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외교격랑 고난도 환경
미·중 패권 전쟁, 비핵화 협상에 난기류
중국-러시아 北 편들기…G20 연쇄 정상회담 주목
핵문제 새 비전 창출로 돌파구 열어야
김정은 친서와 문 대통령 ‘오슬로 선언’ 신호
對北 본격 지원, 톱다운 회담 재개 관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냉전 구조 해체 의미를 가졌던,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1주년을 맞았다. 당시 북한과 미국 정상의 6·12 공동성명은 국제사회와 한반도 평화를 향한 새 여정의 출발이었다.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도 놀라웠지만 70년 적대관계에 마침표를 찍을 청신호를 문서로 밝혔다는 점에서 세계는 주목했다. 무엇보다 북미 대화는 그 지향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냉전 무장 대립구조의 완전한 해결 가능성을 불러왔고, 톱다운 회담과 한국 정부의 중재·촉진 역할을 품었다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북한 비핵화에 가시적 진전이 없는 불안정성이 계속되고 있지만, 큰 흐름상 싱가포르 회담 이전보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의 진전이 이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미국도 북한도 모두 세기적인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 회담 후에는 합의 실천을 위한 후속 조치들이 이어졌다.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중지되고, 7월 말 북한의 미군 유해 55구 송환 등도 이뤄졌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 회담 이후 1년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가진 첫 만남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 한반도 비핵화, 유해 발굴 등 네 가지를 합의했다.
그렇지만, 비핵화 방안에 있어서는 진전이 더뎠다. 비핵화 해법과 평화체제 구축 방안에 대한 이견으로 고위급회담 무산이 반복됐고, 사이사이 비핵화 방안과 대북 제재 해제 여부를 두고 한반도 주변국 간 대립과 갈등이 재연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노딜’로 끝나버렸고, 이후 비핵화 협상은 지금껏 교착 상태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북미 대화의 열기도 급랭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은 역시나 큰 산 한 두 개가 아니라 거대한 산맥을 넘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하노이 노딜’ 이후 수개월간 답보 상태인 북한 비핵화 협상은 이달에 다시 중대 고비를 맞는다. 28일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전후로 정상 외교가 이어진다.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그에 맞춰 남북 정상회담도 기대할 만하다.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이 시기 가장 요구되는 과제는 비핵화가 북미만의 이슈가 아니라 민족 생존이 걸린 국제 의제라는 인식 아래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일이다. 교착이 길어져 비핵화 협상 엔진이 꺼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대화의 실마리를 찾을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북·미 정상회담 1주년에 즈음해 의미 있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을 위한 평화’를 핵심으로 하는 오슬로 구상을 발표한 게 그것이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북핵 解法 '진실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지난 1년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
주변 정세 요동
북미 비핵화 협상은 최근 갈수록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보이는 미·중 무역 전쟁과도 연결된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 미중관계가 나쁠 때는 북핵 협상도 진통을 겪었다. 우리가 중재할 수 있는 공간도 별로 없다.
한국은 경제적 이익과 한미동맹 사이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서기 어려운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화웨이를 둘러싼 갈등이 부각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동력을 찾아야 하는 고난도 외교방정식을 풀어야 할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중·러, 미·일의 밀월 관계가 강화되고 미국 국방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며 대만을 '국가'로 언급하는 등 한반도 주변 정세가 더욱 요동치는 모습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하노이 결렬 이후 북-미가 대립하는 대북제재 문제에서 북한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5일 나온 중-러 공동성명은 ‘균형적 해결’을 내세웠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를 위한 안보리 차원의 공동 대응을 예고했다.
무역·안보 문제로 미국과 대립하는 중-러로선 일단 북한을 자기네 편으로 관리하겠다는 계산이겠지만, 이런 일방적 편들기로는 비핵화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 및 러시아를 상대로 대화 국면 조성을 위한 협조를 적극적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
비핵화는 북한이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아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가져오는 경로와 같다.
앞날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이달 말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다시 속도를 낼 기회를 맞았다. 한미 정상이 두 달여 만에 다시 만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도 점쳐지고 있다.
모처럼의 기회를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 가기 위해서는 징검다리 격인 남북 정상회담이 필수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에 이어 식량 지원 검토와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역 대책 등 우리의 대북 협력 제안은 이를 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메시지다.
대북 인도 지원을 마중물 삼아 하노이 회담 이후 단절 상태나 마찬가지인 북한과의 대화 기회를 열어젖히고 북미 회담 분위기를 다시 조성해야 한다.
