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문재인 정권은 '집 걱정,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출범했다. 참 호기로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며 반드시 집값 안정화를 이룰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취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금융, 세제 등을 총망라한 강도 높은 종합부동산대책과 후속 조치, 보완책들이 이어졌다. 혹자들은 23번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5번이라 하는데 그게 뭣이 중요하랴. 과정보다 결과를 따지는 게 정책이다. 집값은 껑충 뛰었다. 정부여당은 아니라고 하는데, 공공 통계를 봐도, 민간 자료를 살펴도 집값 상승 속도가 역대 정권 중 단연 1위다. 이젠 전월세마저 폭등세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현재, 국민들은 집 걱정,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실정이다.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는 더욱 공고해졌고, 코로나19 등 외부 요인까지 겹치면서 부동산공화국 탈피는 사실상 요원해졌다. 주머니 속에 많이 있다던 더 강력한 대책들은 이미 다 꺼낸 것 같은데, 사상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하도 많이 올라서 억지로 집값을 떨어뜨릴 수도 없다. 부동산이 급락하면 금융이 무너지고, 국가경제가 무너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아무도 대통령의 호언장담을 신뢰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그야말로 완벽히 실패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가상의 적을 만들어 효과를 극대화하다
모든 정책은 방향성을 가진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정책은 '형평성'으로 향한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기조가 부동산대책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공급자가 우위에 있는 왜곡된 주택시장 구조를 개편해 형평성을 맞추는 방향으로, 간접적인 집값 안정화 효과를 도모하는 전략을 펼쳤다. 자산 과세 형평성에 무게를 둔 세제 개편, 부동산 투자를 원천 차단하는 각종 금융 규제, 수요자 지위 강화에 포커스를 둔 공공부문 후분양제, 최고가격제인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그리고 최근 임대차보호3법까지, 모두 공급자 이익을 줄이고 수요자 편익을 늘리는, 궁극적으로는 수요자 지위를 끌어올려 주택시장의 형평성을 강화시키는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형평성에 무게를 둔 부동산대책이 거듭 시행되자, 시장경제를 역행하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라며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목소리는 힘을 받지 못한 채 이내 수그러들기 일쑤였다. 워낙 지지율이 탄탄한 흐름을 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현 정권이 프레임을 잘 짰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세력을 적폐로 규정하고, 이들이 집값을 폭등시키는 주범이요, 부동산 정책의 '주적'(主敵)이라고 내세웠다. 투기수요 근절을 통한 실수요자 보호라는 대원칙, 쉽게 태클을 걸 수 없는 절대명분이었다. 여기에 반대하면 부동산 투기꾼과 결탁한 적폐세력으로 분류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보이지 않는 적을 만들어 결속을 꾀하고 여기에 반발하는 자도 적으로 규정한다. 쉽게 말해 갈라치기다.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위정자들이 재미를 본 전형적인 프레임이지만 부작용도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임 균열 과정
집권 1년차인 2018년 서울 집값이 급등했고, 뭔가 이상한 조짐이 감지됐다. 문 대통령이 "역대 가장 강력한 대책"이라고 자평한 8·2 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문제를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정부는 오히려 프레임을 더욱 견고화했다.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여러 공개석상에 나와 집값 상승의 원인은 투기세력이라고 못을 확실히 박은 것이다. 이어 그해 9월 투기수요 억제를 통해 주택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9·13 부동산대책이 공개됐다. 이 또한 "역대 가장 강력한 대책"이라는 자평이 들렸다. 정부가 투기세력을 집중 겨냥한 강도 높은 정책을 발표하면 집값 상승폭은 잠시 둔화됐다. 하지만 이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2019년은 정부의 이 같은 프레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시기다. 연초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손혜원 전 의원 등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투기세력을 잡겠다던 정권에서 투기꾼으로 의심되는 자들이 나오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싹텄고, 문재인 정부는 자신이 짠 올가미에 스스로 걸린 꼴이 됐다. 좋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지자 현 정권은 다시 한번 프레임 강화를 시도한다. 그해 들어 한동안 안정화 흐름에 들어간 부동산 시장에 별안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2019년 8월)라는 폭탄을 떨어뜨린 것이다. 로또분양을 통한 투기세력의 시세차익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게 당시 국토부의 설명이었다. 무리수였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2019년 5월 85, 6월 89, 7월 96 등으로 안정세를 보였던 전국 주택매매가격 전망지수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발표 이후 8월 98, 9월 100, 10월 104, 11월 109, 12월 111로 급등했다. 정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한 데 따른 공급 위축 우려, 신축 아파트로의 수요 쏠림, 규제를 피한 지역에서의 풍선효과 등이 맞물리면서 집값이 폭등하고, 향후 상승 기대 심리도 높아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토부는 주택 공급량은 부족하지 않다며 기름을 붓기도 했다. 이어 대망의 12·16 부동산대책이 나왔다. 9억 원 이상 주택담보대출은 LTV를 20%로 제한하고, 15억 원 이상 고가주택에 대해서는 아예 주담대를 막는 게 주요 골자다. 아파트 청약 시 중도금 대출도 9억 원을 기준으로 막혔다. 돈이 있는 사람만 집을 살 수 있다, 돈이 없는데 집을 사려는 사람은 투기세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무주택 실수요자, 1주택자까지 부동산 정책의 '적'(敵)으로 삼은 셈이다. 내 집 마련 사다리가 사라졌다.
