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메모 증거력 및 노소영 관장 기여도 논란 불거져
“비자금 받았어도…그룹 성장은 경영 역량에 좌우되는 것”
“재산분할, 3심서 뒤집히는 경우 드물어…‘특유재산’ 관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강수연 기자]
‘1조3808억 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의 이혼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한 재산분할 금액이다. 국내 최대 규모다.
최 회장은 이 같은 2심 결과에 불복, 상고에 나설 예정이다. 상고심에서는 비자금 메모의 증거력과 노 관장의 기여도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의 역대 최대 규모 재산분할 소송이 결국 대법원에서 결론날 전망이다.
앞서 서울고등법원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선고 공판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 원,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재산분할 1조3808억 원은 어떻게 나왔을까. 위자료 1억 원에 재산분할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1심 판결과는 큰 차이가 있다. 2심 판결은 1심과 달리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한 영향이 컸다.
즉 1심에서는 SK(주)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판단했으나, 2심에서는 이를 특유재산에서 제외한 것.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은 결혼 기간 중 부부가 공동으로 모은 재산이며, 혼인 전부터 가지고 있던 ‘특유재산’은 제외된다. 그러나 혼인 기간이 길어지면 특유재산도 분할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특유재산은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과 혼인 중에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이다.
노 관장 측은 SK(주) 주식과 함께 부부 공동생활과 무관하게 지출한 가계비 등도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최 회장 측은 혼인 후 취득한 부동산과 일부 계열사 주식 등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A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대체로 이혼소송 2심 재산분할 결과가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면서도 “(3심에서는) ‘특유재산’의 인정 여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유재산과 함께 ‘300억 비자금’ 이슈도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이다.
2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작성한 ‘선경 300억’ 메모를 중요하게 봤다.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하지만,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메모를 근거로 당시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로 발행된 약속어음 300억 원의 비자금이 고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에게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이후 1991년 당시 최종현 회장이 태평양증권 인수에 성공하는 등 이 자금이 SK그룹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판단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구체적인 물증 없이 메모와 약속어음 사진만을 가지고 핵심 증거로 내세운 법원의 판단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B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좀 이례적이긴 하다”며 “다만, 재판부도 그 메모 하나만을 갖고 판단한 건 아닐 건데, (자세한 건 판결문을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메모 외에 여러 정황들을 함께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알려진 바로는) ‘일부일처제를 깨트렸다’는 언급도 있었다고 하는데, 상당히 센 표현 같다”면서 “정말 이례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재계 안팎에서는 300억 원 비자금이 SK그룹에 유입됐다고 해도, 이 자금이 SK그룹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에는 과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1999년, 김대중 정부는 '빅딜 정책계획'을 추진하면서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합병을 진행했다. 이는 현대그룹을 밀어주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으나, 2년 후 경영 악화로 파산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즉 기업의 성장이 다른 어떤 배경보다 경영 역량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
A 법무법인 변호사는 “300억 원 비자금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룹의 성장은 경영자 개인 역량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재산 증식이 (비자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 점이) 쉽게 인정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그렇게 불어난 재산을 자녀들이 나눠 갖는 것도 일반적인 법감정 차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300억 원이 비자금이라면) 불법인 자금을 바탕으로 늘린 재산을 노 관장과 자녀에게 분배하는 것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비자금 환수는 현행법상 쉽지 않다. 300억 비자금을 뇌물죄로 본다면 공소시효가 지난 지 오래다. B 법무법인 변호사는 “특별법을 만든다면 모를까, 현행법상으론 (환수는) 어렵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의 전신 한국이동통신 인수 과정을 놓고도 공방이 예상된다.
2심 재판부는 노태우 정권 하에서 SK가 특혜를 입은 것으로 봤고, SK 측은 김영삼 정부 때 인수한 것으로 특혜 논란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1992년 대한텔레콤이 제2 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으나, 사돈기업 특혜 시비가 일면서 이내 포기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고, SK그룹은 1994년 공개 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게 된다.
대한텔레콤은 SK그룹이 1991년 설립한 선경텔레콤의 후신으로, 1998년 SK C&C를 거쳐 2015년 SK(주)로 탈바꿈한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특혜가 아니라 정당한 방식으로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했고, 또 아주 잘 경영을 해서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SK텔레콤 구성원으로서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SK텔레콤의 노력과 성과가 폄훼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며 “이런 부분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좌우명 : Hakuna mat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