외교기본 성찰 필요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 핵 폐기는 ‘장기 미제(未濟) 사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기준’을 맞추다보니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으로서의 한국을 의심케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기지의 한국 내 배치에 반발하며 온갖 보복을 가해 온 중국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에 실패해 화근을 키우고 있다.
미국과 중국 어느 쪽으로부터도 확실한 신뢰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 편에 설 건지 분명히 하라”는 거센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의 외교 기본이 무엇이었고,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커졌다.
또한,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상황 진전의 계기가 좀처럼 마련되지 못하는 가운데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미국은 대북 제재 유지·강화로 협상력 극대화를 위한 기 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신뢰를 나타내며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타진하고 있어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시간은 북한 편도, 미국 편도 아니다. 경제 파탄과 식량난은 갈수록 김정은 정권을 옥죄고 있다. 미국을 향해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며 조바심까지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내년 11월 대선까지 북핵 불확실성을 안고 가기엔 부담이 큰 만큼 마냥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우리 정부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 대안을 들고 북-미 양쪽을 견인하느냐에 비핵화 협상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이달 말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을 비핵화 협상 교착의 돌파구를 찾는 장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에 4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북한의 실질적 태도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차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의중이 확인되면,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트는 중대한 진전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이 북유럽 순방 중에 문 대통령이 내놓을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뒤로 밀리는 분위기…가능성은 상존
1년전 싱가포르 회담은 '세기의 만남'으로 불리며 당장이라도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낼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도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 방안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북·미 대화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이견 탓이다. 미국은 ‘빅딜’식 일괄타결을 주장하지만 북한은 ‘단계적 해법’으로 맞서고 있다. 핵심 의제였던 북한 비핵화에 대해 구체적인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함에 따라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되는 단초가 됐다.
미국은 아직도 북이 하노이에서 제시했던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외에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북은 하노이 제안과 대북 제재 해제의 맞교환 카드가 마지노선이라며 맞서고 있다. 북은 지난 4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이 ‘선(先)비핵화, 후(後)제재 해제’란 셈법을 바꿔야 한다는 이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사이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심화되고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도 확대 일로여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점점 더 뒤로 밀리는 분위기다. 하노이 미·북회담 결렬 이후에는 미·북대화뿐 아니라 남북대화마저도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과 북한 양측이 협상 기회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북한이 협상 시한을 연말로 제시해 놓고 미국 측의 양보를 요구하는 가운데 미국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사태에 수위 조절로 대응하면서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해 개인적인 신뢰감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협상을 통한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다. 앞으로 실무협상 과정에서 얼마든지 비핵화 로드맵과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등의 주고받기 가능성은 열려 있다.
중-러 일방적 지원과 예고된 '참사'
사실,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의 ‘노딜’은 북미뿐 아니라 여러 북핵 문제 이해 당사국에 어려움을 안겼다. 하노이 ‘노딜’이후 북미·남북관계가 계속 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면 모처럼 조성된 비핵화 협상 분위기도 자칫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여기에다 중국과 러시아의 자세도 문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5일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은 비핵화와 안전보장·경제발전을 교환하는 목표를 견지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긍정적 역할을 발휘하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비핵화 없이 제재 완화는 있을 수 없다는 미국에 맞서 안보리에서 제재를 완화 또는 해제함으로써 일방적으로 북한의 숨통을 틔워 주겠다는 움직임이다.
중-러는 이미 북한에 식량과 정제유를 공급하며 김정은 정권의 연명을 돕고 있다. 이러다간 동북아를 파국으로 이끌 김정은의 위태로운 도발을 방조하는 꼴이 될 수 있음을 중-러는 알아야 한다.
이같은 국제 외교의 흐름속에 북한이 내년 미 대선을 겨냥해 연말로 시한을 정하고 미국의 태도 변화를 거듭 요구하는 것은 실로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내기가 쉽지 않다. 북한은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미국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완전한 비핵화’만을 되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담긴 합의 중 실제로 진전된 것은 미군 유해송환뿐이었다. 불신은 미국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합의는 제쳐 둔 채 비핵화에만 집착했고, 금방 이뤄질 것 같던 종전선언도 무산시켰다.
북한도 비핵화의 정의와 전체 그림을 만들지 않는 등 온당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노딜’은 예고된 참사였던 셈이다.
