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에 사는 이모씨는 지난 1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보험금 지급을 두고 보험사와 1년 넘게 소송을 벌여온 그는 최근 보험금은커녕 소송비용 170만원까지 부담해야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씨는 보일러 누수사고로 인한 침수피해로 재산상 손실이 발생되자 예전에 가입했던 G보험사에 배상비를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가 이를 단칼에 거절했고, 이씨는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결정까지 받아냈다.
이제 지루한 공방은 끝났겠구나 생각했던 이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보험사가 지급을 거부하고 법정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
이후 1년여의 법정싸움은 시작됐고, 결국 이씨는 패소했다. 이씨는 민사소송의 소송비용은 원칙적으로 패소자가 부담한다는 원칙에 따라 보험사의 소송비용 170여만 원까지 부담하게 된 것이다.
최근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등 소비자들의 권익이 침해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는(이하 녹소연) 소비자상담센터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보험사의 우월적 위치를 이용한 소송으로 소비자권익이 침해되고 있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특히 문제는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절차가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점에 착안, 금감원의 결
정을 수용하는 시늉만 한 채 뒤로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보험사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
녹소연에 따르면 지난 2009년 보험회사가 소비자를 상대로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총1518건이다. 이 중 손해보험사가 제기한 소송은 1378건으로 민사소송(632건), 채무부존재확인 소송(537건)이 주를 이뤘다.
이는 보험사가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등을 이용, 보험금 지급약수를 줄이거나 지급 거부 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롯데, 그린, 흥국 등 소형 3사의 소송제기건 비율은 82.5%로 업계 평균인 39.0%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 소송 남발하는 보험사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왜 보험사들은 소송을 남발하고 있을까.
이주홍 녹소연 소비자상담센터 부장은 “손해보험사의 소송제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협상을 통한 해결보다는 보험사의 우월적 위치를 이용해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유 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부장은 “금융감독원의 분재조정에 법적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보험사의 소송남발을 만드는 이유다”라며 “그간 보험사는 금융감독원의 중재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뒤 돌아서서 피보험자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접수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금감원, 보험사 제동 나서
보험사를 비롯해 금융사의 소송 남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금융감독원도 대안 마련에 나섰다.
지난 3월 11일 금융감독원은 금융사가 소 제기 전 반드시 금감원 분쟁조정절차를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조정전치주의와 분쟁조정결정을 금융사가 강제 이행토록 하는 편면적구속력 부여 등의 골자로 하는 방안을 내놨다.
또한 보험회사 표준약관에 회사의 보험회사 표준약관에 회사의 악의적 소송 등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근거를 마련함은 물론, 금융회사가 제기한 소송이나 민사조정신청사건을 검토해 부적절하다고 판단시 소비자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이는 보험관련 소송이 최종 판결까지 평균 190일 정도가 소요되기에 소비자에게 경제적 손실은 물론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쟁처리과정에서 금융사가 제기한 소송이나 민사조정신청사건을 면밀히 검토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비자 적극 구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녹소연도 “소송남발과 악의적 소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회사는 소송 제기 전에 반드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절차를 거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며 현재 입법발의 중인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의 소비자보호 인식이 날로 하락하고 있다”며 “보험사의 인식변화는 물론, 금감원도 회사별 민원발생 실적을 정확하게 공개해 소비자가 보험사를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10일 빠르면 6월부터 보험사들의 불완전판매 비율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그간 불완전 판매로 국정감사 등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며 “단기적으로는 보험사 영업사들의 불이익이 예상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한편 보험사들의 자발적인 불완전 판매 개선 노력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와 모집채널 간 불완전 판매비율이 공시되면 보험사들의 영업에 적잖은 영향 물론, 소비자들의 정보공개에 대한 권리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주홍 녹소연 부장은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에 반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금감원이 보험사와의 소송을 진행하거나 최소한 소송을 하는 소비자를 지원하는 방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