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터뷰] 김원웅 “북한 3대세습, 종북좌파 아닌 친일파 이승만·박정희 때문”
스크롤 이동 상태바
[풀인터뷰] 김원웅 “북한 3대세습, 종북좌파 아닌 친일파 이승만·박정희 때문”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9.26 09:33
  • 댓글 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원웅 광복회장
○ “친일 청산이 편 가르기? 친일 비호人이 바로 민족분열주의자”
○ “김부겸, 처남 이영훈 때문에 친일 청산법 반대…박정희 찬양도”
○ “친일 청산, 연좌제 주장 아냐…사실 관계 규명하자는 것”
○ “친일파-北, 적대적 공생 관계…친일 청산되면 北체제 정당성 사라져”
○ “김구, 대통령 됐다면 친일파 청산했을 것…친일 의혹엔 증거 부족”
○ “과거 공화당·민정당 소속, 평생 부끄러울 것…원죄 갚기 위해 盧 도와”
○ “정권 해바라기? 정치에 관심 없다…反日 개혁가로 남겠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병묵 기자 한설희 기자]

〈시사오늘〉은 지난 8월 27일 여의도에 위치한 광복회관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을 만났다. 해방 후 반세기를 훌쩍 넘긴 2020년, ‘친일 청산’은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시사오늘〉은 지난 8월 27일 여의도에 위치한 광복회관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을 만났다. 해방 후 반세기를 훌쩍 넘긴 2020년, ‘친일 청산’은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분열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 편 가르기 혹은 애국. 소신 혹은 아집.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축사 이후 김원웅 광복회장에게 붙은 양면(兩面)의 꼬리표다.

제75주년 광복절을 두고 ‘최악의 광복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동시에 다른 곳에선 김 회장의 발언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이분법적 논란의 중심에 그의 기념사가 있었다. 김 회장은 해당 연설에서 “민족의 발목을 잡는 것은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해 존재하는 친일”이라면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인사들의 파묘(破墓)를 주장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향해서도 “반민특위를 폭력적으로 해체시키고 친일파와 결탁한 사람”이라고 혹평했으며, 친일 행위를 한 안익태 작곡가의 애국가 역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제주에서는 원희룡 지사가 “역사를 조각내고 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시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앞으로 이런 식의 기념사는 보내지 말라”고 경고해 행사장에서 큰 소리가 나기도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은 분열주의자냐고. 결과적으론 두 갈래로 양분됐으니 분열이 아니겠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나는 ‘국민통합주의자’에요. 친일을 청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분열된 채로 영원히 남게 됩니다. 친일을 비호하는 의원이나 일부 보수 세력들이 분열주의자겠지요.”

지난 8월 27일, 〈시사오늘〉은 여의도에 위치한 광복회관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을 만났다. 해방 후 반세기를 훌쩍 넘긴 2020년, ‘친일 청산’은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2020년 8월 15일, 현재를 말하다


김 회장은 이날 “이영훈 전 교수의 문제를 김부겸 전 의원에게 묻는 것은 연좌제”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반대한 건 본인이니 언젠간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회장은 이날 “이영훈 전 교수의 문제를 김부겸 전 의원에게 묻는 것은 연좌제”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반대한 건 본인이니 언젠간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먼저 ‘광복절 축사 논란’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혹자는 왜 민족 단일이 이뤄져야 할 광복절에 그런 도발적인 발언을 했느냐고 지적한다.  

“하하. 광복절이니까 해야지. 광복절에 안하면 그런 얘길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나.”

-국민의힘 등 보수 정당으로부터 ‘국론 분열’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오히려 반대다. 친일 청산을 하지 않을 시 우리 사회가 분열된다. 궁극적으로 나같은 사람들이 국민통합주의자고, 친일을 비호하는 자들이 ‘민족분열주의자’다. 친일 반민족 세력이 영남지역주의에 기생해 생존해왔기 때문에, 영남 기반의 보수 정당이 반발하는 거다. 그러나 국민들은 점차 깨우치고 있다. 이들의 운신의 폭은 좁아질 거다. 역사의 이성을 믿는다.”

-광복회는 정부 지원금을 받는 보조단체다. ‘정치적 중립’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무슨 소리. 친일 청산은 광복회의 존재 이유다. 광복회는 ‘민족정기선양을 위한 사업’을 하는 곳이라고 정부의 인증을 받았다. 정관(定款)에도 명시돼 있는 내용이다. 친일 청산이 곧 민족정기선양 사업 아닌가.”

