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부동산PF 사업장 옥석가리기 필요”…속도 강조
금융당국, ‘부동산 PF 정상화 계획 최종안’ 발표 예정
금융권 부동산PF 사업장 정리 가이드라인 역할 기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부동산시장 충격 최소화를 위해 당국과 업계가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실사업장 옥석 가리기를 통한 질서있는 구조조정, 부동산 리츠를 통한 미분양 물량 해소 등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시사오늘>은 금융권과 건설업계의 부동산 침체 극복을 위한 당국의 정책과 업계의 목소리, 그리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사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부동산PF발(發) 리스크는 단순히 건설업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돈을 빌려준 금융당국 역시 부실채권 등 직접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동산PF와 관련해 금융권에 대손충당금 적립을 보수적으로 주문해왔다. 리스크가 현실화되더라도 금융권이 받게 되는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이와관련 금융당국은 부동산PF 정상화 계획 최종안을 13일 발표했다. 일종의 금융권 부동산PF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부동산PF 사업장 옥석 가리기도 광범위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사업성이 부족한 일부 PF사업장에 대해 시행사‧시공사‧금융사 등 참여자가 스스로 재구조화‧정리를 해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를위해 한시적 규제완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사업성이 충분한 정상 사업장에 대한 자금공급 및 재구조화·정리에 민간의 적극적 참여 유인을 제고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신규자금 공급시 자산건전성 정상 분류 허용 △사업성 평가기준 완화 적용 △PF대출에 대한 유가증권 보유한도 완화 등 10개에 달하는 인센티브가 이번 대책에 포함됐다.
이처럼 금융권 인센티브 제공 등이 대책에 담긴 배경에는 대손충당금 부담을 호소한 금융권(특히 2금융권)에 당근을 제시하면서 옥석가리기에 속도를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그동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내놓은 발언에서도 예고된 상황이다.
이 금감원장은 지난 2월5일 ‘2024년 금감원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PF와 관련) 정당한 손실인식을 미루는 등의 그릇된 결정을 내리거나 금융기관으로서 당연한 책임을 회피할 경우 시장에서 퇴출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5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가 쌓은 대손충당금 총액은 11조1952억원으로 전년(6조2960억원)보다 77.8% 급증했다. 이같은 충당금 급증 배경에는 홍콩ELS 대규모 손실사태가 적지 않은 몫을 차지했지만 부동산PF 리스크에 대한 금융당국의 압박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제1금융권이 아닌 제2금융권이 느낀 압박은 더 컸던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PF 파도를 막기 위해 방파제를 쌓아올린 금융권과는 달리 건설업계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앞으로 벌어질 부실 건설사 부도가 금융권에 미칠 영향은 우려스럽다.
현재 부동산PF 위주로 쌓은 금융권 대손충당금은 건설사와 협력업체의 연쇄 부도를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 이와관련 이 원장은 그동안 부실 건설사의 질서있는 정리를 강조해왔다. 안으로 곪은 상처가 더 번지기 전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수술을 단행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원장의 그동안 발언들을 살펴보면 이같은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당국에서 상당히 타이트한 방법으로 (유동성 관련) 챙기고 있고 금융사의 어떤 이슈를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고 생각...(중략)... 건설업계에서는 소위 옥석 가리기와 적절한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책임준공 등으로 시공사들이 지나치게 큰 부담을 안아야 된다는 점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아울러 정상화가 가능한 사업장의 경우라도 과도한 이자라든가 수수료로 인해 정상화에 장애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2024년 3월21일 ‘부동산PF 정상화 추진을 위한 금융권·건설업계 간담회’ 후 백브리핑 발언中
특히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후 일련의 과정에서 이 원장은 부실에 대한 건설사 경영진의 책임있는 자세를 강조해 왔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채권단 입장에서는 남의 뼈를 깎는 노력(같다). 채권단 입장에서 자구계획을 보면 ‘견리망의(見利忘義, 이익을 보고 올바름을 잊음)’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태영건설은 시공·시행을 한꺼번에 맡아서 하면서 1조원 넘는 이익을 얻었고, 이중 상당 부분이 총수 일가 재산증식에 기여했는데 부동산 다운턴(하락세)에서는 대주주가 아닌 협력업체·수분양자·채권단이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중략) 채권단 입장을 전제로 말씀드리면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과 관련해서는 오너 일가의 급한 일에 소진한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당초 약속한 1549억원 중 실제로 태영건설에 지원한 400억원도 회사가 받은 매각자금만 들어가 있고, 대주주 일가의 자금은 파킹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채권단이 갖고 있다.”
2024년 1월4일 ‘2024 금감원장 신년 기자간담회’ 발언中
건설업 안팎에서는 부실 건설사의 1차적 책임은 경영진과 오너일가에 있고 제대로 된 자구책이 없다면 옥석 가리기 과정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졌다. 최근 발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에 대해 사업성 평가 기준 개편, 대주단 협약 개정 등을 통해 PF사업장 정리 및 재구조화의 속도를 높이면서도 사업성 회복이 가능하다고 평가되는 사업장에는 자금 공급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정상화를 지원해 질서 있는 연착륙을 도모하겠다. 해외 대체투자와 취약업종 기업대출 등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위험 평가와 함께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가겠다.”
2024년 5월8일 ‘2024년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 발언中
이는 사업성 회복이 가능한 사업장엔 정상화 지원을, 그렇지 못한 사업장엔 구조조정을 통해 질서있는 연착륙을 꾀하겠다는 말이다. 여기에 ‘속도’를 더하겠다는 건 부동산PF 리스크 장기화로 경기침체가 길어지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질서있는 연착륙의 진정한 의미는 부실 부동산PF 살리기가 아니라 속도감 있는 정리와 건전 부동산PF 살리기인 셈이다.
실제로 금융당국 역시 부동산 PF가 연착륙되지 못해 급격한 정리가 나타나는 경우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위축과 함께 건설‧금융업계 전반의 충격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번 대책은 금융권의 부실 부동산PF 정리에 속도를 내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권이 질서있는 연착륙의 책임의 주체로서 스스로 해결한다는 각오로 역할에 최선을 다하도록 이번 대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연착륙 과정에서 캠코 등 공적역할 확대가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과 협의해 신속히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성공적인 연착륙을 위해 이번 정책 방향의 일정과 내용에 대해 현장과 지속적으로 소통‧보완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금융당국이 내놓은 이번 대책은 어디까지나 금융권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부동산PF 고리의 한 축인 건설업계를 돕기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부가 앞서 내놓은 CR리츠 세제 혜택과 관련한 혜택 강화와 매입 확약 추가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체들의 연쇄 도산 우려를 끊으려면 PF사업장의 옥석 가리기와 함께 미분양 해소 대책 등 채찍과 당근이 동시에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좌우명 : 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