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은행산업은 고객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기본적인 믿음을 얻지 못한 은행에 소중한 자산을 맡기는 고객은 없다. 하지만 최근 은행권에서 잇따라 불거진 불완전판매 논란, 직원 횡령 사건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고객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까지 나서 이대로 신뢰를 계속 잃으면 은행의 존립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시사오늘>은 은행권이 고객 신뢰를 잃어간 과정을 되짚고 그 원인과 함께 개선방향을 살펴봤다.
횡령은 다른 일반기업에서 불거져도 큰 문제지만 은행권의 경우 유난히 파장이 크다. 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을 배신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은행산업에서 신뢰가 없는 은행에 돈을 맡길 고객은 없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뢰 회복을 강조한 것도 이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은행권에서 횡령문제는 최고 경계의 대상이다. 다만 내부적으로 직원(은행권) 개인의 일탈을 하나하나 미리 알고 막을 수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하지만 은행권내에서 횡령사고가 반복되면서 단순히 직원 개인의 일탈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문제소지를 줄이는 합리화된 업무절차와 적절한 현황관리, 철저한 사후감독 등을 통해 피해발생을 막거나 횡령 규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최근 횡령 발생시 단순히 직원 개인 일탈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내부통제 문제여부까지 들여다는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회성 청렴문화 강조…근본 해결책 안돼
은행권에서 횡령사고 발생시 항상 거론되는게 청렴문화 정착이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청렴문화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은행장 등 임직원이 길거리에 나서 신뢰회복을 외치는 모습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농협은행은 중앙회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추진중인 3행(行)3무(無) 운동에 적극 동참중이지만 올 3월 일선지점에서 발생한 100억원대 배임사고를 막지 못했다. 이는 농협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은행 역시 최근 100억원대 횡령사고가 불거졌다. 이와관련 금융당국이 일선 영업점은 물론 본점의 관리실태까지 감독 대상으로 올리며 강도 높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상황이다. 불과 8개월전 BNK경남은행에서 3000억원대 횡령 사실이 드러나 은행권은 물론 감독당국까지 국정감사에서 질타를 받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오히려 같은해 KB국민은행에서 직원이 은행 내부정보를 활용해 사적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례가 나왔다. 이는 예금이나 대출 등 여수신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사고가 아니라 증권대행 업무에서 발생한 비위라는 점에서 감독당국마저 처벌 범위를 놓고 고심할 정도였다.
본연의 은행업이 아니라 은행이 할 수 있는 일종의 부수업무와 관련된 부문에서 발생한 금융사고였기 때문에 그 책임을 사업부 책임자가 아닌 은행 경영진에게까지 물을 수 있냐는 점도 쟁점으로 꼽혔다. 이때문에 지난해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경영진 문책 등 극한처방에도 불구하고 내부정보를 악용하는 금융사고를 막기 어렵다면 은행권이 부수업무를 내려 놓으라는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
반복되는 금융사고가 은행산업 규제 강화를 넘어 업무범위 축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책무구조도…경영진 책임소재 어디까지
잇따른 은행권내 금융사고 발생에 금융당국과 국회는 은행장 등 경영진의 책임을 보다 엄격하게 묻겠다는 취지로 책무구조도 도입을 준비중이다.
'책무구조도'는 그동안 두루뭉술하게 이뤄지던 업무와 책임자간 상관관계를 명확히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장 책무로 규정된 업무에서 내부통제 소홀 등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은행장이 지게 된다. 직원 개인의 단순한 일탈행위가 아닌 시스템적 실패(systemic failure) 등 내부통제 문제에 대해서는 은행 경영진에게 그 책임을 엄격하게 묻겠다는 취지다.
다만 어디까지를 시스템적 실패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정의를 내리기 어렵고 내부통제 미흡 판단기준의 모호함 등 제도적 미비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비슷한 취지로 건설 등 산업현장에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안전관리 의무 소홀 여부 등을 확인해 사업주 등 경영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이때문에 책무구조도 도입은 금융권 중대재해법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은 2022년초 시행이후 현재까지도 위헌 논란에 휩싸여 있다. 경영진 책임소재 불명확, 사망사고 감소 효과 미미 등이 그 배경으로 거론된다. 이에따라 일각에서는 책무구조도가 오히려 은행 경영진의 면피성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금융당국은 은행권 책무구조도와 관련해 책임 위임 불가 등 임원 책임 강화라는 명확한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금융사를 상대로 이사회 의결을 거친 책무구조도를 제출받았으며 은행 등 각 금융사는 오는 7월3일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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