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극복해야 확장 가능한데…묘수 있을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과거에는 우리와 상대의 확고한 지지층 비율이 3대2였다면 지금은 2대3이다. 이건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연을 확장해야 이길 수 있다.”
7월 23일. 여당의 새 선장으로 선출된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는 현 정치 지형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과거에는 보수가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면, 이제는 정반대 양상이 됐다는 겁니다.
그 원인으로는 ‘인구 구조’를 지목했습니다. ‘산업화 세대’의 퇴장으로 전통적 보수 지지층은 줄어든 반면, ‘민주화 세대’에 젊은 세대가 가세한 진보 지지층은 확장되고 있는 게 보수의 위기를 불렀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념적으로는 중도,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세대 측면에서는 청년으로 지지층을 확장해야 보수가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정확한 진단이고 매우 정확한 해법입니다. 보수가 총선, 대선에서 이기려면 ‘확장’만이 살 길입니다.
문제는 구체적인 실현 방안입니다. 한 대표가 지지층 확장 대상으로 언급한 중도와 수도권, 청년 유권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싫어한다는 겁니다. 대화와 설득보다는 권위를 내세워 강압하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희생하라는 집단주의적 논리를 혐오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보수에게서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여전히 보수의 ‘최대주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니까요. 박 전 대통령의 최대 공적인 경제 발전은 군대식 명령과 국민의 희생 아래 이뤄졌습니다. 국민의 자유를 억누르면서 효율성을 최대화한 ‘개발독재’죠.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면서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 대표가 중도·수도권·청년으로 지지층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국민의힘에서 ‘박정희 멘탈리티’을 걷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강압적인 방식을 통해서라도 경제를 발전시키고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쪽과, 민주적인 과정과 개인의 행복을 우선하는 쪽이 ‘한 배’를 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설사 한 배를 탄다고 해도 일시적인 오월동주(吳越同舟)일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박 전 대통령을 함부로 배제하려 하다가는 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은 따로 떼서 창당을 해도 만만찮은 세력을 과시할 수 있을 정도고, 당내에는 한 대표의 ‘좌클릭’을 틈타 강성 지지층을 낚아채려는 사람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 분당(分黨)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죠.
결국 한 대표는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적절히 유지하면서도 보수가 더 이상 권위주의·전체주의적 정당이 아님을 증명해야 합니다. ‘항상 자유를 외치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은 군대식 꼰대정당’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야 하죠.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보수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한, 중도·수도권·청년에게서 권위주의·전체주의적 꼰대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지워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과연 한 대표는 이 난해한 고차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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