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하는 척’만 하고 후속조치 없던 이유”
“정작 국가 소멸 위기 맞을 당사자는 청소년층”
“노조 등이 중심돼 정치권과 정부 압박해 나가야”
“황량한 초등교 입학식 보면서도 계산 안 나오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던 초등학교. 기성세대의 어릴 적 ‘국민학교’에 대한 기억은 대개 그렇다. 학생들은 넘쳐나고 학교 건물이나 운동장은 부족하고, 그래서 수업도 2부제, 심지어 3부제까지 해야 했던 빡빡했던 시절이었다. 그 어린이들이 서로 부대끼며 자라나 폐허 속 나라를 이렇게 일으켜 세웠다.
이달 초 충격적인 사진과 영상이 각 언론을 뒤덮었다. 쓸쓸한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들. 입학생을 못 받아 입학식을 못 한 학교가 무려 157곳이었다고 한다. 어린이 한 명이 ‘나 홀로 입학식’을 한 학교도 있었다. 나 홀로 입학식이라니…. 믿기지 않는 일이다.
환한 표정으로 홀로 학교를 들어서는 어린이 사진이 우리를 더욱 짠하게 했다. 둘이 정답게 손잡고 학교로 들어서는 아이들, 소규모 입학식을 치르는 아이들…. 모두가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사진들이었다.
쓸쓸해진 학교, 쓸쓸해질 이 나라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6157곳 초등학교 가운데 신입생이 한 명도 없어 입학식을 치르지 못한 학교가 157개에 이른다. 3년 전에 비해 40%가량 늘어났다.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는 2021년 112곳, 2022년 126곳, 2023년 149곳 등이었다. 대구시 부계초와 강원도 태백초에서는 한 명의 학생만 입학, 나 홀로 입학식을 했다.
전국 초등교의 올해 신입생은 36만9000여 명으로 4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23만 명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초등학교 입학생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게 돼있다.
새싹이 점차 줄어드는 나라, 당연히 곧 잎도 없고 열매도 없어진다.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 잇따라 ‘한국 소멸’에 관한 기사를 써대는 해외 언론들이 밉기는 해도 현재로서는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처지가 못 된다.
정부가 한참 전부터 저출생 대책을 내놓지만, 백약이 무효다. 정책이 겉도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심’이 없으니 매번 전시행정, 단발성 정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실은 이 문제가 정치권엔 그렇게 급한 사안이 아니다. 방탄국회 하랴, 총선 대비하랴, 여기저기서 후원금 챙기랴 제 코가 석 자인데 ‘먼 훗날’을 걱정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에겐 당장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인기 대책만이 급할 뿐이다.
장기 불황 속 많은 기업도 살아남기 위해선 사원들을 한 시간이라도 더 부려 먹어야 한다. 출산 장려 같은 대의를 좇을 여유가 없다.
어찌 보면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당연한 처신이었고, 그런 정부와 국회에 대고 인구대책을 세우라고 허구한 날 닦달했던 언론 등이 헛수고를 한 셈이다.
국가소멸 위기 당사자는 40대 미만 젊은이들
이승만은 100년 전에 식민 치하에서, 그것도 머나먼 하와이에서 한인 여성들을 한곳으로 모아 교육을 받도록 했다고 한다. 여성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기울였고 정부 수립과 동시에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 프랑스나 스위스 같은 선진국들보다도 여성참정권을 앞서 시행했다. 오늘 각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한국의 여성상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먼 장래까지 내다보는 그런 걸출한 지도자가 매번 나오는 건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이승만 같은 정치가(statesman)는 찾기 어렵다. 아쉬움을 접고, 그런 전제하에서 합심해 인구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정작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당사자는 젊은 층이다.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적 위기는 그들이 노년층이 되거나 지금 10대가 국가의 중추적 역할을 할 때 본격적으로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젊은이들 역시 인구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국가 소멸에 앞서 자신들이 노인이 됐을 때 노인 빈곤율이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통계치까지 잇따라 나오는 판인데도…! 젊은 노동력이 줄어드는 사회가 되니 당연히 그렇게 될 거다.
40대 이하 유권자가 이번 총선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 하나. 어느 당이 됐든 어느 후보자가 됐든 20년 후, 30년 후 대한민국 설계를 제대로 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놓는 쪽을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젊은 표’들은 이번에야말로 사탕발림 공약으로 표를 훔치려는 자들을 걸러내고 제대로 된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 칼럼란을 통해 몇 차례 지적했지만, 우리를 둘러싼 국가들의 수준과 성향은 여전히 원시시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회만 보이면 옆 나라를 먹으려 하고, 제 이익을 위해선 이웃 못살게 구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게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정글지대다.
잠재적인 하마스가 있고, 푸틴 성향의 욕망이 끊이지 않는 이 동네에서는 최소한의 인구 확보가 최소한의 국가방위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과 정부에서 ‘하는 척’이라도 하는 지금이 기회
최근 민간기업이 나서기 시작했고 이어 정부가 ‘하는 척’을 시작했다. 이때야말로 젊은이들이 몰아붙여야 할 찬스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직원이 애를 낳으면 1억 원을 준다고 밝혔다. 그 출산장려금에 대한 세금 문제가 제기되자 정부가 그 장려금에 대해서는 전액 세금을 감면해 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강릉시 정동진 썬크루즈 호텔도 직원들에게 출산장려금으로 최대 1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따라올 기업들이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지자체 지원은 실제로 출산에 곧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화성시와 충남 서산, 당진시 등의 출산율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이 몰려있는 해당 지역에서 지자체들이 기업과 함께 근로자들의 출산 및 육아 지원에 힘쓴 덕분이다.
젊은이들이 선거 과정에서, 관련법 제정 과정에서, 노사협상 과정에서 끊임없이 기성세대를 압박해야 하는 이유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판다고 하지 않는가.
파격적인 ‘다산(多産)’ 정책 세울 때
쓸쓸한 초등학교 입학식을 통해 빈약한 대한민국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인류 삶의 패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부모의 돌봄 아래 성장하고, 젊어서 애 키우고, 늙어서는 후손들에게 몸을 의탁하는 게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이었다. 쉽사리 바꿀 수 없는 보편적 삶의 패턴이 그러했다면 아기를 낳아야 하는 게 정답일 거다.
거창하게 인류 삶의 패턴까지 얘기할 필요도 없이, 인구 대책은 이제 한국 젊은 층의 코앞에 닥친 생존 문제가 됐지 않은가. 기성세대를 압박해 가면서 결혼 붐을 일으키고 ‘다산’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육아비용이 적게 드는 프랑스 같은 나라들을 모델로? 프랑스의 인구감소가 우리만큼 심각한가? 그 나라들을 모델로 삼을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세계 1위라는 우리의 저출생 사태, 인구감소 사태는 심각하고 다급하다.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파격적인 다산(多産) 및 육아대책! 그게 정부의 모든 정책 중에서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