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6일 취임과 동시에 내년 총선 지역구·비례대표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오직 동료시민과 이 나라의 미래만 생각하며 승리를 위해 용기 있게 헌신하겠다. 하지만 그 승리의 과실을 내가 가져가진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한 위원장의 선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특권 내려놓기를 직접 실천하고 쇄신 공천의 초석을 깔기 위함이라는 해석, 대선 패배 이후 쉬운 지역구를 찾아 국회에 입성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차별화를 두고 대선 가도를 걷기 위함, 총선 결과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 윤석열 정부 레임덕에 대한 우려로 보는 해석 등이 있습니다.
한 위원장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의회 진출 없이 정치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거란 우려 섞인 관측도 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 14대 대선에서 4위(약 150만 표)를 기록했고 꾸준히 인기가 있었지만 끝내 대선경쟁에서 완주도 하지 못한 박찬종의 사례가 있습니다.
신한국당은 15대 총선에서 지지도가 높은 이회창·박찬종을 각각 중앙선대위원장, 수도권 선대위의장으로 임명해 당 간판으로 내세웠는데요. 이회창은 전국구 1번으로 배정된 데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에게 ‘당내 일인자’ ‘측근 황우여 변호사 전국구 공천’ 등을 조건으로 내거는 등 세 확보를 위한 포석을 깔았습니다.
반면 박찬종은 “이번에 국회에 안 들어가도 좋으니 마지노선에, 그러니까 당선될지 안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경계선에 배치해달라. DJ처럼 뒷번호를 말하는 거다”라며 정치 생명을 걸고 선거에 임했습니다. 박찬종은 당선권 밖인 전국구 21번에 배치됩니다.
“신한국당 전국구 후보 공천의 두드러진 특징은 박찬종 수도권위원장을 21번에 배치하고 강용식 상황실장을 18번에 두는 등 배수진을 친 점이다. 이회창 의장을 1번에 배치하고 박 위원장을 당선가능권의 마지막 순번인 21번에 둔 것은 국민회의가 김대중 총재를 14번에 배치한 데 대한 대응카드이자 ‘이-박 카드’를 내세운 승부수로 해석된다.
박 위원장이 당선되기 위해서는 전체 유효 득표의 38.5%를 얻어야 가능하다. 3당 합당 구도 속에서 치른 지난 14대 총선에서 옛 민자당 득표율이 38.5%, 4당 체제였던 13대 총선 민정당 득표율이 33.9%였던 점을 감안할 때 쉽지 않은 목표다.”
- 1996년 3월 27일 자 <한겨레> ‘신한국 전국구 특징 박찬종 씨 배수진에 DJ에 맞불’
박찬종은 21번에 등록된 만큼 사활을 걸고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지만 낙선합니다. 당시 신한국당은 전국구 득표율 34.5%를 얻어 18번까지 당선됐습니다. 박찬종은 이후 1998년 재보궐, 16대·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고, 정계를 떠납니다.
여야간 대립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에서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 적 한 번쯤 있을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과거 정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학습효과 아닐까요. ‘김자영의 정치여행’은 현 정치 상황을 75년간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비춰 해석해 봤습니다. 다음주 금요일에 찾아 뵙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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