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운아 홍사덕, '역사속으로'…리퍼트 피습에 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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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운아 홍사덕, '역사속으로'…리퍼트 피습에 사의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5.03.05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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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은 누구>민한당 간판으로 정치시작, 말년엔 유신옹호 등 파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정치풍운아 홍사덕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5일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40년 가까운 홍 의장의 정치인생도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홍사덕의 정치시작은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1대 국회를 통해서다. 홍사덕의 정치입문 과정을 도왔던 인물은 김덕룡과 김정남. 당시 야당(민한당)의 공천을 관장했던 인물은 신상우.

민한당은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 2중대’소리를 들었지만 신상우는 야성을 강화하기 위해 당시 재야투사로 알려진 6·3 세대 김정남에게 공천자 천거를 부탁했다.

김정남이 다시 김덕룡에게 “좋은 사람이 없냐‘고 부탁하자 김덕룡은 서울대 문리대 동기인 홍사덕과 김도현을 추천했다.

신민당 합류위해 민한당 탈당 감행, 안기부서 고문

11대 국회를 통해 초선배지를 달은 홍사덕은 12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했다. 신한민주당에 입당하기 위해서였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기 위해 김영삼(YS)이 민주산악회→23일간 단식투쟁→민추협결성을 통한 신한민주당을 창당하자 홍사덕은 1984년 12월 김현규 서석재 박관용 등과 함께 민한당 탈당을 감행했다.

당시 민한당 현역의원들이 집당 탈당하자 이를 감지하지 못했던 안기부는 발칵 뒤집혔다.

1984년 12월 20일. 탈당주역 김현규가 안기부에 연행됐고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집으로 귀가하던 홍사덕은 “김현규가 안기부에 연행됐으니 피신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홍사덕은 피신하지 않았다. 김현규 때문이었다. 김현규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집에서 내복을 껴입는 등 단단히 준비를 한 그는 안기부에 끌려가 3일간 철야조사를 받았다.

안기부와 이들 간의 설전이 벌어졌고 김현규 무소속-홍사덕 신민당 출마로 결론지었다.

5일 정치풍운아였던 민화협 홍사덕 의장이 리퍼트 피습으로 사의를 표명했다.ⓒ뉴시스

이민우 파동 기획자로 ‘지목’, 정치력으로 돌파

홍사덕은 12대 총선에서도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했고 이민우 신민당 총재의 최측근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86년 불거진 ‘이민우 파동’의 기획자로 알려지면서 진통을 겪었다.

5공말기였던 1986년‘직선제 개헌안’이 신민당의 당론. 당 총재였던 이민우는 그해 말 ‘선(先)민주화 후(後)내각제 협상용의’라는 발언을 해 정국은 일대 소용돌이로 빠졌다.

이민우 파동의 배경에는, 홍사덕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홍사덕이 여권(민정당)과의 교감 아래 각본을 만드는 등 막후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구체적으로 허문도와 접촉해 이 같은 안을 만들었다는 풍문.

유한열 전 의원은 “다 홍사덕 장난이었다”고 회고했고,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YS 최측근인 A씨도 지난해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평소 홍사덕이 제왕적 정치인인 YS와 DJ가 문제라고 얘기하고 다녔고, 나는 그것을 YS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이민우 파동이 일어나자 YS는 ‘홍사덕 장난이군’이라고 했던 적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하지만 YS는 문민정부에서 홍사덕을 중용했다. 홍사덕의 정치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다.

이후 홍사덕은 중진정치인으로 커왔지만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경합을 벌이던 이명박에게 후보 자리를 내줬다.
정치판에서 사라질 것 같았던 홍사덕은 18대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했다. 친박계의 대표인사로 탈바꿈했다.

친박인사가 된 홍사덕은 오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젊은 날을 부정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민주대열 안에서 정치를 해왔던 홍사덕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유신은 권력연장보다는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한 조치였다”는 발언을 했다.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 공천권을 따냈으나, 민주당 정세균 후보에 패했다.

그리고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고, 2013년 벌금 300만 원에 추징금 3000만 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홍사덕은 쓰러지지 않았다. 민화협 의장을 맡으며 마지막 정치인생에 불꽃을 피웠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피습사건으로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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