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부文化①> 정치인 기부, 왜 박수 받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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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부文化①> 정치인 기부, 왜 박수 받지 못하는가?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04.29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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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정치인 기부문화…MB YS 재산헌납까지 의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사회에 수십억 원을 기부하고 막상 자신은 전세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던 기부천사가 있다. 풀무원의 창업주인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부천시의 30평대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아파트 입주 초기 이 집의 전세금은 1억 4000만 원이었다. 그러나 2009년 집 주인이 보증금을 4000만 원을 올려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4000만 원을 구하러 동분서주 한 끝에 다행이 은행 대출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원 의원이 전세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기부병’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명 식품회사 풀무원을 세웠던 원 의원은 정치로 발을 돌린 뒤 1996년 풀무원의 지분을 모두 처분, 21억 원을 자신이 설립한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이밖에 모친상으로 들어온 부조금 1억여 원을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부천 희망재단의 기부운동에 참여하는 등 나눔의 손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 이야기 나누는 안상수 대표와 김영삼 전 대통령 ⓒ뉴시스

정치계 열악한 기부문화

그러나 우리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러한 기부 모범을 보이고 있을까. 개인 기부자의 대부분이 일반 서민이고 국회의원 등 정치인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46여명 중 정치인은 한 명도 속하지 않았다.(2011년 4월 현재) 또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코리아도 고액 후원자의 90% 이상을 일반인으로 본다.

정치인이 그나마 ‘기부’라는 이름으로 재산을 내놓을 때도 부패사례가 상당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3년 세운 일해재단이 대표적 사례다.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의 희생자 유족 지원과 장학사업 지원을 목표로 했지만 실체는 불법 강제모금을 통한 전 씨 퇴임 후 권력 행사의 도구였다.

이밖에 육영재단의 재산권 싸움도 논란이 됐고 현직 국회의원들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는 기부는 ‘국회의원 후원회 후원금’으로 친분이 있는 인사끼리 후원금을 주거니 받거니 하거나 심지어는 본인에게 후원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정계의 기부문화 형편이 이렇다보니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신뢰가 떨어지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기부행위에 대해서도 지레 의심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부다. 

MB·YS 기부의 본질, '왜곡하지 말 것'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7월 약 331억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키로 하고 장학 및 복지재단 ‘청계’를 설립했다. 출연된 재산의 대부분은 건물과 토지 등 부동산으로, 해당 재산의 소유권이 재단으로 이전됐다. 출연한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수익 약 11억 원(년)은  청계재단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된다.  

청계재단 설립 당시 송정호 설립추진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재산 기부는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평소 이념에 따른 것”이라며 “대통령의 선의를 존중하고 신뢰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번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재산 기부가 지닌 의미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막연한 비판을 경계했다.

▲ 이명박 대통령 ⓒ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비난은 여전히 존재했다. 재단을 통한 기부와 친인척으로 구성된 이사진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청계재단은 지난해 국가유공자 자녀, 소년소녀가장 등 중고생 451명에게 총 6억 4,000여 만 원을 장학금으로 수여하는 등 아직까지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신년을 시작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재산 환원 소식이 세간에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죽으면 끝이고 영원히 못 산다”며 “자식에게 일체 물려주는 것 없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기부의 뜻을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과 거제도 땅은 사단법인 ‘김영삼 민주센터’에, 거제도 생가는 거제시, 증조부가 세운 신명교회는 장로회교단에 전해졌다.

현재 민주센터는 기념도서관 건립을 위해 상도동에 땅을 매입하고 올 상반기 중으로 착공을 계획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청소년들이 역사적 민주화 운동 등 사회교육에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공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며 추후 청소년 수련원 등의 시설도 검토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김영삼 민주센터로의 기부가 본인의 치적을 홍보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지만 민주센터 측은 “전관예우에 의거해 대통령 기념사업이 이뤄지지만 역대 대통령 누구도 자신의 재산으로 기념사업에 투자한 사람은 없다. 기념사업에 개인재산을 투척한 자체가 공적”이라는 입장이다. 또 “좌파정권동안 왜곡된 측면을 바로 펴 보이는 것도 국민을 위한 도리”라고 설명했다.   

김정열 김영삼민주센터 사무국장은 “가족과 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2억 원 가량을 기부한 것은 개인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 힘든 결정”이라며 “나무 한 그루에도 그늘이 생기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일이 완전히 인정받을 수 없다. 외부의 비판에 개의치 않고 사업의 목적에 부합한 투명한 정책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 회장은 김 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5년 재임기간동안 외부에서 돈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전직 대통령 중 돈에 관해 가장 깨끗한 사람”이라며 “김영삼 민주주의의 핵심이 도덕성과 투명성이기 때문에 기부문화에서도 깨끗한 정치의 모범을 보일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재단통한 기부, 상속·비자금 세탁 통로 의심

▲ 이명박 대통령 재산 사회 환원 발표하는 송정호 위원장 ⓒ뉴시스
현직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통령까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랑스런 일이지만 그럼에도 국민들의 쓴 소리를 막을 수 없는 것은 그간 정계 기부인들의 부끄러운 행적으로 이들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없음이다. 

재단을 통한 기부가 지탄 받는 주된 이유는 재산 상속의 통로로 사용되거나 비자금 세탁 경로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대통령의 경우와 같이 재단의 운영진이 그들의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면 가능성은 더 커진다.

회사원 김모(30.여)씨는 재단설립과 그곳에 기부하는 행위는 증여세, 상속세 등 세금을 면제받으며 재산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재단 운영진을 친인척 등 측근으로 구성해 재단 명의로 땅 사고 차 사고, 필요한 곳에 돈을 끌어다 쓰면서 자자손손 잘먹고 잘사는거죠”라고 말했다.

또 주부 김모(34.서울 사당동)씨는 “재단 세우면 자금 세탁하기도 좋죠”라며 “진짜 기부를 하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지, 자기 홍보 하면서 치적 쌓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고 꼬집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반면 두 대통령의 기부에 대한 비판이 막연한 불신으로 인한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불우이웃이든 공공사업이든 어떤 원조대상을 선택하는지와 또 자금을 직접 전달하든 재단을 설립하든 그 후원 경로는 기부행위를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록펠러, 카네기, 빌게이츠 등이 재단을 만들고 친인척에게 운영권을 맡겼음에도 미국 사회에서 충분히 도덕성을 인정받고 있는 점을 들어 재단을 만들어 기부하는 것과 재단의 운영권을 측근이 갖는 것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재단을 만들어 기부하게 되면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사회지원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재단은 개인 소유가 될 수 없고 운영진에게 운영권만 돌아가게 되므로 그 뜻이 왜곡돼지 않는 한 문제의 요소가 없다. △세금 혜택 등은 공헌에 대한 마땅한 대가로 간주된다. 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은 “자선이라는 것이 재산의 쾌척으로만 이해되는 것은 위선적이며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정 실장은 “자비심과 마찬가지로 이기심도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자비심에 입각한 기부행위도 일정부분 동기부여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재단을 통한 재정 기반 유지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대학원생 박모(30·남)씨는 “정계의 열악한 기부문화로 진정한 기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라며 “투명한 경영과 사회 발전 기여로 재단을 통한 기부도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는 행위임을 보여줌으로써 선의를 가진 정치인들이 희생되지 않을 수 있는 실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기부를 비판하는 이들에게는 안도현 시인의 표현을 빌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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