이 같은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정부여당은 금이 간 프레임을 손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2020년 1월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며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본인의 입으로 공식 선포했다. 주무부처 사령탑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인간의 존엄과 직접 관련된 주거와 관련된 정책은 시장경제의 룰에 맡길 순 없다. 부동산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투기수요 근절, 실수요자 보호라는 원칙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신년사를 내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주택 정책에서 3주택을 갖는 것은 정상적인 게 아니다"라며 집값 폭등 책임을 다주택 투기세력 탓으로 돌렸다.
이윽고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 부동산 정책이 총선 이슈에서 배제됐다. K방역을 앞세운 정부여당, 위기에는 현 집권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자 심리 등에 힘입어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총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부동산 시장도 안정화 국면에 접어든 눈치였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국내 집값 바로미터인 서울 집값 상승률은 올해 1월 0.48%, 2월 0.35%, 3월 0.47%, 4월 0.16%, 5월 0.02% 등으로 현저히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국 주택매매가격 전망지수도 1월 108, 2월 110, 3월 103, 4월 95, 5월 99 등으로 줄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이 대목에서 결정적인 자충수를 둔다. 바로 6·17 부동산대책이다. 규제 지역 확대와 대출 규제를 통해 갭투자를 차단하고, 세 부담을 늘려 법인을 통한 부동산 우회 투기를 막는 게 해당 대책의 주요 골자다. 투기세력과의 전쟁이라는 기조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집값 하락 안정화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당시 대책을 발표하면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투기수요 근절과 실수요자 보호라는 원칙 하에 주택 시장 과열 요인을 차단하고 기존 대책의 후속 조치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 앞으로도 부동산시장 동향을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하며 시장 불안 요인에 대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무지한 것인지 궁금하다. 6·17 대책은 사실상 전(全)국민을 부동산 정책의 '적'으로 돌리는 정책이었다.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사업 조합원 거주기간 확대, 재건축부담금 본격 징수 등 방침으로 공급 우려를 극대화한 데다,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 대해서도 대출 규제를 사실상 강화하면서 내 집 마련 사다리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심지어는 대출을 실행하지 못해 계약금 등 목돈을 잃고 내 집 마련 자체를 포기하는 무주택자까지 발생했다. 돈도 없으면서 주제를 모르고 집을 사려고 했던 '선의의 선량한 시민'이 순식간에 그들이 부동산 정책의 적으로 삼은 투기세력으로 규정됐다. 부랴부랴 7·10 후속대책, 8·4 공급대책 등 땜질식 처방을 내놓으며 들끓는 민심을 수습하려 했으나, 이미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프레임이 깨졌고, 탄탄했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정책의 적이 돼 버린 국민들의 원성은 여전하다.
본질적 오류, 부동산을 정치화했다
프레임은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다. '수구 꼴통' 아니면 '종북 좌빨'이다.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이유가 없다. '우리'가 아닌 이상 모두 '적'으로 구분하면 된다. 때문에 프레임은 특정 정치세력이 반대 정치세력을 원색적으로 공격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하는 데에 유용하게 쓰인다. 영호남 지역 갈등, 진보와 보수, 남녀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 등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되면서 친미, 친중, 반일 등과 같은 프레임도 자주 목격된다. 당면 현안과 과제에 따라 개인과 집단의 견해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인데 미국을 옹호하면 '양키', 중국을 응원하면 '조선족', 일본과의 우호를 주장하면 '친일파' 등으로 프레임을 씌워 서로 몰아붙인다. 프레임의 부작용이다. 결국 모든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정책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는 동시에 자신들이 원하는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프레임을 사용했다. 분명 있는 것 같은데 실체는 잡히지 않는 투기세력을 가상의 적으로 삼았고, 정부여당이 발표한 부동산 정책에 반발하거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자들을 모조리 적폐라고 규정했다. 정책이란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 사회가 합리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칙과 규율을 뜻하는데, 여기에 비합리적인 프레임을 뒤집어씌웠다. 부동산의 정치화,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가진 본질적 오류다.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여당은 실수요자 보호라는 원칙을 앞세워 부동산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보다 높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진짜 이유가 무엇인진 알 수 없다) 투기세력이라는 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막상 부동산 시장에서 실수요자와 투기꾼을 가리기란 쉽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승 욕망이 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그 상승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각인된 실정이다.
과거에는 실수요자였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투기적 수요자가 될 수 있다. 웃돈 500만 원, 1000만 원을 벌 수 있다며 옆에서 누가 부추기면 거기에 현혹돼 주택을 구매하거나 갭투자에 나서는 가정주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논리라면 이 가정주부는 투기세력이고 적폐이며, 부동산 정책의 주적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입을 빌리면 천박한 사람이다. 과연 이 사람을 천박한 투기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오히려 선의의 선량한 시민이라고 볼 여지도 상당해 보이지 않은가. 가늠하기 참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프레임을 활용해 이 같은 선의의 선량한 시민을 부동산 정책의 적으로 삼았고, 이들을 모두 묶어 투기세력이라는 일종의 가상의 적으로 규정, 집값 상승의 주범이자 적폐라며 모든 정책을 여기에 집중했다. 결과는 집값 폭등,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등이다. 반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프레임이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듯, 정치화된 부동산 정책은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정부여당은 부동산 감독원이라는 초유의 조직 구성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프레임 강화에 나서는 눈치다.
진짜 부동산 정책의 적(敵)은 누구인가. 투기세력인가, 선량한 시민인가, 아니면 프레임을 짠 위정자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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