뿌리깊은 적대감 일단 해소
그러나, 현 상황을 싱가포르 합의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는 없다. 두 정상은 아직도 서로 신뢰하고 있고, 공히 정세관리에 노력하려는 모습이다.
그것은 지난 회담의 성패를 떠나 미국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두 차례나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눴다는 자체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나름대로 비핵화 방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관계개선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제2차 회담이 결렬됐을망정 이러한 의사 표명만으로도 과거 70년 동안 지속돼온 양국간 뿌리깊은 적대감은 상당히 해소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화 개시 전처럼 서로를 헐뜯지 않고 신뢰를 표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렇다. 톱다운 회담이 이끈 대화라는 걸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서로 정세 악화를 막으려 상황을 관리하는 모습이 두드러진 것도 희망을 갖게 하는 포인트로 평가된다.
관건은 역시 북한의 태도다. 최근까지 북한은 우리 정부의 지원 제안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비난에만 열을 올렸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없는 건 아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도발을 감행한 김 위원장이 거의 한 달 만에 행보를 공개하기 시작했고, 문책·근신설이 돌았던 하노이 회담 관련자들의 행적도 일부 건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이 셈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하고 있지만, 이것은 과거 협상 주역들로 대화를 이어 갈 가능성을 시사한다.
협상 모멘텀 살려내야
이미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는 서로 속내를 파악했을 것이고, 과거로의 회귀는 안된다는 점도 공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 시일 내에 다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6월 중 남북 정상이 만나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놓을 필요가 있다. 6월 하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4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협상 모멘텀을 살려낼 수 있다.
정부는 이럴 때일수록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핵의 완전한 폐기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북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완전한 비핵화이며 북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를 보여주지 않으면 핵심 제재 해제는 불가능하고, 우리 정부도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미국과도 일부 제제 완화를 통해 북의 의미있는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고 이런 단계적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하는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미 간 불신이 걸림돌이라면 합의 위반 시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 조항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최종 종착점은 북한의 비핵화에 있다. 그것도 국제사회가 요구하듯이 ‘완전 비핵화’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고립화의 길을 자초하게 되는 셈이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 의지를 강조하고 있으나 피폐해진 북한의 경제 사정으로는 금방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인민들에게 헐벗고 굶주리는 고통을 안겨주게 될 뿐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6월이 지난 뒤에도 기회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미국 대선 일정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하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지금이 비핵화 협상을 추동할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북한은 명심하기 바란다.
외교안보 정책기조 근본적 성찰을
그런 점에서 향후 외교 정세는 주목된다. 이달 하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각각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2대 빅 이벤트’가 예고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訪韓)은 양국 정부의 공식 발표로 확정됐고, 중국 측도 시 주석의 한국 방문 방침을 굳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당초 방한을 검토했다가 북한과의 관계를 감안해 접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랬던 중국이 갑자기 시 주석 방한을 결정했다면 그 배경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짚어보는 게 중요하다. 중국 정부는 이와 관련해 “전통적인 이웃 국가로 중국의 주변국 외교에서 핵심 역할을 차지하는 한국 방문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말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말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우군(友軍) 확보’ 작업일 것이다. 미국과 무역·통상·기술 분쟁을 넘어 경제 전반, 나아가 남중국해를 둘러싼 군사 분야로까지 갈등과 대립이 확대되는 와중에 시 주석이 돌연 한국 방문을 결정한 이유가 달리 있을 리 없다.
미국은 더욱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동맹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라”며 압박 수위를 높여오고 있다. 바로 엊그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5세대 네트워크상 사이버 보안은 동맹국 통신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며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 ‘반(反)화웨이 전선’ 동참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런 민감한 이슈를 주한 미국대사가 공개석상에서 꺼내든 것은 한국 정부에 미·중 분쟁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라는 공식 메시지로 읽힌다.
양국 정상이 한국을 방문해 꺼내놓을 요구 리스트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더 노골적으로 ‘양단간의 선택’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실이 이렇기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기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재검토가 시급해졌다.
'자유시장경제 가치 동맹' 재선언 중요
우리나라가 70년도 채 안 돼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일어서는 ‘기적’을 일으킨 것은 미국 일본 등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며 무역과 투자를 늘려온 덕분임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서해를 마주보고 있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교역 및 투자 비중이 덩달아 커졌고, 이로 인해 경제에 관한 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를 맺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역대 정부는 남중국해 분쟁 등 미국과 중국이 부딪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미봉해왔다.
