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다양한 이슈를 몰고왔던 제19대 국회가 막을 내렸다. 지난 2012년 5월 30일 임기를 시작, 4년여 간 달려왔던 지난 19대 국회의 이모저모를 <시사오늘>이 살펴봤다.
진보정당들에게 19대 국회는 한바탕 꿈과도 같았다. 야권연대를 통해 원내입성에 대거 성공하며 달콤한 춘몽을 꾸는가 싶었지만, 분열과 함께 악몽과도 같은 해산결정을 맞닥뜨리며 일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19대 총선을 앞둔 통합진보당의 기세는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진보진영의 ‘스타 정치인’이 손을 잡고 총출동하며 보라색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비례대표 경선부정사태가 터지며 짧은 화합은 끝난다. 서울관악구을에 나서려 했던 이 전 대표는 후보직을 내려놨고, 유 전 장관도 비례대표 후보에서 사퇴했다. 이는 결국 소위 ‘NL파와 PD파’의 대립이라고 알려진 민주노동당 계열과 진보신당 계열의 분열로까지 이어졌다. 이 때 대거 탈당한 진보신당 계열 인사들은 현 정의당의 주축이 된다.
한바탕 홍역을 치렀지만 통합진보당은 19대 총선에서 선전했다. 18대 국회의 7석에서 6석이 늘어난 13석이나 얻으며 도약했다. 자유선진당을 제치고 원내 제 3당으로 떠오른다. 야권연대를 통해 심상정, 노회찬 등을 필두로 지역구에서만 7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곧 시련이 시작된다. 우선 분열이 일어났다. 부정경선 사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에 있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이 결국 대거 탈당한다. 원내 의석은 통합진보당 5석, 정의당 8석으로 양분됐다.(정의당은 2012년 진보정의당으로 출발해 2013년 7월 정의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정의당도 의석을 잃는 악재가 있었다. 서울노원구병에서 60%에 가까운 득표율을 보이며 압승한 현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삼성X파일 폭로와 관련, 의원직을 상실했다. 2013년 2월 14일 대법원은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노 원내대표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형을 확정했다. 게다가 강동원 의원의 탈당으로 정의당의 의석은 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으로 줄어들며 원내 3당이 되는데 실패했다.
정의당이 분리돼 나간 뒤 통합진보당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이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이라고 규정하며 헌법재판소에 해산심판을 청구했다. 2014년 2월, 헌재는 8대1로 해산 판결을 내린다. 이와 함께 이석기 전 의원 내란선동 사건이 ‘내란죄 무죄, 국보법 위반 유죄’로 같은 해 8월 선고되면서 통합진보당은 궁지에 몰린다. 결국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은 강제 해산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분열이 전화위복이 되면서 생존한 정의당은, 원내 유일한 진보정당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졌다. 20대 총선에서는 야권연대 대신 독자노선을 고수하며 틈새 시장을 노렸다. 야권의 분열 속에 내심 두 자릿수 의석을 기대했던 정의당은, 예상 밖 더불어민주당의 선전과 국민의당의 돌풍 속에서 여섯 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심상정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가 각각 지역구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승리했지만 정당투표서 7.2%를 얻으며 비례대표 4석 확보에 만족해야 했다.
해산 후 구 통합진보당 인사들은 각자의 길을 걷는 중이다. 이정희 전 대표는 칩거상태고, 20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하거나 정계를 떠난 이들도 있다. 일각에선 민중연합당이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라는 주장도 제기했으나, 해당 관계자는 지난 4월 선거를 앞두고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이 사실을 부인했다.
구 통합진보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3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은 세계사에 남을 정부의 폭거”라며 “노선은 다르지만 정의당 등이 진보정당의 맥을 잇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의 누명은 벗겨지고 다시 정치를 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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