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 집회 열려다 KT 요구에 철회
LH발주 세종공동캠퍼스 대보건설 집회 강행
건설사 공사비 갈등 조정 기대 낮아 확전 우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승현 기자]
공사비를 올려달라는 요구가 건설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부터 사옥, 공공시설 건축까지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발주처와 시공사간 의견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공사중단과 집회까지 열리며 대치 국면이 벌어지고 있다.
쌍용건설-KT 시공비 갈등…‘물가특약’이 발목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쌍용건설은 이날 경기도 성남에 짓는 KT 신사옥 공사비를 올려달라라며 시위를 벌이려다 연기했다. KT가 협상시간을 달라고 해서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10월에도 같은 문제로 시위를 벌인바 있다.
쌍용건설이 요구하는 공사비 증액 규모는 171억원이다. 쌍용건설이 KT 신사옥 공사를 수주했을 때 계약금액은 약 900억원인데 지난해 4월 공사를 마칠 때까지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특히 계약 당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반영한 탓에 건설원가가 올라도 추가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10월 공사비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공사비 조정을 신청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KT 신사옥 공사비를 올려달라는 요구를 KT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시위를 하고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사안을 접수했지만 조정이 지지부진했다”고 말했다.
KT 관계자는 “KT 신사옥 공사건이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만큼 조정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며 "시공사와 원만하게 합의점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원론적 입장만 전했다.
최근 KT가 발주한 공사를 따낸 시공사는 쌍용건설외에도 현대건설과 한신공영 등이 있다. 현대건설은 현재 서울 광화문의 KT 구사옥(웨스트 빌딩)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에 시공사로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 완공 예정으로 알려졌다. 한신공영은 KT의 자회사가 발주한 부산 오피스텔 건설 사업을 수주해 지난해 준공했다.
공공발주·정비사업까지 번진 공사비 갈등
공공공사에서도 공사비 문제가 불거졌다. 대보건설 역시 같은날 현장 근로자 70명이 세종시청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대보건설은 지난 5일 공사비 문제로 750억원 규모의 세종 공동캠퍼스 공사를 중단한 바 있다.
대보건설은 발주자인 LH에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지만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보는 해당 공사로 지금까지 300억원 넘게 손해를 본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회사가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준을 넘어 차입까지 해가며 공사를 수행해왔으나 건설사들의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로 금융권 차입도 여의치 않아 더이상 공사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LH는 “일부 건물을 우선 준공하는 방향으로 공사를 추진하되 추가비용 부분은 계약금액을 조정하기로 건설사와 합의했다”며 “최근 건설공사비 상승분은 관계 법령에 따라 지난해 12월 이미 공사비용에 반영했고 계약금액 조정에 대해 건설사와 적극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건설업계의 공사비 인상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에서는 시공사들이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정비조합들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홍제3구역 재건축사업장은 2020년 3월 입찰당시 3.3㎡당 512만원이었던 공사비가 이후 공사원가 상승으로 시공사가 3.3㎡당 830만원을 제시하면서 조합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 강남권에서도 공사비 인상으로 정비사업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반포 1·2·4주구 재건축도 2017년 시공사 선정 당시 3.3㎡당 541만원을 제시했지만 이후 물가 상승에 설계 변경이 겹치면서 3.3㎡당 829만원으로 시공사가 재요청한 상태다.
건설자재 물가상향 평준화…조정 방안 마땅치 않아
건설사들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이유는 자재물가 상승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 1월 154.64를 기록하며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한 3년전(2021년 1월)보다 24.5% 상승했다. 같은 기간 생산자물가지수는 15.9% 올라 평균 물가상승률을 상회했다.
문제는 공사비의 분쟁을 조정하는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데 있다.
국토교통부의 표준도급계약서에 따르면 공사 계약을 체결한 뒤 물가 인상분만큼 공사금액을 올려줘야 한다. 지난해 8월에는 공사비를 올릴 때 건설자재 품목의 물가뿐만 아니라 관련 지수도 증액 근거로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권고사항일뿐 사적계약에선 관련 특약을 넣어 물가인상분을 공사비에 추가로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국토부가 지난 1.10 대책을 발표하며 주택정비사업에서도 공사비 갈등 완화책을 제시했지만 도시정비법을 개정해야 해 언제부터 시행할 수 있을지 오리무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가트은 제도 강화 방안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의 반응도 떨떠름하다. 한 주택재건축사업 조합장은 “공사비 자체가 올라 도시분쟁조정위원회가 재판과 같은 효력을 가져도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도시분쟁조정위의 권한을 강화하려면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현실화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이 강제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공사비를 조정해달라고 신청을 해서 결과가 나오더라도 법적 효력이 없는 권고 사항일 뿐이기 때문에 공사 발주자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며 “업계 전반과 정부가 시공비를 둘러싼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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