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종희 기자]
흙수저 출신 리더들은 현실을 똑바로 보는 능력이 있다. 고생을 했기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또 창조적으로 문제를 돌파하는 의지력도 강하다. 그러면서도 힘든 시기를 겪었던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情)을 품고 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이 많다. 그 중에는 김원규 NH투자증권 대표도 있다.
196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농사일로 고되게 흙을 팠다. 가난한 집안 사정상 중학교만 마치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다른 길을 내준다. 대구상업고등학교 야간을 다니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낮에는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증권사 사환으로 일했다.
김 대표에게 이 시기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이런 고난이 그로 하여금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한다. 김 대표는 1년 3개월 동안 방바닥에 등을 붙이지 않고 독하게 공부했다. 그래서 경북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LG투자증권에 평사원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그의 과거 고생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35살의 나이로 LG투자증권 최연소 포항지점장에 오른데 이어, LG투자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합병된 뒤인 2013년에는 우리투자증권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4년 우리투자증권이 NH투자증권에 흡수합병 될 때는 대표를 맡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김 대표의 고속 승진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눈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그 과정에서 따뜻함을 잃지 않는 그의 스타일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5일 한 증권가 인사는 “김원규 대표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며 “특별히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사심 없이 일들을 처리하니까 주변의 사람들도 그를 신뢰한다. 또 일처리가 뒤끝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사는 “김원규 대표는 영업부문에서 20년 이상 일한 영업통인데, 가능성이 있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고 창조성을 발휘해 돌파한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가 거둔 실적은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2014년 합병 당시 813억 원(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 합산 실적)에 그쳤던 연간 순이익은 2015년 2142억 원으로 163.5% 급증했다.
또, 작년 3분기까지의 NH투자증권 실적은 누적순이익 2821억 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41.8%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NH투자증권은 2017년 11월에 금융위원회로부터 초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돼, 자기자본 200% 한도 안에서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을 발행하는 단기금융업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창조성과 관련, 김 대표는 우리투자증권 시절 당시 종합자산관리브랜드 ‘옥토’를 탄생시켜 회사 트레이드마크로 키워냈고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프리미어블루’를 선보였다.
이런 김 대표의 책임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2013년 우리투자증권의 LIG 기업어음(CP) 불완전 판매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져 금융감독원이 징계하려 하자 “사업부 대표로서 책임은 내게 있으니 징계범위를 국한해 달라”고 호소, 혼자서만 견책 처분을 받은 것은 지금도 회자된다.
아울러, 그가 전무 시절 1~3년차의 새내기 사원들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전화로 “집 앞으로 갈 테니 술을 사달라”고 했던 일화가 있다. 김 대표는 새벽까지 함께하고는 택시에 태워 보냈다.
김원규 대표는 흙수저 출신이 보여줘야 할 리더십의 모범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2018년 올 해는 김 대표와 같은 흙수저들의 보다 많은 성공 스토리를 기대해본다.
좌우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