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전원책 변호사가 지난 9일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에서 해촉됐다. 공식 임명된 날짜가 10월 4일이었으니, 겨우 한 달 남짓한 시간 만에 한국당과 결별한 것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전 변호사가 ‘이미지를 구겼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올(All) 단두대’를 외치며 호기로운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정작 조강특위 위원 자리에 앉은 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월권을 한 부분이 있다”거나 “태극기부대는 극우가 아니다”라는 등의 발언으로 ‘보수 통합’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인 전원책’이 보여준 시원시원한 태도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이는 결국 ‘전원책도 별 수 없구나’라는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전 변호사는 왜 그랬을까. 여론이 친박(親朴) 청산을 원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사이다 발언(사이다처럼 후련하고 시원한 발언)’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 변호사는 왜 ‘친박 끌어안기’를 해야만 했을까.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역사에서 힌트는 찾을 수 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던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는 3당합당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군사정권 잔존 세력 축출에 들어갔다. 이러자 JP(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1995년 1월 자신을 따르는 공화계 의원들과 민정계 일부 의원들과 함께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이렇게 창당된 자민련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충청권을 석권하고 대구·경북과 강원에서도 선전했다. 이후 1996년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도 충청과 대구·경북, 강원을 중심으로 무려 50석을 얻어내며 YS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준비 없는’ 인적 청산이 정권 자체에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 사례다.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공천 학살’에 대한 반발로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창당했던 민주국민당은 불과 2석을 얻는 데 그치면서 조용히 소멸했다.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 한승수 전 경제부총리, 조순 전 한나라당 총재,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합류했음에도, 전혀 힘을 쓰지 못한 채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두 사례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민련의 경우, 좌우 균형이 완전히 깨진 상태에서 ‘대안 정당’으로 출발한 케이스였다.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귀로 야권이 분열되다 보니 보수와 진보의 양강 구도가 형성되지 못했고, 자연히 보수도 진보도 결집하지 못한 채 선거가 치러졌다. 이 빈틈을 잘 파고들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정당이 바로 자민련이었다.
하지만 민국당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듯이(한나라당 133석, 새천년민주당 115석) 제16대 총선은 5 대 5의 ‘초박빙 선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이길 수 있는’ 쪽으로 결집하기 마련이라, 제3, 제4정당이 설 곳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참고하면, 전 변호사의 의중을 추론할 수 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수행해 15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당 지지율은 22.8%로 조사됐다.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
만약 이런 환경 속에서 친박 청산에 돌입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친박은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자민련의 전례에서 볼 수 있듯이, 5 대 5 구도가 형성되지 못하고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앞서나가는 상태에서는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결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나마 지지율이 높은 대구·경북에서마저 친박 정당과 ‘나눠먹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때문에 전 변호사 입장에서는 중도에서부터 가장 오른쪽까지 모든 보수를 통합해 5 대 5 구도를 만들어놓은 후, 인적 쇄신에 돌입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5 대 5 싸움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승산 있는’ 후보 쪽으로 모이는 경향이 존재했고, 이 경우 혹여나 있을지 모를 ‘친박 정당’ 창당의 후폭풍을 최소화할 수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전 변호사는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당은 적어도 절반은 물갈이해야 인적 쇄신을 하는 것”이라며 “인적 쇄신을 계획대로 추진했으면 (현역 의원) 50% 물갈이까지 생각해 뒀다”고 말했다. 그간 전 변호사가 한 모든 발언을 종합해 보면, 전당대회를 연기했을 경우 보수를 통합하고 한국당 현역 의원 50%를 물갈이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된다. 과연 전 변호사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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