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얼룩…주택경기 침체에 전세가 상승 더해져
전세제도 보강과 공공임대 확대로 주거사다리 복원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승현 기자]
주거사다리였던 전세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0일 인사청문회 당시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것으로 투기하는 분도 있지만 주거사다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전세제도의 모순이 녹아있습니다.
전세 세입자 입장에서는 몇 천 만원 혹은 몇 억 원의 목돈을 마련하면 월세가 따박따박 나가지 않는 데다가 집값 등락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목돈을 조금만 더 모으면 집을 구입할 수 있기도 합니다.
반면 집주인이 매매가와 차이가 작은 수준으로 전세를 내놓고 받은 보증금으로 주택을 추가 매입해 수익을 올려 집값 상승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나아가 전세보증금을 떼이는 사기사건까지 빈발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서울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를 시작으로 경기도 수원, 서울 은평구 등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이 국정감사 시기인 지난 10월 16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피해자는 총 4481명, 피해액은 5105억원으로 집계됐다고 합니다.
피해규모는 커졌지만 경찰이 검찰에 기소하기 전 몰수 및 추징액은 전체 피해액의 약 2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여기에 경매에 넘어가는 등 위험을 숨긴 ‘깡통전세’로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쉽지 않아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바로 전세제도의 취약점을 노린 겁니다. 이처럼 전세는 이제 한국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야기하는 제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주거사다리로서 전세의 기능을 위협하는 요인은 제도의 허점에 있습니다. 전세금을 받은 집주인이 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 해당 기간 세입자 입장에서는 목돈이 묶여버립니다. 다른 전월셋집을 구하기 쉽지 않은 것이지요. 실제로 HUG가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전세보증금 사고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 보증사고액은 1조8525억원으로 지난해 전체인 1조1726억원을 이미 넘어섰고, 하반기 보증사고 예상액은 1조9336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전세 보증사고액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를 대신 돌려준 금액을 가리킵니다.
또한 자가보유율이 낮은 상황에서 전세가 주거사다리가 아닌 갭투자 수단으로 악용되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사실 갭투자는 전세제도 초기부터 나타난 현상이지만, 집값 상승과 경제성장이 같이 갔던 한국의 고도성장기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전세금을 끌어모아 새집을 사는 데 투자하면 거의 대부분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전세금 사고가 날 일이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전세로 마련한 자금은 은행대출처럼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집주인으로서는 월세만큼 유용한 제도로 여겨졌습니다.
지금처럼 집값이 오를지 내릴지 알 수 없는 여건에서는 갭투자가 주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시장에 실수요자를 만족시킬만큼 물량이 나와야 주택 공급과 수요 사이의 안정을 찾아가는데, 갭투자는 물량을 줄이므로 집값 상승을 부추깁니다.
실제로 서울을 기준으로 수요 대비 주택 공급률이 100%를 넘었지만, 자가 보유 비율은 60%에 그칩니다. 나머지 40%는 전월세에 의존하며 월세 지출을 감당하거나 전세 자금 손실 부담을 떠안으면서 자기 집을 못 구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여기에 공급 대비 수요가 많은 시장 상황을 만들어내니 집값 상승 압력을 만들어냅니다.
집값이 하락할 때는 전세 불안을 야기합니다. 집값이 상승하면 갭투자로 보증금을 유지할 수 있지만, 하락하면 보증금조차 까먹기에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특히 지금은 주택시장이 침체되고 공급이 삐걱대는 반면 아파트 전세수요가 증가하며 전세가격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2월 KB부동산이 발표한 주택통계를 보면 아파트 기준으로 매매가는 11월보다 0.08% 감소하며 3개월 연속 나타나던 상승세를 꺾었지만, 전세가는 0.09% 상승하며 4개월 연속 오름세를 유지했습니다. 특히 수도권 전세가격은 지난 9월부터 이달까지 0.2~0.4%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상승세가 두드러졌습니다.
결국 전세제도의 부작용을 줄이고 주거사다리로서 기능을 회복하려면 보증 강화와 부실매물 배제 등 관련 제도를 보강해야 합니다.
전세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참고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전세와 관련한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전세보증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는 동시에 구상권 행사가 확실히 이뤄져야 합니다. 또한 세입자가 전세매물을 쉽게 검증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나아가 민간공급뿐만 아니라 공공임대를 확대해 마련해 다양한 주거사다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100만원에 육박하는 월세로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가격 불안정으로 전월세난이 발생하는 겁니다.
공공임대는 역세권 등 입지가 괜찮은 곳에서 세를 비교적 저렴하게 내줄 수 있습니다. 공공임대는 가격 안정으로 주거안정 과제를 달성하면서도 과도한 부동산 규제로 시장 원리에 반(反)하지 않게 하는 대안으로 고려할 만합니다.
지금이라도 부동산 시장 불안정과 저성장 국면에 맞춰 주거사다리를 재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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