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슬기 기자)
최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또 다시 한반도에 안보위기가 도래했다. 실효성없는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한 의문과 함께 ‘핵 무장론’이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핵 무장론은 국제정치적 역학구조 속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질적인 두 정치 체제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지난 13일 국민대학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선 노재봉 전 국무총리의 강의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질성이 높은 두 체제에서는 ‘협력과 화합’보다는 ‘남한과 북한의 정통성은 어디서 기원하는지’ 그 사상적 기초를 이해함으로써 문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은 군사전략으로 시작해 정치전략으로 변화…결국 승자없는 전쟁”
노 전 총리는 국제정치적인 조건을 배제하고서는 남‧북한 정치체제의 정통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한의 정통성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남북한 정권 성립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국제정치적으로 우리나라와 북한은 온전히 우리 힘으로 지금의 정부가 성립된 것이 아니다. 남‧북한 모두 국제정치적인 힘의 작용 결과로서 존립하게 됐다. 구체적인 그 시작은 ‘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선 전쟁에 대해 설명하자면 2가지로 구성된다.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 정치적 목적을 수반하는 ‘정치전략’과 오직 전쟁의 승리만을 생각하는 ‘군사전략’이다. 2차 대전 당시 주요 전쟁 수행 담당자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두 지도자는 전쟁 수행 전략이 달랐다. 소련의 스탈린은 ‘정치전략’에 중심을 뒀다면, 미국의 루스벨트는 정치전략은 배제한 ‘군사전략’ 위주로 전쟁을 수행했다. 당시 루스벨트는 군사전략적으로 ‘일본의 항복’만을 목표로 두었기 때문에 소련이 전쟁에 개입하도록 설득했다.”
노 전 총리는 만약 루스벨트가 군사전략이 아닌 정치전략을 수행했다면 중국의 공산주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남북한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루스벨트가 정치전략을 고려했다면 소련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고, 현재 세계에 남아있는 공산주의 세력인 중국과 북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맥락 속에서 발발한 ‘한국 전쟁’에도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게 됐다. 한국전쟁에서 미‧소는 일관된 군사‧정치전략이 아니라 군사전략으로 시작해 정치전략으로 전쟁 수행전략이 바뀌면서 결과적으로 승자 없는 끝이났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문제는 이질성에 기원…국가형태와 조직행동 양태의 차이”
이어 그는 남북한 문제도 체제의 이질성에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정치적 배경으로 인해 미‧소의 이념적 이질성이 오랜시간 남‧북한에 주입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그는 최근 발생하는 남북한 문제를 ‘동질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전망했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나라를 뒤에 두고 있던 우리나라와 북한은 체제적으로 동질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북한 정치체제에 장기간 영향을 준 미국과 소련은 완전하게 동질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소의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각각 남한과 북한에 주입했다. 만약 두 체제에 동질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협상을 하거나 화합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북한 사이에 동질성이 없기 때문에 남북한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이질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국가 존립의 기본 원리가 다르다. 즉 국가형태의 이질성과 조직 행동 단위의 양태에 차이가 있다. 북한의 국가형태에는 주권국가라는 개념이 없는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와 공산주의에 기반을 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개별적인 근대 주권국민국가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우리와 다르게 북한은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아 사회형태도 다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정통성의 핵심인 사상적 기반도 다르다.”
북한을 설명하는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는 모두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정치적 협업을 지향하는 정치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의 신봉자들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상호 이익이 단기적인 개별이익 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협업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북한의 이념적 정통성은 민중론에 기반…최고권력자를 위해 존재하는 전체”
노 전 총리는 북한이 한반도 역사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정권이라고 주장한다며 이 주장의 근거는 독립운동시기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이념적 정통성은 더 과거로 내려가 18세기 낭만주의에 기원한다고 말했다.
18~19세기 계몽주의에 반대해 나타난 낭만주의는 계몽주의가 주장했던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대해 거부한 사조였다. 특히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주의자들이 설파했던 이성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었다. 이에 따라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 변화를 따르기보다 과거 중세 봉건사회에서 이상을 찾고자 했다. 특히 당시 만연했던 사회 분열과 이기주의를 부정하고 중세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던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싶다는 것이 주요 동기였다.
“북한이 말한 사상적 정통성의 시작은 낭만주의에 기반한다. 계몽주의 사조에 반발해 시작된 낭만주의는 계몽주의가 주장한 ‘이성’보다는 ‘감성’에, ‘개인’보다는 ‘공동체’에 역점을 둔다. 계몽주의는 ‘이성’을 중시하고 ‘사회와 자연은 스스로 법칙을 갖고 있어 합리적이고 공식화된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능력을 갖고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됐다. 그러면서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대두됐고 극적으로 ‘프랑스 혁명’으로 표현됐다. 그러나 독일이 주축이 된 낭만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전통과 감성’을 중시하며 계몽주의에 반발했다. 특히 낭만주의는 사회를 개인 단위가 아닌 유기체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낭만주의 사조가 만연했던 독일은 개인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유기체적인 정치체제가 성립하게 된다.”
“독일의 정치사상적 기반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게 되면서 민중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브나로드 운동’이다. 독일의 사상과 풍조를 세계 각지에서 대대적으로 수용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나라 유학생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민중주의, 민중론’의 사상적 기초에 대해 집약적으로 표현한 사람이 바로 신채호다. 역사에도 현대 한국에서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초를 신채호에 근거하고 있는 이유다. 북한은 정통성의 시작을 신채호와 연결하는데, 구체적으로 민중을 주권문제와 결부시킨다. 북한은 ‘민중주의’에 근거해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전제하면서 ‘전체’를 의미하는 ‘민중’을 ‘최고권력자’인 ‘하나’와 동일시한다. 따라서 이에 근거해 북한은 전체를 위해 최고권력자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화정과 정치구성이 같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 논리가 북한이 주장하는 국가 정당성의 원리인 것이다.”
“이질적인 두 체제 갈등 해결을 위해…억지전략을 통해 한반도 평화 이룩해야”
노재봉 전 총리는 최근 핵 문제를 비롯한 남북한 갈등은 정통성 차이에 기반한 이질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노 전 총리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체제 속에서 한반도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선 ‘협상과 타협’보다는 ‘억지전략’을 통해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남북한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면서 이 문제가 심각하다. 남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당사자인 우리가 갈등의 기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합리성과 정통성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두 국가의 정통성이 어디에 근간을 두고 있는지 확인해 남북한의 이질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질성이 높은 두 체제 사이에서는 협상과 대화가 잘 이뤄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가 도발하지 못하도록 ‘억지전략’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
좌우명 :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