 엄청나네요.
“효과가 꽤 큽니다. 강원도에서만 1만 7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성과를 냈지요. 저는 이 정책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재정이 감당될까 싶은데요.
“실업 상태에 있으면 실업수당을 주지 않습니까? 그 돈이 더 많이 듭니다. 현재 실업수당 예산이 14조 원가량 되는데요, 만약 이 제도를 하게 되면 2015년 5월 기준 114만 명의 실업자를 전부 취직시킨다 해도 13조 6000억 원이 듭니다.”
- 더 적게 드네요.
“그렇지요. 무엇보다 일하게 되면 개인은 자존감을 회복해 좋고, 정부는 세금을 걷어 좋고, 경제는 역동성을 얻을 수 있어 좋게 되는 겁니다.”
최문순 지사는 노동자가 65세 이상 되면 연금처럼 돈을 받게 되는 일자리 안심공제 정책도 만들었다. 노동자가 월급 중 15만 원을 내면, 기업은 15만 원, 지방정부는 20만 원을 보태 매달 50만 원을 적립하게 해주는 제도다.
4. 당사자 우선주의 정책
-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반대합니다.”
- 왜요?
“한 달에 4만 원 주고 빈부격차가 해소되겠습니까. 경기가 크게 활성화되겠습니까.”
-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은요?
“기본소득이든, 안심 소득이든 쓸 데 없는 소리입니다. 좀 기분 나쁘겠지만 그런 정책을 내놓는 사람 중 누군가 대통령이 된다면 빈부격차는 더 심해질 겁니다.”
- 그럴까요?
“기본소득은 다 주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목적이 아주 뚜렷하게 맞춤형으로 복지를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야권에서 말하는 선별적 복지와 비슷한 거 아닌가요.
“그런 거랑은 다르고요, 예를 들면 강원도에서는 육아수당이 있습니다. 아기를 낳은 엄마에게 매달 40만 원씩 4년 동안 주는 겁니다.”
- 아….
“강원도가 불리한 조건임에도 출산율이 전국에서 제일 좋습니다. 육아수당 때문이지요.”
- 문제는 재정인데요.
“이 역시 더 적게 듭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확대해도 1년에 출생하는 아동들에게 40만 원씩 주면 1조 3000억 원이 듭니다. 정부 예산 중 출산장려비용으로 나가는 돈만 47조 원입니다. 비교하면 훨씬 적게 들지요.”
- 어디서 착안하게 된 건가요.
“프랑스에서 배웠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아이를 한 명 낳은 가정에 72만 원씩 스물한 살까지 줍니다. 그 결과 출산율이 제일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올라갔지요.”
- 지금까지 말한 정책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뭔가요.
“당사자 우선주의 정책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그 가정에, 취직하면 그 사람에게, 등록금이 필요하면 학생에게 등 당사자에게 직접 준다는 겁니다.”
강원도는 국립대학교 등록금이 무료다. 주거 복지 정책으로는 청년 아파트를 건설하고, 집 없는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 아파트를 지원하고 있다.
- 당사자 우선주의 정책은 또 누가 추진하고 있나요.
“이런 정책은 저 말고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부 돈을 풀면서 간접적으로 우회해 인프라 깔고 지원하는 방식이지요.”
- 해외는 어떤가요.
“북유럽 국가에서나 당사자 우선주의를 합니다.”
- 다른 정치인들은 왜 이런 걸 안 할까요. 기본소득보다 훨씬 매력적인 것 같은데.
“공부를 많이 안 해서 그러겠지요.”
- 신용인 제주대 로스쿨 교수라고 마을 운동에 관심을 둔 분이 있는데요, 그분이 마을 사업비가 자칫 비리로 얼룩지거나 건물만 짓고 휑하니 된다고 지적한 적이 있거든요. 이것보다 정부 지원금을 마을공동기금으로 하고 주민이 직접 관리하고 필요한 데 쓰는 게 낫다고 주장했는데 일맥상통하나요.
