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연합정당 합류시, 민주당에 의탁하는 진보정치 됐을 것”
“재정문제… 멀어진 마음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 해답 있어”
“민주당 제안 거절…정치 입문 방식 개척해야겠다는 생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윤혁 기자]
제22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유례없는 참패를 기록하며 원외정당이 됐다. 독자적으로 20%를 넘긴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10%를 넘긴 후보도 심상정·강은미 둘 뿐이었다.
이러한 당의 존폐 위기를 보여주듯 정의당은 전당대회 후보등록 기간 내내,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일정을 연장했다. 그러던 중 ‘독이든 성배’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이 나타났다. 권영국 대표다.
그가 말하는 당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시사오늘>은 6월 13일 정의당 당사에서 권영국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총선을 복기하며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달 8일 본지에서 단독 보도한 ‘권영국 변호사 추대 유력’ 기사를 본 적이 있나 물었다.
권 대표는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아 그 기사 이 기자가 쓴 거구나. 그래도 고사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던데요.”
단독 기사가 보도된 후 권 대표는 12일 만에 제안을 수락했다.
- 결단을 내리기까지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출마를 결심하고 가위눌리는 꿈을 꿨다. 당이 원외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당직을 맡은 적 없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누군가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기로 마음을 돌렸다.”
- 지난 총선 참패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가.
“지난 총선은 심판선거였다. 야당에서는 윤석열 정권 심판을, 여당에서는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주장하면서 구도나 흐름이 ‘제3지대’에서 독자성 갖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려웠다.
또 윤석열 정권 탄생의 책임 프레임이 작용했다. 그 문제를 정의당이 대응하지 못했다. 물론 21대 국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보여줬던 갈지자 행보라던가 과잉된 정체성도 불신을 자초했다.”
- 비례연합정당에 합류하지 않은 것이 실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배고프다고 불량식품을 먹을 수는 없다. 그동안의 진보정치는 어떤 정당에 의존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양당에서 소외받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성장했다.
연합정당에 합류했다면 민주당에 의탁하는 진보정치가 됐을 것이다. 당내에서도 논쟁이 있었지만 이른 시일 내 정리됐다. 그 부분에서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 정의당이 끈질기게 국회에서 도입하려 노력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선거제도를 바꾸려 노력했던 것은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고 싶어서다.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정치적 목소리도 다양화됐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는 두 개의 목소리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깨기 위해 추진한 것 자체의 문제는 없었다. 다만 선거제도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위성정당을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있었고, 국회를 독점하고 있던 양당이 야합한 것이다.”
정의당에 대해서
- 노동자를 대표했던 정당인데, 어느 순간 다른 당론만을 이야기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것을 구분하려고 해서 문제가 생겼다. 예컨대 기후위기로 산업구조가 전환됨에 따라 일자리·지역공동체가 붕괴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노동과 기후 문제는 다르지 않다.
젠더 문제 역시도 임금 및 직장 내 승진차별·경력단절 등의 구조적 성차별 문제가 고스란히 노동의 문제와 연관돼 있다.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에도 노동하고 떨어져 있는 문제처럼 왜곡된 측면들이 생겼다.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하면 과거 박원순 시장 장례식 참여문제를 두고 문제가 부각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과잉된 정체성 논란으로 번져갔던 것 같다.”
- 원외정당이 되면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힘들어졌다. 생존을 위한 정의당의 전략은.
“마이크와 국고보조금이 사라졌다. 그러나 원외정당이라고 해서 존재감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존재감을 부각하는 활동을 하려 한다. 결국은 현장과 삶을 결합하는 것이 진짜 존재감을 살릴 방법이다.”
- 가장 시급한 문제는 당의 재정 문제로 보인다. 뚜렷한 방안이 있는가
“허리띠 졸라매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결국 재정은 당비와 후원 두 가지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곳에 기부하게 돼 있다. 현재 당에 마음이 멀어져 탈당하거나 당비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잘해서 멀어진 마음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 민주당과의 관계설정도 중요해보인다.
“사회·경제적 약자, 노동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는데 부합하는 행보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열려있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의 친자본적 감세·종부세·상속세 문제와 같은 부분에서는 불가능하다.”
- 진보당이 약진하면서 정의당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진보당은 남북관계·통일문제를 바탕으로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다면 정의당은 불평등·계급·차별 문제에 있어서 이념 차이가 있다.
다만 진보당은 현재 민주당에 의존해서 생존전략을 세운 것 같다. 만약 그럴 경우 민주당이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들에 불리한 정책 세웠을 때 어떤 스탠스를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정의당은 독자적 노선으로 진보정당이 가야 할 가치를 중요시했다.”
- 진보세력이 나눠어 있다. 함께할 가능성은
“진보세력이 추진하는 바가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목표와 목적에 따라 나눠질 수 있다. 사회 계급 관계를 관심 있게 본다면 연대·연합 그 이상도 추구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치가 충돌한다면 함께 할 수 없다. 노동당·녹색당은 상호 간 정책을 같이 한다는 관점에서 이미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원내 진입한 진보정당들의 경우 노동자·민중 관점에서 계급적 이해에 충실할 수 있느냐 의문이 풀려야 한다.”
권영국은 어떤 사람인가
- 인권변호사·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20대 총선 처음 출마했다. 현실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2014년 11월 13일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판결 선고가 있었다. 정리해고 과정에서 분식회계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만들어 냈다는 의혹이 있었고 서울고등법원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대법원에 가서 뒤집혔다.
당시 소송 대리인단 중 한 명이었는데 노동자들의 복직 희망이 꺾이는 것을 보며 사회 문제를 판결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맞겠느냐는 의문이 생겼다.
또 2016년에 용산참사 주범인 김석기가 출마했는데 그런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하게 됐다.”
- 정치권 러브콜이 많았을 것 같다. 그런데도 정의당을 선택했다.
“민주당에서도 제안은 있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정치 진출 경로가 민주당의 비례대표 내지 지역구 출마다.
‘왜 그런 길만 있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시민 사회 활동을 하면서 대변했던 목소리를 통해 주체화시키는 방식으로 정치 입문 방식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정치인 권영국의 목표는.
“진보정치를 재건하고 싶다. 지난 총선에서 독자적인 진보정치를 추구했던 정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심판받았다. 개인적 목표로는 여태까지 ‘거리의 변호사’라고 불렸다. 이제는 삶과 노동 현장에서 부대끼는 당대표가 돼서 ‘거리의 당대표’라 불리는 게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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