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한국당 위기, ‘소장파’ 소멸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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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한국당 위기, ‘소장파’ 소멸의 나비효과?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7.12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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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원희룡 각각 경기도·제주도로…총선 통해 ‘개혁 세력’ 보강 못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남원정’을 대체할 만한 소장파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자유한국당 위기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사오늘 김유종
‘남원정’을 대체할 만한 소장파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자유한국당 위기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사오늘 김유종

2000년 1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참모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 총재에게 ‘젊은 피’ 수혈을 건의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영입한 데 대한 ‘맞불’이었죠. 이러자 이 총재는 남경필 의원에게 젊은 의원들의 모임을 만들 것을 제안했고, 남 의원은 원희룡 의원과 정병국 의원을 끌어들여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를 조직합니다. 한나라당 ‘소장파(少壯派)’의 탄생이었습니다.

이른바 ‘남·원·정’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는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해나갔습니다. 오세훈·김부겸·김영춘·김성식·심재철·황영철·조해진 등 전·현직 의원들이 대거 가담했고, 불어난 몸집만큼 목소리도 커졌죠. 이들은 당 총재 1인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집단 지도 체제인 최고위원회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으며,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면서 세대교체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래연대는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2004년 공식 해체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새정치수요모임(17대)’, ‘민본21(18대)’, ‘아침소리(19대)’ 등으로 소장파의 명맥이 유지됐습니다. 이들은 ‘천막당사’나 ‘이상득 불출마 요구’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당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새누리당에서는 소장파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경필·원희룡이 각각 경기도지사와 제주도지사로 차출되면서 남·원·정 트리오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경기도·제주도로 떠난 후 새누리당에서는 공천권을 사이에 둔 볼썽사나운 계파 다툼이 벌어졌지만, 지도부를 향한 ‘따끔한’ 충고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남·원·정이 없더라도, 총선을 통해 ‘개혁 세력’이 보강됐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겁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을 펼치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들을 뽑는 데 혈안이 돼있었습니다.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당선 후에도 공천권자의 뜻에 충실히 따른다는 뜻이겠죠. ‘지도부에 대한 견제 세력’과는 거리가 있는 개념입니다.

‘자기 사람’을 심는 데 집중한 지도부와, 그런 지도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사라진 당내 분위기는 새누리당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국민들은 친박(親朴)당을 향해 줄달음치는 새누리당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봤고, 총선을 통해 심판했습니다. 그리고 총선 패배의 나비효과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는 아직까지도 자유한국당을 괴롭히고 있죠.

요즘 한국당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지도부를 향해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토로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원·정 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나 ‘지도부에 맞서면 다음 공천은 없다’는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남·원·정이라는 소장파가 정치 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개혁 공천’을 통해 개혁 세력을 대거 등용한 덕분이었죠. 당내 분위기가 소장파의 주장을 받아줄 수 있을 정도로 열려 있었던 겁니다.

반면 제20대 총선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개혁 세력을 쳐내고 ‘충성심’ 높은 인물들로 자리를 채운 한국당은 ‘비주류’가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견(異見)을 내놓을 수 없는 닫힌 환경에서 견제 세력이 나올 리 없고, 견제 세력이 나올 수 없으니 국민들의 뜻과 유리(遊離)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당 부활은 마음껏 지도부를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싶네요.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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