“그렇습니다. 뭘 자꾸 짓습니까 짓기는. 정부 한 해 예산이 550조 원인데 부처별로 그렇게 해서 사라지고 낭비되는 돈이 너무 많습니다. 각 가정에 도달되게끔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국가 정책의 중심을 토목이라든지 농업이라든지 이런 데 두지 않고 개인, 가족, 가정에 둬야 합니다.”
- 그게 당사자 우선주의의 핵심인가요.
“네네.”
5. 당신은 귀한 사람, 인존주의
이 모든 정책이 사람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나오게 된 것 같다.
“정치는 사랑이니까요(웃음).”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의 정치 사랑학이 연상됐다.
대화는 자연스레 그가 출간한 <당신은 귀한 사람>으로 옮겨갔다.
- 주제가 뭔가요.
“인간이라는 것은 한 분 한 분이 다 귀한 존재다. 태어날 때부터 존엄한 존재로 태어났다. 그것이 우리 삶의 방향이 돼야 한다. 국가의 방향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복무해왔다면, 이제는 국가가 개인을 위해서 복무해야 한다…. 이렇게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 어떻게요.
“우리 헌법 1조1항을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그걸 바꿔서 ‘인간의 존엄은 보장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우리 국민, 내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등 말이죠.”
사상으로 치면, 인존주의다.
- 당사자 우선주의 정책과도 연결돼 있네요.
“그렇죠. 관점을 개인에게 옮기자. 국민 한 분 한 분이 굉장히 귀한 분들이니까 국가의 정책을 그분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맞추자는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교육, 육아, 집, 직업 딱 네 가지만 해결해주면 됩니다. 청년들이 절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 엄청난 개혁이 될 것 같은 데요?
“패러다임을 확 바꿔야지요.”
-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선에 나온 겁니다. 지역에서는 아무리 떠들어도 잘 설득이 안 되니까. 지금의 나라 구조로는 어렵습니다. 완전히 판을 바꿔야지요.”
슬로건도 완판남(완전히 판을 바꾸는 남자)이다. 참고로 최문순 지사의 대선 출마를 설득한 이들이야 여럿 있겠지만,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도 그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정책 얘기를 듣고 있자니 왜 설득하려 했는지 이해가 갔다. 앞서 안일원 대표는 여의도 중앙정치에서 보여주지 못한 대한민국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때라고 <시사오늘>과의 대화에서 전한 바 있다.
- 지지율이 너무 낮아서….
“끝장은 봐야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본경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예비경선 결과 이재명·이낙연·정세균·추미애·박용진·김두관 이상 6명으로 압축됐다. 처음 9룡이 출발했지만, 최문순·양승조 지사는 컷오프됐다. 이광재 의원은 정세균 전 총리와 단일화했다.
최문순 지사는 “무모한 도전을 응원해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로 내려갔다. 그렇지만 무모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TV 토론회 등에서 그가 내놓은 당사자 우선주의 정책은 많은 공감을 샀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정권 재창출을 위한 필승전략으로 꼽는 것은요.
“시대정신을 가장 명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대선주자를 뽑아야겠지요.”
- 이재명 지사가 본선 후보가 된다면, ‘정동영 대선후보 시절의 시즌2’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질 후보를 내면 안 되겠지요.”
- 그렇지만 대세입니다. 본선 경쟁에서 될 가능성이 크지 않나요.
“단기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철학과 신념, 그것을 실현할 실행 능력으로 결정될 거로 봅니다.”
실제 경선 판도는 바뀌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세론’을 이낙연 전 대표가 위협하면서 달라지고 있다. 최문순 지사 공도 큰 듯하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토론회 등에서 같은 범 친문인 이낙연 전 대표와 정책 공조 등에 나서며 그의 존재감을 키우는 데 역할을 했기 때문.
- 야권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주자입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부상하고 있는데요.
“둘 다 대선에 출마하면 안 됩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밖에 되지 않잖습니까.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이기에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윤석열·최재형이 생겨날 겁니다.”
- 대권욕 때문에 나왔다고 보는 건지요.
