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콜트·콜텍은 건실한 기업이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878억 원의 누적 흑자를 냈고, 부채비율도 동종업계 평균부채(2006년 기준 168.35%)보다 훨씬 낮은 30%대였다. 2006년 순손실을 기록했으나, 30%에 달하는 세계 악기 시장 점유율을 고려하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2007년, 콜트·콜텍은 56명의 노동자를 집단 해고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는 이유였다.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은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콜트·콜텍의 경우 정리해고가 필요할 정도로 재정이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대법원도 보조를 맞췄다. 지난 2012년, 대법원은 기타생산업체인 콜트악기가 20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하지만, 자회사인 콜텍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기업의 전체 경영실적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더라도 일부 사업부문이 경영 악화를 겪고 있는 경우, 그러한 경영 악화가 구조적인 문제 등에 의한 것으로 쉽게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면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어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합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긴박한 경영상 필요’란 무엇인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애매모호한 조항으로 인해, 노동자 해고 기준이 점차 완화되고 있다. 1990년까지만 해도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문구를 ‘기업이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지 않으면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로 해석했다. 이른바 ‘도산 회피설’이 기준이었다.
하지만 2002년,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라 함은 기업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로 판례가 변경됐다. 심지어 2012년에는 ‘기업의 전체 경영실적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더라도 일부 사업부문이 경영 악화를 겪고 있는 경우’로까지 확대 해석했다. 10년을 주기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의 범위가 확장돼온 것이다.
노회찬 의원, 정리해고 제한 법안 발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소속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 의원은 “현행법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 경영상 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사용자의 해고회피 노력, 노동조합과 협의, 해고근로자 우선재고용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현행법에서 정하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어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판단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해 경영상 해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해고의 절차를 구체화하며, 해고노동자의 우선재고용과 관련한 제도를 정비하고, 대규모 경영상 해고의 경우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사업주와 노동자의 신뢰 기반을 만들고 노동자의 노동권을 두텁게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되면 명확한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돼왔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문구가 구체화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용자는 영업이익·자산규모 등 재무현황, 사업현황, 외부기관 신용평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판단해야 한다. 또 △단순한 인건비 절감이나 노무관리의 편의 등을 위한 구조조정 내지 업무형태의 변경 △신기술의 도입 등 기술적 이유 △장래의 경영 위기에 대한 대처 △일시적인 경영 악화 △업종의 전환 등을 이유로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게 된다.
또 이 법안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추상적으로 정해져 있는 해고 회피 노력도 ‘자산 매각, 근로시간 단축 및 업무의 조정, 순환휴직, 전환배치 등’으로 구체화했으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인원을 해고하려 할 때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개별·집단해고 보호지수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2위에 불과한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인 셈이다.
사용자-근로자 반응 엇갈려
이 법안에 대한 반응은 사용자와 근로자를 경계로 극명히 엇갈린다. 지난달 〈시사오늘〉과 만난 한 기업인은 “현행법으로도 노동자를 해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는 세계 추세를 따라가지는 못할망정 정규직 과보호 법안만 쏟아지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고 토로했다.
반면 한 30대 대기업 사원은 “예전에는 사오정(사십대나 오십대에 정년퇴직), 오륙도(오십대 육십대에 계속 회사 다니면 도둑놈)라고 했지만 지금은 30대 사원들끼리도 ‘잘리면 뭐하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면서 “국회의원들이 어떻게든 노동법 바꿔서 사람 자르기 쉽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제발 우리도 한 명 한 명이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꼭 법안이 통과됐으면 좋겠다”며 “나도 응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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