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인간의 뇌(腦)는 일반화를 좋아한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매일 같이 다른 상황에 직면하고, 몰랐던 사람을 만난다. 이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 뇌는 일반화라는 작업을 거친다. ‘남성은 어떻다, 20대는 어떻다’ 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일반화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모든 호랑이를 ‘위험한 동물’로 규정하지 않고 개별 호랑이의 특성을 파악해 대처하려 했다면 인간은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집단의 특성을 개체에게 적용하는 건 인간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용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일반화는 극복해야 할 과제기도 하다. 물리적 위협에서 자유로워진 시대. 일반화는 더 이상 개인의 존엄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집단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개별 특성을 무시해버리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현대 사회에선 고정관념과 편견에서의 탈피를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그간 우리 정치권은 일반화라는 인간의 본능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왔다. 특정 성별, 지역, 직업 등에 낙인을 찍고 그들을 억압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분위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어떤 성별이나 지역, 직업을 일반화해 개인을 폄하하는 정치인은 ‘퇴출 대상’이 되는 시대다.
다만 아직까지도 이런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있다. ‘올드보이’라는 프레임이다. 올드보이라는 말 역시 본질적으로는 특정 성별이나 지역, 직업 등을 문제 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이유로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에서는 ‘올드보이는 물러나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나이 많은 정치인들을 한데 묶어 동일시하는 것만으로도 비판받을 행동일진대, 심지어 그들을 모두 구태(舊態)로 몰아붙이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다. 이상하리만치 나이 많은 정치인들은 개인의 특성을 무시당한 채 쉽게 동일시되고, ‘한국 정치를 퇴행시키는 원흉’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유독 나이 많은 정치인들에게는 차별적 언어가 허용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특정 성별을 가진 사람이나 특정 지역 출신을 도매금으로 넘겨 비판하는 게 옳지 않듯, 특정 연령 이상인 정치인들을 올드보이로 치부하면서 물러나기를 요구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개인적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올드보이라는 딱지를 붙여 정치에 접근조차 못하게 만드는 건 전근대적 ‘낙인찍기’일뿐만 아니라, 국민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올드보이라는 프레임이야말로 한국 정치를 퇴행시키는 원흉일 수 있다.
우리가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거나 많다는 이유로, 어떤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해서는 안 되듯, 나이나 선수가 높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은퇴를 종용당해서는 안 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무의식적으로 정치권에서, 언론에서 쓰는 올드보이라는 단어에는 그동안 우리가 벗어나고자 했던 고정관념과 편견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묻어 있다.
국민이 국회로 보낼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은 ‘능력’이어야지, ‘성별’이나 ‘지역’, ‘나이’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정치권은 ‘많은 나이’를 마치 결격 사유인 것처럼 매도하고 비난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모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천부적 권리를 타고난 존재다. 이 당연한 말이 ‘올드보이’들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게 정말 욕심일까.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