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출발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
그러나, 이런 초고속 출세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박 전 대표는 '공주'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갖고 있다. 남 의원은 한 때 '오렌지족'이라는 비난을 받았었고 '귀공자'라는 비아냥이 그를 둘러싸기도 한다. 여기에는 2세 정치인들의 '무임승차'에 대한 반발이 녹아있다. 이런 반감은 2세 정치인들의 발목을 단단히 잡으며 정체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결과다. 죽도록 고생스런 과정을 거쳐 겨우 한자리를 얻은 정치인들 입장에서 2세 정치인들의 승승장구가 곱게 보일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수성가 정치인들은 공동전선을 만들어 2세 정치인들을 포위, 공격하게 된다.
2세 정치인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정치권에만 있는 건 아니다. 2세 정치인들은 일반 대중 정서에도 거슬린다. 대중들은 "부모 잘만나서 출세했지"라며 그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물론, 아예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남들과 출발선이 달랐던 2세 정치인들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대신, 자수성가한 정치인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며 표를 던진다. 그래서인지 "귀족출신과 평민출신이 선거에서 붙으면 평민출신이 이긴다"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잠언으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우리 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서민출신이다. 고(故)정일형 전 의원의 아들인 민주당 정대철 고문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을 바라는 것 같다. 정상적으로 자라온 사람들은 신화가 없다. 아마도 지도자를 고를 때 신화를 만든 인물을 찾는 것 같다”고 전했다.
YS, "현철이는 정치 안하는 게 좋다”
이 같은 정서 때문인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의 차남 김현철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의 정치 입문에 일절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상도동계 핵심 인사는 얼마 전 "예상외로 김 전 대통령은 현철씨가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텐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어 "김 전 대통령이 적극 나섰다면 현철씨가 저렇게 야인으로 지냈겠느냐"고 반문했다.
2세 정치인들 앞에 놓인 숙제를 온몸으로 안고 있는 인물이 박근혜 전 대표다. 박 전 대표 지지층 마음 속에는 고(故)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녹아있다. 또, 퍼스트레이디(영부인)였던 고(故)육영수 여사에 대한 기억도 담겨있다. 박 전 대표는 육영수 여사의 헤어스타일(머리모양)을 하고 있고 박 전 대통령의 강렬한 눈빛과 정신력, 군더더기 없이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연설 스타일을 그대로 닮았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애국애족(愛國愛族) 이미지도 박 전 대표에게서 투영된다. 하지만, 그 이상은 잘 안보인다.
박 전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뛰어 넘는 확실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함에 따라 "박 전 대표 인기가 좋은 것은 박 전 대통령 효과에 불과하다"라는 평가가 따라붙기도 한다. 이와 함께, 그의 지지층 범위도 박 전 대통령 지지층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정체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와 소원한 관계인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일본의 세습정치인 가운데 여성정치인도 많다. 아버지의 딸이기에 일단 '흥행'이 되고 '배경'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건 남성 정치인 못잖게 여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도 일본도 '생활정치'와 '정치의 당대성'에 승부한 정치인이 중심이 되었다"고 말 한 바 있다.
박정희 DNA 받은 박근혜 파워는?
이 가운데, 박 전 대표는 당대 정치 현안인 세종시 문제에 대해 다소 고집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정적들은 "너무 자기 고집만 부린다.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최근 정부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결정하자 박 전 대표는 재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 측은 "박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호남에 인프라(사회간접자본)를 깔았을 때 경제성만 따졌다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해 그런 결단을 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결론은 아버지의 그런 정책을 지켜봤기에 박 전 대표도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시대에 있었던 일을 현재로 끌어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는 반박이 만만치 않다. 또, "박 전 대표가 '아버지'라는 테두리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2세 정치인으로 아버지 테두리를 벗어난 인물로는 그나마 조순형 의원이 거론된다. 조순형 의원의 부친인 고(故)조병옥 박사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거물 중에 거물이다. 일제 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 운동가 겸 정치가인 조 박사는 1950년 6·25전쟁 때 내무장관으로 대구 사수의 진두지휘를 담당하였다. 그 후 이승만 대통령과의 의견충돌로 사직하고,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나섰으며 1960년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했으나 선거를 1개월 앞두고 미국의 월터리드육군의료센터에서 가료 중 병사해 국민들의 탄식을 터뜨린 인물이다.
조순형, 조병옥 박사와 차별화 성공
이런 거물의 아들이지만 조 의원을 조병옥 박사 2세로 바라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무엇보다, 조 의원이 7선을 역임하는 긴 세월 동안 조 박사 이미지가 옅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조 의원이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의 별명은 '미쓰터 쓴소리'다. 조 의원은 여당 의원일 때도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내 국민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줬다. 이에 "조 의원은 주류에 속해 큰 권력을 탐하기보다는 비주류 위치에서 소금 역할을 한다"는 칭찬이 뒤따랐다. 여·야 정치인들 중에는 조 의원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2006년 7월 성북을 보궐선거에선 '뉴라이트' 김진홍 목사가 선거유세를 도울 정도였고, 심지어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다른 당 후보인 조 의원의 당선을 위해 후보를 내지 말자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조 의원이 아버지인 조병옥 박사를 뛰어 넘는 2세 정치인이라는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의 강직함을 이어 받은 동시에 차별화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아버지를 뛰어 넘는 2세 정치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누가 그 주인공이 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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