이런 미봉책이 더 이상 통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내려야 할 선택은, 따지고 보면 어려울 게 없다. 기업들의 경영학적 고전 전략인 ‘기본으로의 귀환(back to the basic)’을 참고할 만하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해준 ‘자유시장경제 가치 동맹’의 일원임을 당당하고 분명하게 선언할 때 전통 우방의 신뢰는 물론, 중국으로부터도 ‘진중한 나라’로 존중받는 길이 열릴 것이다.
G20 계기 최대 공통분모 타협 견인해야
그런 점에서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결과는 주목된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은 정상회담 개최를 확정했거나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연쇄 정상회담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에 예정된 방한 회담은 G20 정상회의 직후에 열릴 것으로 보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은 오사카에서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시진핑 주석이 전격적으로 우리나라로 건너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과거사 문제 갈등으로 성사가 어렵다는 예상과 일본이 손님을 초대한 입장이기에 성사된다는 전망이 엇갈린다. 이번 초대형 외교 이벤트는 한반도 비핵화, 미·중 무역갈등 등 대형 현안으로 인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 수 밖에 없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난제들이고 서로 얽혀 있어 우리 외교역량의 극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 대통령이 이 자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협상 재개의 분수령으로 삼을 수 있다. 지난해 4월과 5월의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미·북회담 디딤돌이 됐던 것처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4차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한번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 타진 바람직
그 점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검토하고 대북 접촉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회담전에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놓는다면 비핵화 행로에 다시 탄력을 붙이는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최근 수면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7일 남북 정상회담 추진 여부와 관련해 “북한과의 접촉은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필요에 따라서 충분히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경험이 있고, 현재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여러 환경이 존재한다”고 말해 기대감을 높힌 바 있다.
지금 한국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다. 북핵은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미·중 모두에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도 비핵화와 교역 전선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챙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비핵화를 약속하고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김 위원장과, 재선을 위한 국정 성과로 비핵화를 활용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최대 공통분모를 찾아내 북미 타협을 견인하길 바란다.
오슬로 선언과 대북 지원 활용을
마침 싱가포르 회담 1주년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이 ‘오슬로 선언’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슬로포럼 기조연설에서 남북 접경지대 문제 해결을 위한 ‘접경위원회’ 설치를 사실상 북한 측에 제안하며 ‘일상을 바꾸는 적극적 평화’를 새로운 평화정책의 화두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달 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및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 중국·일본 등 주요국 정상과의 연쇄 회동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시기상으로도 문 대통령이 내놓는 메시지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2017년 ‘베를린 선언’으로 북미 대화 물꼬를 텄듯이 창의적인 한반도 평화 구상으로 비핵화 협상을 다시 본궤도에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2년 전 북-미 대결이 격화하던 중에 나온 ‘베를린 선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언제 어디서든 만나자는 제안을 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를 끌어냈었다.
이와관련, 정부는 지난 5일 남북협력기금의 쓰임새를 정하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어 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아동기금(UNICEF)의 북한 지원 사업에 800만 달러를 무상 지원하기로 의결했다.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달러 인도적 대북 지원은 2017년 9월에 이미 결정해 놓고도 대북 압박 기조를 늦추지 않으려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사안이다.
이번 지원은 아무리 대북 제재를 옥죄더라도 보건 등 민간 구호 사업은 별개라는 인도적 원칙을 행동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 부족 상태가 심각하다는 경고가 나온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님을 감안하면 비록 뒤늦긴 했지만 다행이다.
이런 원칙의 연장선상에서 정부가 본격 검토 중인 대북 쌀 지원이나 최근 북한에서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대책도 북한과 적극 협의할 필요가 있다. 쌀 지원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지원 시기를 조정할 필요성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추가 도발을 자제하는데다 한미 정부 모두 이를 심각한 위협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데 의견이 일치하는 마당이므로 망설일 이유가 없다.
한반도 새 비핵화 비전 제시해야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한 접촉과 설득을 우리 정부는 계속해야 할 것이고, 북한도 경제제재 해제를 원한다면 이런 대화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핵 해결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때다.
무엇보다 비핵화 협상을 재가동하려면 정부가 새로운 비핵화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북핵 문제보다 남북관계를 앞세우거나 북한 위협을 외면하면서 미국과의 공조를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새 비핵화 비전은 한반도 정세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 주요 현안이 중첩되는 상황에서도 전략적 유연성을 토대로 다양한 변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최선의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