-지난달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으로부터 ‘분열 조장 가능성’ 때문에 ‘경고 조치’를 받았다고 들었다.

“사실이 아니다. 명백한 왜곡 보도다. 보훈처장은 정무위원회에서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건 아니다’라고 분명히 얘기했다. 해당 기사가 나가자 보훈처 실무진들이 미안함을 표하면서 내게 직접 속기록도 보내왔다. ‘주의’라는 표현 자체를 한 적이 없더라.”

-지지율 하락으로 다급해진 정부여당이 ‘친일 프레임’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는 생각도 제기된다.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은 없었나.

“말도 안 된다. 사전 교감? 나는 청와대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그만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김원웅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일각에서는 ‘친일 프레임’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토착 왜구’나 ‘친일파’라는 표현이 진보 정권의 편에서 보수 정당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 않나.

“그렇지 않다. 친일 반민족 세력은 어디에나 있다. 민주당엔 왜 없겠나.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관위 허가 하 1209명의 후보에게 ‘국립묘지법 개정’과 ‘친일파 청산’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결과를 보니 당선자 253명 중 190명, 즉 3분의 2가 넘는 현직 의원들이 친일 청산에 찬성한다고 하더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통합당 지역구 44명의 의원들도 포함됐다. 반면 민주당에서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 친일과 반일은 정당, 정파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민주당에선 누가 반대했나.

“김부겸 전 의원이 친일 청산과 국립묘지법 둘 다 반대했다. 정치적 동지로 같은 길을 걸을 때도 있었는데, 아무리 처남 문제가 걸려있다고 해도…. ‘역사는 정치의 어머니’라고 했다. 언젠간 김 전 의원도 역사와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야할 것이다.”

김부겸 전 의원의 처남으로 알려진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징집의 강제성을 반박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책 〈반일종족주의〉의 공동 저자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권에선 김 전 의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이날 “이영훈 전 교수의 문제를 김 전 의원에게 묻는 것은 연좌제”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반대한 건 김부겸 본인이니 언젠간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고 백선엽 장군을 향해 “한국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면서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나치협력죄’로 감옥에서 그 생명을 다했을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고 백선엽 장군을 향해 “한국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면서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나치협력죄’로 감옥에서 그 생명을 다했을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전 의원과는 통추, 하로동선,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까지 함께한 인연이 깊지 않나. 최근 행보에 크게 실망한 듯하다.

“속된 말로 ‘노무현 팔이’가 심하다. 김 전 의원은 총선 때 대구에 박정희기념관을 짓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노무현은 국회의원을 관두면 관뒀지, 독재자 박정희를 칭송한 적 없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노무현의 길’을 가겠다고 하나? 광복회 안에선 이미 김 전 의원의 이중적 행태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

-친일 청산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나. 책임을 당사자도 아닌 후손들에게 묻는 것은, 김부겸 전 의원의 경우처럼 연좌제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선,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친일파와 화해할 수 있다. 다만 화해의 전제조건이 하나다. 진실을 규명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거다.”

-조상들의 죄를 후손들이 뉘우쳐야 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선친의 친일을 그 자식과 가족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절대 비호해선 안 된다. 예컨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의 친일 행위를 책임질 필요는 없는 거다. 그건 연좌제다. 다만 정치인 박근혜가 박정희의 친일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그의 책임이다. 공인으로서 잘못은 잘못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친일의 기준이 뭔가. 어디까지를 친일 행위로 봐야 하나.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나는 해방 직후(1948년) ‘친일 반민특위’에서 만든 규정을 적용하자는 입장이다. ‘생계형 친일’, 즉 면장이나 서기, 조합 직원 같은 ‘생존형 부일협력자’는 그냥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다만 악질적인 사람들, 즉 ‘적극적 친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그들의 행적을 따져봐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한 노덕술 같은 사람, 또 만주군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원들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지난 7월 10일,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전 육군대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러나 그의 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이 알려지면서 현충원 안장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백 장군은 결국 대전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었지만 영결식에서 여권 인사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마지막 가는 길은 찬반시위로 소란했다. 김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백 장군을 향해 ‘백선엽이’, ‘반인륜주의’, ‘나치’ 등의 부정적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그는 “백선엽은 한국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면서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나치협력죄’로 감옥에서 그 생명을 다했을 사람이다. 운이 좋은 편”이라고 일갈했다.