“그렇습니다. 정당화할 어떤 명분도 없습니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명백히 과잉수사를 받았습니다.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윤 전 총장의 잘못은 그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국가 권력을 정치적 목적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꽤 단호했다.
6. 정치의 길, 진보의 길
화제를 돌렸다. “정치 어떻게 하게 됐나요?”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됐습니다. 방송사 사장에서 물러나 몇 달간 대북사업을 하던 중 민주당에서 비례대표를 뽑아 신청하게 됐지요.”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 시절이었다. 18대 국회 입성.
- 손 대표께서 영입한 건지요.
“(갸웃하며) 영입인가(웃음). 그때도 언론개혁이 과제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 장악이 심하다 보니 전문가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미디어법, 4대강 예산 등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했다.
- 2011년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물러나면서 재보선에 출마했잖아요?
“저쪽(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엄기영 MBC 사장이 나왔거든요. 대항마로 차출된 거지요.”
노무현 정부 때는 최문순 지사가 MBC 사장이, 이명박 정부 때는 엄기영 앵커가 사장이 됐다. 전·후임이 맞닥뜨린 셈.
- 이광재 의원 도움도 받았겠네요?
“그렇습니다. 이어받아서 하니까 선거 운동도 같이하고 그랬지요.”
당선됐고, 내리 삼선째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일자리 창출과 복지 구현, 철도-도로 연결의 강원도 교통지도 완성 등에서 성과를 냈다.
- 유라시아 철도가 정말로 연결된다면요, 강원도도 중심지로 떠오를까요?
“강원도는 옛날부터 교통의 요충이었습니다. 유라시아 철도가 연결돼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북한의 백두산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프랑스 파리까지 가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해안 국가에서 대륙 국가가 되는 거지요.”
- 그런데 도정에 대한 지적도 일부 나오는데요,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됐지만, 사후 관리 문제가 있었잖아요. 잘 해결됐나요.
“거의 해결됐습니다. 알펜시아 리조트를 팔아서 빚도 갚았고, 민간에서 추가 투자 개발할 계획도 있고요.”
- 또 이런 평가도 있더라고요. 친중 인사가 아니냐는 시각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처음엔 가짜뉴스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정치권이 붙었습니다. 극우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 정치화가 됐지요. 저에 대한 정치적 의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이 기회에 강조하고 싶습니다.”
- 친미 vs 친중 외교로 나눈다면 어느 쪽인지요.
“김대중 대통령처럼 실리외교로 가야 합니다. 한미동맹이라는 기본 축 위에서 중국, 일본, 러시아하고도 실리 관계를 유지해야지요.”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도지사 3선을 마치게 되면 중앙정치로 오게 되는지를 물었다.
“하하. 좀 봐야죠.”
어느 위치에 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그의 말대로 그곳이 어디든 “인간이 존엄한 나라를 꿈꾸며 세상을 바꾸는 걸음을 내디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책에서 밝혔듯 빈부격차 해소 외에도 기후위기, 저출생·고령화, 남북갈등, 4차 산업혁명 등 5대 절대 과제를 푸는 데 앞장설 것이고 말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인존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 듯했다.
- 노선이 뭔지요.
“하하. 진보입니다. 원래 잡개런티(일자리보장제)가 좌파정책이고 기본소득이 우파 정책인데, 우리는 어째 거꾸로 됐네요(웃음)”
P.S.
요약하면 이번 87년 6·10항쟁 되짚기 11번째는 인간의 존엄을 지킨 민주주의 혁명과 그 너머의 시대정신 해법을 모색하는 언론인 출신 정치가의 고민을 담았다. YS(김영삼)와 12대 총선의 재발견(정세운)을 모티브로 민주 항쟁의 결집체 역량(김민석), 전대협의 방향 전환(함운경), 비폭력 평화 운동(김현), 4‧13 호헌조치가 결정타(유기홍), 진화하지 못한 586의 명암(明暗)(이현종), 천주교계의 국본 참여(이명준),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 사건을 알린 특종기자의 투쟁기(이부영),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성공의 결정타(이재오), YS총선 참여, 6·10항쟁의 동력(이성헌)에 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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