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장자연 사건’의 진실, 무엇이 잘못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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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장자연 사건’의 진실, 무엇이 잘못됐나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5.25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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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현실벽 막혀 미궁으로
경종 울렸던 '장자연 리스트' 규명 실패
초기 부실수사, 검경 책임져야
확인 처벌 불가에 탄식하는 여론
사회 권력형 성범죄 근복 대책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2009년 사회 유력인사들에 대한 성접대 강요 사실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장자연씨 사건이 결국 미궁에 빠졌다. 

장자연 사건 의혹을 조사해온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 등 핵심 의혹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지 못해 수사권고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놨다. 지난 10년간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 이번에도 공소시효와 증거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막혔다. 이 사건이 과거사위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지 13개월 만이다.

‘수사 미진’ ‘조선일보 외압 의혹’ 등은 사실로 인정했다. 고인 친필로 자신의 피해 사례를 언급한 문건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다면서도 가해 남성들의 이름을 목록화했다는 ‘장자연 리스트’ 존재 여부는 초기 수사 부실로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사건은 당시 신인 여배우가 계약 조건에 묶여 억지로 술 접대 자리에 나갔다는 것부터 사회의 힘 있는 이들에 대한 성 접대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는 충격적인 내용까지 연일 언론을 타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수사에서 장씨가 지목한 이들 모두 무혐의로 결론이 나면서 파문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고,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모양새가 돼 특권층 봐주기 의혹이 퍼진 바 있다.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이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이 사건을 새로 조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사건은 처음 우울증에 따른 자살로 처리됐지만,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문건이 공개되자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분노의 목소리가 세상을 흔들었다. 이에 경찰은 재수사에 착수했었다. 그러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문건에 적힌 사람들이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던 것이다.

이에따라 지난해 3월 장씨 사망사건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참여자가 20만 명이 넘으면서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이에 청와대는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했으며, 이번에 검찰 과거사위가 다시 조사를 벌이게 됐다. 

사진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김학의, 고 장자연씨 사건 등 권력층 범죄 은폐·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뉴시스
사진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김학의, 고 장자연씨 사건 등 권력층 범죄 은폐·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뉴시스

가해자 심판대 세우지 못해

과거사위는 대검찰청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13개월간의 조사 내용을 담은 ‘장자연 보고서’를 제출받아 이에 대한 검토 및 논의를 해왔고, 이번에 이 사건의 최종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장씨가 친필로 피해 사례를 언급한 문건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지만 가해 남성 이름을 목록화했다는 별도 리스트 실체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죽음으로써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장씨의 외침은 10년 후에도 응답받지 못했다. 피해자는 목숨을 잃었는데 가해자는 심판대에도 세우지 못하는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진상 규명을 촉구한 것치고는 초라한 결과다.

과거사위는 술접대와 성접대 강요는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유일하게 처벌 가능성이 남은 특수강간 등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에 즉각 착수할 정도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과거사위의 설명이다. 

논란이 됐던 ‘조선일보 방 사장’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했으며, 수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간부가 경찰청장을 찾아가 수사를 하지 말도록 압력을 행사한 사실도 확인했다. 

부실 수사에도 재수사 권고 실패

이번 대검 진상조사단 조사에서는 당초 검경 수사가 얼마나 부실투성이였는지 드러났다. 

사건 직후 경찰이 장씨의 주거지와 차량 등 압수수색에 걸린 시간은 57분에 불과했다. 다이어리와 가방은 물론 핸드백 속 명함은 뒤지지도 않았고, 장씨의 휴대폰 3대의 통화 내용과 디지털포렌식 결과도 수사기록에 첨부하지 않았다. 

장씨의 억울한 죽음의 동기를 확인할 중요 자료를 방치했으니 애초 수사 의지 자체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고도 인권 운운 하며 수사권 조정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최근 검경의 행태는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과거사위는 지난해 4월 장자연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후 관련자 80여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술접대는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으나 구체적 가해자와 범죄 일시•장소 등을 특정할 수 없어 성범죄 재수사 권고에 이르지 못했다. 

강제수사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한계에다 공소시효의 장벽까지 겹친 탓이다. 과거사위의 실무기구인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강제수사권이 없다 보니 압수수색이나 참고인 강제소환 등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10년 전 사건의 공소시효를 연장할 만한 추가적 증거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핵심쟁점 불발, 더 치밀히 준비했어야 

올해 3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을 검경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상규명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검칠 과거사위의 결론은 “수사에 즉각 착수할 정도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핵심 쟁점인 성접대 강요 및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 권고가 불발되고 만 것이다. 이에 국민들의 좌절감은 확산되고 있다.