김 회장은 “안중근 의사가, 백범 김구가, 단재 신채호가 꿈꿨던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맞느냐”면서 “동족을 배반하고 외세에 빌붙었던 사람들이 다시 집권세력이 된 나라는 망한 월남과 대한민국 뿐”이라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회장은 “안중근 의사가, 백범 김구가, 단재 신채호가 꿈꿨던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맞느냐”면서 “동족을 배반하고 외세에 빌붙었던 사람들이 다시 집권세력이 된 나라는 망한 월남과 대한민국 뿐”이라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간도특설대를 굳이 꼽은 이유는 고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여부를 비판하고자 함인가.

“그 사람에 대해 할 말 많다. 그 시절엔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교직에 종사하면 군 면제도 받을 수 있었다. 백선엽은 자원해서 군대를 간 사람이다. 바로 ‘적극적 친일’의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백선엽 장군, 나아가 친일파들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된다고 보나.

“프랑스의 샤골 드 골은 정권을 잡자마자 9000여 명의 나치 협력자들을 사형시켰고, 별도의 소급입법을 만들었다. 나치협력을 ‘반(反)문명 범죄’이자 ‘반인륜 범죄’로 보고, 시효가 없이 끝까지 추적한다는 국제법의 원칙을 세운 것이다. 한국도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친일은 단순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 문명 전체에 대한 잔학한 행위다. 백선엽처럼 90살 넘은 노인이라도 100년형(形), 200년형을 선고해야만 한다. 그게 반인륜죄에 대한 21세기의 시대정신이다. 친일 같은 반인륜범죄를 그냥 넘어가는 건 ‘야만 국가’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법적 단죄는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 보인다.

“맞다. 한국의 처벌은 ‘진실 규명’에 그친 수준이다. ‘친일인명사전’에 겨우 친일파 이름 하나 등록하고 있다. 그것조차 못하겠다고 난리가 난다. ‘독립운동가 33인’ 중 이갑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행적을 조사하다보니 이 사람이 일제에 전향해 밀정(密偵)짓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증언은 많았으나 객관적 자료가 없어서 독립유공자로 등록됐다. 전 세계 어느 나라가 민족반역자를 이렇게 ‘최소한’으로 처단하나.”

-한국은 왜 유럽처럼 사법적 단죄를 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나.

“사회 기득권층인 우리 법조계가 일본 법조계를 그대로 베껴왔기 때문이다. 한국 법조계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거다. 지금도 프랑스에선 과거 나치 협력자들이 일사부재리와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적용받지 않고 옥사(獄死)한다. 그게 제대로 된 국제법인데, 우리나라 법조인들은 일본식 법을 배우고 자라 문제의식이 떨어지는 것 같다. 통탄할 만한 일이다.”

 

임시정부부터 해방까지(1919~1945), 대한민국의 과거를 되짚다


김 회장은 “이회창을 도와 국회의원 3번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내 소신과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노무현을 도왔다”고 강조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회장은 “이회창을 도와 국회의원 3번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내 소신과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노무현을 도왔다”고 강조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친일파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 문제가 제때 논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8년 남한 정부 수립 이후 반민특위의 활동이 있었지만, 혼란스러운 당시 정세 속에서 그들의 활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뒤이어 발생한 한국전쟁 속에서 좌우 대립이 심화됐고, 휴전 이후 대한민국은 ‘친일 청산’ 보다 ‘반공’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친일 청산에 대한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김 회장은 “안중근 의사가, 백범 김구가, 단재 신채호가 꿈꿨던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맞느냐”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 독립국이 총 121개국인데, 이들 중 동족을 배반하고 외세에 빌붙었던 사람들이 또 다시 집권세력이 된 나라는 월남과 대한민국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이 월남전에 참전했던 건 결국 ‘끼리끼리’였다고 볼 수 있겠지요. 결과만 놓고 보자면 월남은 망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하나만 남았는데, 이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인 말대로 2차대전 종전 후 식민지와 반민식지를 경험했던 국가, 대표적으로 프랑스나 중국은 곧장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을 겪었다. 한국은 왜 과거 청산이 1948년 남한 정부수립까지 미뤄지졌다고 보나.

“사회적 구조의 문제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점령군’ 맥아더가 국내에 있던 여운형 등의 ‘건국준비위원회’를 해체시켜버렸다. 김구의 임시정부도 국내로 못 들어오게 막았고,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해체하고 개인자격으로 들어오라’고 협박했다. 맥아더는 애초 조선을 독립시켜 줄 생각이 없었던 거다. 통치권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사회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된 건데,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됐겠나.”

