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경기 고양 삼송역 주상복합 사업 입주예정자들과 피데스개발·현대건설 간 갈등이 종결됐습니다. 지하철 3호선 삼송역 인근에 위치한 주상복합 A단지 입주예정자협의회는 지난 4월부터 사기분양·부실시공을 주장하며 시행사 피데스개발, 시공사 현대건설에 대대적인 하자보수를 요구해왔는데요. 입주를 불과 수일 앞둔 지난 24일 양측은 극적인 합의를 이룬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초 삼송역 주상복합 부실시공 논란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였습니다. 입주예정자들은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 등에 민원을 제기하고,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고, 이에 피데스개발·현대건설은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등을 거론하며 입주예정자들에게 법적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그러자 입주예정자협의회 측은 시행사와 시공사가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법적 책임을 운운하며 협박·공갈하고 있다며 맞서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번 사안은 국토교통부의 입주자 사전방문제 의무화 방침 발표 시기와 맞물리면서 사회적 이슈로 다뤄지기도 했는데요. 큰 마찰 없이 종결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단순 부실시공 문제가 아니라 분양 당시 견본주택(모델하우스)에 대한 신의성실의 원칙 문제로 인해 불거진 갈등인 만큼, 건설업계에 경종을 울리고 나아가 제도 개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A단지 입주예정자협의회가 피데스개발·현대건설에 지적했던 사항은 △옥상 상층부 부실 마감 △상층부 빛 공해 침해 △단지 외벽 도색 미흡 △야외 테라스 정원 조경 부실 △복도 조명 문제·타일 저급 자재 사용 △일부 동 1층 로비 천장 누수 △사전협의 없이 단지 내 상가 입주 △각 세대 내 천장 누수·도배 등이었는데요. 이중 이번 논란의 핵심은 옥상 상층부, 복도 등이 분양 당시 제시됐던 조건과 다르게 시공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는 피데스개발과 현대건설이 A단지를 공급하면서 제시했던 투시도, 가운데는 A단지 모델하우스에 전시됐던 단지 모형입니다. 유리 시공으로 예쁘게 마감된 옥상 상층부 구조물이 눈에 띄는데요. 하지만 막상 준공된 건물 꼭대기(아래 사진)에는 콘크리트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파트 외관 하나만으로 집값이 하늘과 땅 차이인 요즘 부동산 시장에서는 참 민감한 대목이지요.
입주예정자들은 사전동의나 적법한 설계변경 절차를 밟지 않고 모델하우스 마감과 확연하게 다른 실물 주택을 지었다고 항의하며 재시공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피데스개발·현대건설 측은 재시공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안면인식 출입통제시스템 설치 등 다른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협상 과정에서 피데스개발 측이 A단지 입주예정자협의회에 보낸 합의안이나 회신문에는 옥상 상층부 문제에 대한 내용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A단지 상층부는 모델하우스와 상이한 시공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요. 이상한 외관 조명으로 인해 건물 꼭대기 부근에 있는 세대들이 인공조명에 따른 공해 피해를 겪을 가능성이 제기된 겁니다. 위 사진을 살펴보면 상층부에 달린 조명이 꼭대기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쪽을 향해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입주민들이 필연적으로 빛공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으로 보입니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옥상 상층부네요.
또한 입주예정자들은 세대 복도도 분양 당시 모델하우스에서 받았던 카탈로그 '현대가 짓는 탁월한 주거공간-현대 힐스테이트' 내용과 다르게 시공됐다고 주장했는데요. 바닥 대리석, 벽면 타일 등에 카탈로그와 다른 자재가 쓰였고 복도가 낮고 좁은 데다, 조명이 어두워 주부와 자녀들이 무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대해 피데스개발·현대건설 측은 최근 입주가 진행 중인 힐스테이트 아파트 등과 동일한 마감 기준을 적용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모델하우스, 홍보 카탈로그 등은 일종의 분양계약입니다. 주택법과 판례(2005다5812 등)에서는 모델하우스, 분양광고 등을 통한 아파트의 외형·재질 등 사항에 대한 설명은 다른 사정이 없는 한 분양계약의 내용이 된다고 규정합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모델하우스나 홍보물과 다르게 시공할 경우 분양계약 취소, 계약 해제·원상회복, 채무불이행책임, 손해배상 청구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법과 크게 다릅니다. 수요자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델하우스, 분양광고 등이 분양계약의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설계도면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설계도면과 다르게 실제 주택을 시공했다면 문제가 되지만, 설계도면에 없는 사항을 모델하우스에만 적용한 것이라면 시행사나 시공사에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설계도면을 신경 쓰지 않는 수요자들, 특히 설계도면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든 사회적 약자들 입장에서는 대기업인 시행사, 시공사와 맞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국토부 산하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가 있지만 건설사가 하자보수 판정에 불응하면 그만입니다. 아무 효력도 없습니다.
시행사와 시공사의 장난질도 심각합니다. 모델하우스 귀퉁이에 '실제 시공 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안내문을 걸거나, 홍보 카탈로그 구석에 '개략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홍보물로 실제 시공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문구를 조그맣게 적어놓습니다. 심지어 모델하우스 오픈 초기에는 고급 자재를 사용한다고 홍보하다가, 중간에 저급 자재로 변경한다고 말을 바꿔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울러, 분양계약서에는 '모델하우스 자재나 견본은 분양계약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보통 삽입돼 있습니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빠져나갈 구멍이 수두룩한 것이지요.
더욱이 입주민 입장에서는 공개적으로 법적 분쟁에 돌입하기 어려운 실정이기도 합니다. 내 집이 재산의 전부인 입주민들이 많으니까요. 자칫 집값 하락으로 경제적 피해만 볼 공산이 크고, 집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계약을 취소할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급자가 수요자에 비해 한참 우위에 있는, 참으로 불안정한, 비합리적인 시스템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시장 구조는 보기 드뭅니다.
이런 가운데 국토부는 아파트 입주자 사전 하자점검을 내년 상반기부터 법제화하고, 전문가로 구성된 품질점검단을 도입해 입주자 권리 구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지난 20일 밝혔는데요. 사전점검 과정에서 보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건설사는 입주 전까지 이를 고쳐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하며, 품질점검단은 이를 객관적으로 점검합니다. 제대로 하자보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건설사에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유명무실했던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는 재정제도를 도입, 어느 쪽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건설사의 판정 불응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기대됩니다.
그러나 본질적 제도 개선은 아직 요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거론한 A단지의 사례처럼 모델하우스, 홍보 카탈로그와 다르게 시공하거나 허위·과장광고, 설계도면 등으로 장난질을 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 입주민들이 굳이 민사소송을 거치지 않더라도 손해배상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형 로펌을 낀 시행사, 건설사들을 소송에서 이기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사업승인도면이나 착공도면과 달리 시공됐더라도 준공도면에 따라 시공됐다면 하자로 볼 수 없다'는 식의 엉터리 판례가 통용되고 있을 정도니까요.
나아가 선(先)시공 후(後)분양 방식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후분양제를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에까지 전면 도입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구매하기 전에는 물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난 뒤 돈을 지불하는 게 상식적입니다. 시장에서 과일을 살 때도, 백화점에서 옷을 고를 때도, 고가의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물을 확인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비상식적인 구조를 깨지 않는 이상 사기분양·부실시공 논란은 계속될 겁니다.
이번 사안은 비록 아쉽게 종결됐지만 이런 작은 사례들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조금씩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봅니다. 작은 공이 달나라에 안착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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