사실관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공소시효와 증거 부족으로 본격적인 검찰 수사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혹 규명에 실패한 원인이 검경의 초기 부실 수사라는 점에서 수사기관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마저 스스로 저버린 셈이다. 검경 수사 책임자의 사과 등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조사단이 애초 강제수사 권한이 없이 시작한 데다 이미 10년이 지난 일이어서 진상규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바다. 수사를 받는 이들의 비협조와 증거인멸 등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각오하고 사건을 다시 규명하려 한 만큼, 더 치밀한 준비와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사주 관련 일부 규명 

나름대로 새롭게 밝혀진 부문은 있다. 조선일보 사주 일가에 대한 부실수사 의혹은 상당부분 규명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검경은 ‘조선일보 대표이사 아들 방모씨’가 장씨와의 술자리에 동석한 사실도 파악했으나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사위는 사건 당시 이모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경찰청장과 경기경찰청장을 찾아가 외압을 행사한 정황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측은 “단정적으로 발표한 과거사위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사건 발생 10년 뒤에 이뤄진 ‘늑장 재조사’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누가 ‘조선일보 방 사장’인지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아 진실을 확인할 기회를 놓쳤다는 과거사위의 지적은 왜곡수사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다. 검찰 조직 전체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재조사 결과를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과거사위는 문건에 등장하는 ‘조선일보 방 사장’에 대해, 장자연씨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을 그렇게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가 술자리 등에서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불리고, 지인들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잠자리 요구 등은 애초의 부실수사 등으로 인해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방 사장 아들’은 2008년 10월 장씨한테서 룸살롱 접대를 받은 방정오 전 <티브이조선> 대표로 판단했다. 방 전 대표와 장씨가 소속됐던 기획사 대표 사이의 통화 내역은 발견했으나, 접대강요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총체적 부실수사 확인

과거사위는 사주 일가 수사를 막기 위해 당시 조선일보사가 대책반을 꾸려 전사적으로 움직인 정황을 공개했다. 

사회부장이 수사책임자를 찾아가 ‘조선일보사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퇴출시킬 수도 있다’며 협박한 것도 사실로 인정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사주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인물을 문건 속 ‘방 사장’인 것처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본 대목이다. 장씨 기획사 대표 등의 진술은 문건 속 ‘방 사장’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과거사위는 의심했다. 나아가 검찰마저 불기소 결정문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기재했다. 사실상의 사건 조작 시도로 볼 만하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최근 법정에서 “수사기밀의 상당히 깊은 이야기까지 조선일보 부국장에게 알려줬다”는 증언도 했다. 결국 사주 일가에 대한 출장 조사 등 과도한 배려와 겉핥기 조사, 통신기록 실종 등 총체적 부실수사로 이어졌다. 언론권력 앞에 무릎 꿇는 검찰과 경찰을 누가 신뢰하겠는지, 비판치 않을 수 없다.

수사부진 확인과 제도보완 권고는 성과 

과거사위의 이번 조사는 장 씨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의 위증 혐의에 대해서만 수사 개시를 권고하는 등 핵심 의혹을 규명하지 못하고 마무리됐지만, 이 조사를 '시간낭비'나 '헛발질'로 평가할 수는 없다.

사건 당시 검경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그래도 성과다. 재수사까지는 못가더라도 관계자에 대한 추가조치가 필요한 대목이다.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 만한 진술 등 새로운 증거를 확보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공소시효 완성일인 2024년 6월 29일까지 이 사건의 기록과 조사단의 기록을 보존하라고 권고했다. 

또 수사 과정에 확인된 휴대폰 통화 내역, 디지털포렌식 자료, 수첩, 복사본 등 수사 자료 누락에 대해서는 의도적 증거 은폐 가능성을 지적하며 이 같은 법 왜곡 행위를 처벌할 제도 보완도 법무부에 권고했다.

사회 도덕성 회복 메시지 

비록 실체확인은 못 했지만 조사단이 "장자연 문건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 것은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장자연 리스트는 실체 확인 여부를 떠나 당시 연예기획사들의 접대 관행이나 사업행태를 폭로한 사건이다. 특권층의 갑질이나 범죄에 대한 준열한 심판 역할도 일부 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터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억울하고 불행한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장씨 사건은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을 도구로 활용하면서 일어난 사회적 타살 사건이라는 게 일반 국민의 인식이다. 한창 나이의 배우가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냈어야 했다. 장씨의 리스트는 우리 사회 부도덕한 권력에 대한 고발이었다.

재발방지 별도 대책 강구를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의 진상규명은 한국 사회의 윤리적 새 출발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검경은 이번 과거사위 조사에서 드러난 장씨 사건 부실ㆍ은폐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를 국민에게 밝히기 바란다. 초기 부실수사에 대해선 과거사위 발표와 별개로 검경 스스로 자체 조사를 통해서라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제2의 장자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권력형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검토와 성범죄 수사시 외압 방지책 등에도 별도의 노력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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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규명 2019-05-27 00:18:45
아니땐 굴뚝에 연기 날까? 진실을 밝혀야합니다. 권력가와 재벌가의 부정과 비리들은 여지껏 덮어져왔다. 그래서 많은 서민들이 희생되었다. 독재시대도 아니고 군주시대도 아니다. 진실을 밝히고 더이상 무고한 피해자도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