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성환 자유기고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권영성
① 대한민국의 국시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가) 평화통일이라고 보는 견해(한국교육개발원, 고등학교 사회Ⅰ, 1987, 15면) 나) 반공으로 보는 견해(김종필 전 국무총리, 제78회 국회 회의록, 1971. 9, 14. 1면) 다) 자유민주주의로 보는 견해(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국회 답변, 월간조선, 1987. 4, 274면 : 1966. 4. 21, 大判 66도 152)등이 엇갈리고 있다.
② 앞에서 이미 제시한 이유로 민주국가에서는 ‘국시’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지만, 구태여 견해를 밝혀야 한다면, 한국 현행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적 이념 또는 지표, 국가적 의사 형성과 국가적 질서 형성을 지배하는 지도 이념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해명함으로써, 이에 대신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국가적 이념 또는 가치 질서는 헌법 전문과 본문의 종합적·체계적 해석의 결과 복합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가) 대내적 기본 이념 내지 가치 질서로는 자유민주주의(국민주권의 원리·기본권의 존중·법치주의·의회주의 등을 포괄하는 개념)와 문화·복지국가의 원리를 들 수 있고, 나) 대외적 기본 이념 내지 가치 질서로는 평화주의를 들 수 있다. 이 경우의 자유민주주의는 반전체주의(反全體主義)·반권귀주의를 합의한 것으로, 그것은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파시즘·militarism 등 모든 독재제(獨裁制)에 대한 부정을 그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평화주의는 한반도 통일 정책과 연관시킬 경우, 평화적 통일과 민족주의를 그 내용으로 한다고 본다.
장을병
국시는 ‘국민 전체가 옳다고 인정하는 주의와 시정 방침’이라고 할 때, 이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국민의 여망이 달라지면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 실현을 최고의 긍정적 가치로 삼았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평등의 구현을 최고의 긍정적 가치로 삼았던 때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국시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설사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은 바뀌어갈 망정 ‘민주주의의 구현’ 그 자체는 우리가 영원히 추구해야 할 긍정적 가치이자 대한민국의 불변의 국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한완상
위의 일반적 정의에서 보면, 오늘 우리나라에서 국시는 헌법에서 내세우는 민주공화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민주공화제를 바탕으로 한 의회민주주의라고 하겠다. 그 까닭은 명백하다. 첫째 국민 절대다수가 의회민주주의를 옳다고(是)인정하면서 그것의 정당성을 아낌없이 부여하고 있으며, 둘째,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의회 민주주의 신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슨 국가 시책이라 하더라도 의회민주주의를 위축시키거나 제약시키는 것은 국시를 어기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국시와 관련하여 ‘(평화)통일’ 또는 ‘반공’을 어떻게 볼 것인가
권영성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현행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가적 이념 또는 지표 등(‘국시’와 대치될 수 있는 개념인지 의문이지만)을 준거로 할 경우, 평화 통일도 반공도 모두가 그 내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실천적인 차원에서 양자의 우선순위 내지 비중 여하가 문제된다면 우리들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완벽한(전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 가장 바람직한 통일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질성이 극단적인 양체제일 경우, 어느 일방이 타방을 무력으로 ‘병합’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평화적 방식에 의한 ‘통일’이 요구되고 있을 경우, 그 통일은 불가불 쌍방의 협상 내지 합의를 통한 양체제의 ‘절충’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도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사상과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라고 하였고, 1982년 1월 22일 국회 제1차 본 회의에서 행한 전두환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서도 ‘남북한 쌍방 중 어느 일방이 자기의 사상·이념·제도를 앞세워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통일만을 고집하는 한 통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라고 하여, 우리 측에서도 대한민국의 이념·사상·제도를 앞세워 대한민국이 원하는 방식의 통일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전대통령의 국정 연설에 나타난 평화 통일의 의지를 그 의도한 바에 따라 성실하게 구현하려면 전면적 적화 통일도 전면적 자유민주주의 통일도 고집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므로, 결국 자유민주주의적 요소의 부분적 폐기와 북측 체제의 부분적 수용은 어차피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평화적 통일 정책의 구현을 위하여 남북한이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려’ 한다면, 통일 논의에 있어서 북측 체제의 ‘부분적’ 수용을 부득이한 것으로 용인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거시적 안목에서 평화 통일 정책 구현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미시적 안목에서 용공적 발상으로 규정되어 규탄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장을병
우선 ‘반공’을 국시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반공은 설사 국시인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한 한낱 방패로는 인정될망정 그 자체를 국시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시는 긍정적인 가치여야 하는데 반해, 반공은 부정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반공을 국시라고 우긴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던 시대의 과장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평화통일’은 국시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무엇보다 평화 통일은 우리 민족 대다수가 희구하고 있는 염원이자 긍정적인 가치이다. 그런가 하면 불변의 국시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구현’도 민족 통일이 이룩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다. ‘민주주의의 구현’을 올바로 이룩하기 위해서도 민족의 평화 통일은 지상의 과제이니, ‘평화 통일’을 국시라고 주장한들 모순될 것 같지 않다.
한완상
국시인 의회민주주의와 반공과의 관계나, 통일과 반공과의 관계를 보다 명쾌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한 가지 전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무슨 정책이든지 그것은 여타 다른 정책들과 견주어 볼 때 목적의 가치를 지니면서 동시에 수단의 가치도 지닐 수 있다는 상대성에 유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성공이란 것이 교육에 견주면 목표가 될 수 있으나, 행복이라고 하는 더 고차원적 이상에 견주면 수단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런 상대성을 염두에 두고서, 국시로서의 의회민주주의와 평화 통일 또는 반공과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① 의회민주주의 국시와 반공과의 관계
여기서 의회민주주의라는 국시는 정책의 목표요 기준이며, 반공은 그 목표를 정당하게 실현시키는 데 도움 주는 수단의 가치를 지닌다. 그 까닭은 명백하다. 국민 절대다수가 의회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반공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이지, 반대로 반공을 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해야한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공 정책이 의회민주주의 이상과 지표를 실현시키는 데 도움되는 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반공 정책의 구체적 추진이 의회민주적 활동과 국민의 기본권을 위축시키거나 제약시키는 데 공헌한다면, 스스로 그 가치를 훼손시키게 되는 것이다.
② 통일과 반공과의 관계
한민족에게 조국의 평화 통일은 민족적 지상 과제요 민족적 숙원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우리 몸에 와 닿는 까닭은 통일이 모든 국민의 공감을 얻는 국시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 점, 문교부 공인 교과서에서도 확인하고 있다(문교부 제작 고등학교 교과서 사회Ⅱ, 57면과 사회Ⅰ, 15면). 교과서에서도 평화 통일을 국시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과서가 국민적 규범의 성격을 띤다고 볼 때 교과서가 평화 통일을 국시라고 규정한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만큼 큰 공감을 ‘우리의 소원은 반공’이란 것이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 없겠다. 반공이 지니는 수단적 가치를 여기에서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의회민주주의, 평화 통일, 반공 이 세 가지는 모두 중요하나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국시적 성격을 띤 것은 의회민주주의라고 할 것이다. 특히 평화 통일된 조국의 모습도 의회민주제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한다면, 의회민주주의라는 국가 목표를 위해 여타 다른 시책과 정책은 수단적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수단이 목표를 훼손시키는 불행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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