-친일 청산 실패에 미국의 책임이 크다는 건가.

“6·25 전쟁을 일으킨 것은 김일성이지만, 그보다 5년 앞서 남한 단독정부를 세우고 한반도를 분단시킨 건 미국이다. 1945년엔 미국 GDP가 세계의 70% 수준이었다. 당시 최대강국이었던 미국의 최대이익이 ‘한반도 분단’이었던 거다. 그들은 미·일 동맹에 남한을 종속시키려 했다. 남한은 미일동맹의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남한 친일파들이 한국에서 계속해서 득세하는 게 일본과 미국 입장에선 속 편한 일이었다.”

보수 학자들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둔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진보 학자들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여기고 ‘김구 국부론’을 주장한다.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국부는 김구가 됐어야 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시정부 얘기가 나오니 묻겠다. 문 정부 아래 계속되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임시정부 설립’을 건국으로 규정하면, 북한 역시 임정과 관계없는 이들에게 건국됐기 때문에 6·25전쟁도 ‘통일전쟁’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건국절 논란이 ‘북진통일 옹호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표현을 참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문제다.” 김 회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에 대해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만 김일성이 한국에 ‘민족해방’ 따위의 명분을 갖고 침략한 배경에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무슨 뜻인가.

“북한이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떠들 만큼, 남한은 ‘친일파의 나라’가 돼 버렸다. 북한이 6·25를 일으키면서 ‘민족해방’ 따위의 명분을 내세울 수 있게끔, 남한의 기형적인 사회적 구조가 빌미를 줬다는 거다. 이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남한이 친일 청산을 해야 남북문제도 끝난다.”

-친일 청산과 북한 체제가 관계가 있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남한이 친일을 청산했다면 북한이 삼대세습을 못 끌고 갔을 거다. 북한의 삼대세습 독재는 남한의 ‘종북 좌파’ 때문이 아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친일파들 때문이다. 여전히 친일파 세력이 기득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체제를 유지할 만한 도덕적 명분을 갖고 있는 거다. 친일파와 북한은 적대적 공생 관계나 마찬가지다.”

-그럼 ‘김구 국부론’대로 김구가 초대 대통령이 됐다면 친일 청산도 이뤄졌을 거라고 보나.

“그렇다. 백범 김구는 귀국하면서 263명의 살생부를 만들었던 사람이니까.”

그러나 김구 역시 해방 후 한국독립당을 중심으로 정치 세력을 규합하고 정치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친일 인사들(이광수·최창학 등)과 함께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는 한국민주당(한민당)으로부터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받기도 했다. 한민당은 당시 김병로·김준연·백남훈·송진우·조병옥 등 국내 거주 독립운동가와 김성수·윤치영·장덕수 등 친일 인사가 결성했던 친(親)지주, 친일 성향의 기득권 정당이다.

-김구도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건 ‘적극적 친일’에 해당하지 않는다. 김구는 일제로부터 직접 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 또 한민당의 90%가 친일파라고 쳐도, 10%는 아닌 사람도 있을 것 아닌가. 정당이라는 게 본래 그렇지 않나. 김성수 같은 사람이 한민당 창당의 주요 인사였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공화당부터 노무현까지, 김원웅의 과거를 회상하다


1990년대 초, 김 회장이 초선의원 때의 일이다. 그에 따르면 ‘보궐 선거 유세 기간’으로 추측된다. 이기택 당시 당 대표는 유세 도중 열변을 토하며 “우리 꼬마민주당은 정통 야당인 한민당의 뿌리를 이어가겠다”라고 소리쳤다.

“나랑 노무현, 제정구가 그걸 듣고 어찌나 비웃었던지.” 김 회장은 회고했다.

“그게 무슨 자랑이냐, 싶었지요. 우리 셋이서 이기택 대표를 욕하며 우린 ‘친일당’인 한민당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속닥거렸어요. 그렇게 정치 신인 시절부터 항상 친일 청산 의식을 갖고 살았어요.”

-‘국민학교’를 지금의 ‘초등학교’로 바꾸자는 법안,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한일 관계 갈등의 원인이 됐던 ‘일제강제징용 진상규명법안’을 발의했던 주인공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마지막으로 “정치인이 아닌 한국 사회의 개혁가로 남고 싶다”면서  “현재의 ‘친일 반민족 구조’에 작은 틈이라도 내는 역할을 광복회가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마지막으로 “정치인이 아닌 한국 사회의 개혁가로 남고 싶다”면서 “현재의 ‘친일 반민족 구조’에 작은 틈이라도 내는 역할을 광복회가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그렇다. 최근 진중권 전 교수가 ‘김원웅이 문 대통령 인기 떨어지니까 소란 떤다’는 식으로 말했던데, 일관된 나의 삶의 태도가 원래 이렇다. 나는 한나라당에 몸담으면서 이회창에 맞서 국보법 폐지 법안을 내고, 일제강제징용 진상규명법안과 친일인명사전 규명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과거 독재 정권때 공화당과 민정당에 소속됐었다는 이유로 ‘권력의 해바라기’ 또는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대학 졸업반 때, 역사의식이 형성되기도 전의 일이다. 공화당 사무직 취직 광고가 붙어 있기에 신청한 것이 나의 원죄라면 원죄다.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이를 반성하고 있다.

원죄가 있기에 친일 청산이라는 원칙에 더욱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3당합당 당시 젊은 40대의 노무현, 이철, 김정길 동지들 앞에서도 ‘아우슈비츠 사과’처럼 몇 번이고 사죄했던 내용이다. 이름 없는 개혁당 당원에 불과했던 유시민, 홍영표, 김태년, 안민석 앞에서도 사죄한 바 있다. 그 뒤로 30년간 신채호와 김구의 노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고 김근태 같은 사람들이 도망갈 때도 나는 홀로 꼬마민주당을 지켰다.”

-한나라당에서 나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한 것도 그 연장선상인가.

“당시 여론조사 결과가 1등 이회창, 2등 정몽준, 3등이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은 10%대 밖에 안 됐다. 그러니까 민주당에서도 후단협을 만들어서 다 정몽준 편에 줄섰던 것 아닌가. 김민석 의원이 탈당까지 해서 갔기에 홀로 주목받은 것이지, 김근태를 포함한 100여 명이 실질적으로 후단협에 갔다. ‘3등 노무현’ 돕겠다고 혈혈단신으로 나와 개혁당을 만든 거다.”

-주변 사람들은 뭐라고 했나.

“허허, 미쳤냐고 그러지. 그래서 ‘이회창 도와 국회의원 3번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나왔다. 그런 결심을 왜 했겠나. 원죄가 있기에, 원칙에 충실하려고 내 철학과 부합하는 노무현을 도운 것 아닌가. 나는 내 이름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후 스스로의 행보에 대해 떳떳함을 갖고 있다.”

-옆에서 본 노무현은 친일과는 거리가 먼 대통령인가.

“당연하지. 이승만, 박정희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말도 못했던 대통령 아닌가. 심지어 박정희는 한일회담 때 ‘국민 정서 때문에 (독도를) 줄 수가 없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우리 영토라고 처음 못 박은 게 노무현이다.”

-‘노무현 정신 계승’을 표방한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가.

“친일에 기반을 둔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광복회장으로서 앞으로의 행보를 설명해준다면.

“최근엔 해방 이후 친일을 비호한 정치인과 언론인의 명단을 작성 중에 있다. 원희룡, 하태경 등 친일 비호 정치인들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 자손 대대로 남길 생각이다.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 실제로 노무현이 죽고 10년 동안 강원도 골짜기에서 농사나 지었다. 단지 한국 사회의 개혁가로 남아, 현재의 ‘친일 반민족 구조’에 작은 틈이라도 내고 싶을 뿐이다. 그동안 광복회는 기득권의 ‘데코레이션(장식)’만 했다. 3·1절이나 광복절에 가서 얼굴 한 번 비치는 역할이나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장식품 역할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민경태 2020-09-28 14:31:17
인터뷰 기사 재밌네요 읽고 또읽었어요

박경륜 2020-09-28 04:51:26
전 이분을 지지 합니다.

강도경 2020-09-27 13:43:57
별이상한사람이광복회장이라니! ㅉㅈㅉ 박정희대통령 발톱의때가 이사람보다깨끗할듯.

ㅇㅇ 2020-09-26 22:09:10
무조건 친일파잘못이라는 저사람말에 공감은할수없는데 인터뷰는재밋네여

JP 2020-09-26 17:19:01
이 정부는 다르다고? 친일파 꼭 청산해야되는 문젠데 이정부는 제대로된 의지도 없이 급하면 토착왜구로 돌려막기 급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