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2대 총선 앞두고 들어보는 다사다난 이야기
“중도표심 중요하지만 풍찬노숙 우파 잊지 말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국민의힘 민경욱 전 의원이 처음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을 때 일화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마주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다.
“평을 들어보니 민경욱 당신은 중도보수라고 하더라.”
김 비서실장이 말했다.
민 전 의원도 내심 끄덕였다. 정치적으로 어디에 속하지 않고 있었다. 중도보수가 맞겠다 싶었다.
간판 앵커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당시 그는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던 KBS 뉴스9시 메인 앵커였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KBS 18기 공채로 입사해 보도국 정치부와 사회부, 기동취재부, KBS 워싱턴 특파원을 거친 베테랑 기자 출신이다. 7시 뉴스와 뉴스8, 심야토론 진행을 두루 섭렵하며 간판 앵커로 성장했다. 서글서글한 얼굴과 시원한 목소리의 국민앵커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치권에서도 민 전 의원은 매력적인 영입 인사였다. 박 대통령을 보좌하던 김 비서실장이 찾아온 것도 스카우트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꿈은 KBS 사장이 되는 거였다.
“20년 넘게 있던 직장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좀 더 발전된 방향으로 공영방송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외부 인사들이 KBS 사장을 하는 행태였거든요. 어느 때가 되면 내부 사람들이 사장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MBC 사장이 사내에서 배출되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 2월 민 전 의원은 김 비서실장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고 청와대 대변인의 길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정치권으로 갔다기보다 행정 부문 등 또 다른 활동을 한다는 차원에서 청와대 공무원이 된 거죠(웃음).”
지난 1일 인천 연수구 사무실에서 만난 민 전 의원은 정치 시작점을 돌이키며 이같이 회상했다.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순간부터 ‘박근혜의 입’으로 불렸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낼 때는 원내대변인을 맡았다. 당명이 바뀌어서도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당의 입’으로 살았다.
“예전엔 중도보수였지만…”
그런 그가 21대 총선 이후부터는 아스팔트 보수들(문재인 정부 당시 보수 진영의 많은 이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조국 반대 집회에 참여하면서 이런 명칭이 생겨났다)을 대변해오고 있다.
처음 정계 입문할 때만 해도 중도보수 이미지로 어필되던 그였다. 대중의 인식을 떠나 지금은 스스로 어떤 보수로 규정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보수 우파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불리고 있다. 정통보수, 중도보수, 진보보수, 강경보수, 온건보수, 개혁보수 등으로 분류돼 거론되니 말이다.
“예전엔 중도보수였지만 민감한 문제를 다뤄오면서 지금은 약간 더 오른쪽으로 가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21대 총선을 거치면서 공명선거 운동에 전념했다. 국투본(4·15 부정선거 국민투쟁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사전선거와 전자개표, QR코드 폐지, 전 선거 수개표로 실시할 것 등을 촉구해왔다.
“건전한 우파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 풍찬노숙하면서 당을 지켜온 사람들이죠.”
스스로는 자신을 포함해 아스팔트 보수들을 건전한 보수로 규정하는 듯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앞으로 이분들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집토끼 챙기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겠지만, 요즘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외연확장에 한창 힘쓰는 모습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5‧18광주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홍준표‧유승민‧이준석 징계 사면 건의 등에 나서며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
“중도 표심 중요? 100% 동의“
자연스레 대화는 당을 둘러싼 내년 총선 전략 이야기로 넘어갔다. 좀 더 오른쪽에 있는 시각에서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 그만큼 중도표심이 중요하기에 통합과 외연확장에 나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도표심이 가장 중요한 캐스팅보트라는 데 동의하나요.
“중도표심이야 항상 중요하죠.”
당연지사라는 표정.
“100% 동의합니다. 다만 중도외연확장에 치중하다 집토끼를 전부 다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스팔트에서 열심히 싸워온 건전한 우파들을 당에서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황교안 전 대표와 자신 등을 챙겨야 한다는 말로 읽혔다.
- 인요한 위원장은 잘하고 있다고 보나요.
“메시지의 영향력, 파급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윤석열 대통령과 김기현 대표, 인 위원장 간 긴밀한 협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지만 여전히 낮아 보입니다. TK(대구경북) 지지율 우려론도 나왔는데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세밀히,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언론, 하나는 여론조사, 하나는 통계입니다. 작금의 여론조사는 어떤가요. 국민적 신뢰감이 별로 없습니다.”
-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크게 신뢰하지 않아요. 회복할 어떤 절차가 필요합니다.”
- 예를 들면요?
“여론조사기관에서 10년 동안 면접원이 직접 표시해둔 로우데이터를 보관해둬야 합니다. 10년 뒤에도 진위를 알 수가 있도록 하는 거죠. 윤 대통령을 싫다고 한 여론이 정말로 70%인지, 질문에 어떤 왜곡은 없는지 등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강효상 전 의원이 20대 국회시절 관련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는데 제가 응원해준 적이 있습니다.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합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동향에 대해서도 잘 간파해야 할 것이다. “이재명 대표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어서 우리로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사법리스크가 계속 따라다니고 있거든요. 내부의 파열음이 계속 벌어지겠지요.”
-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서도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준석이 탈당하면 3~4%는 떨어져 나갈 것이다,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며 청년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준석이 나가면 젊은이들이 이탈하고 만다는 식의 얘기는 좀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어쨌거나 제가 이준석이라면 어떻게든 이 당 안에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려는 기회를 보려고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선거, 1% 오류 나서도 안 돼”
- 당이 이기는 전략에 대해 종합해 제언한다면요.
“윤석열 대통령께서 지금까지 우파의 이념적 가치를 높이려고 애써준 것에 감사합니다. 내년 4월 10일까지 민생을 증진시킬 정책들을 활발하게 내놓는다면 많은 국민들이 환호할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내년 총선이 오기 전 부정선거 문제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강서구청 보궐선거만 해도 당일투표는 여야가 엇비슷한데 사전투표만 비이상적으로 민주당이 높은데다 더블스코어 이상 일률적으로 이겼습니다. 21대 총선부터 지난 5년간 공통사항입니다. 당일투표와 왜 이런 차이가 날까. 반드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규명해야 합니다. 강서구청 선거가 원래 질 선거였으니 놔둔다? 지금 구청장 한 사람이 당선되느냐 아니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본질은 선거제도가 훼손됐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단 1% 오류가 나서도 안 되는 것이 민주주의 선거입니다. <주간조선> 보도 결과 국민의 40%가 좌우할 것 없이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믿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습니다. 우파에서는 60% 이상이 있다고 봤습니다. 1~2%만이 우기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께서는 국민이 옳다고 했습니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의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정원에서도 선관위가 해킹 공격에 취약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내년 4월이 총선인 만큼 결코 한가하지 않습니다. 이후에 들여다 보면 때를 놓칠 수 있습니다. 4월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수사에 착수해 주기를 바랍니다.”
민 전 의원도 내년 총선 준비에 돌입하고 있다. 송도에 사무실도 개소했다. 지역구로 두고 있는 송도국제도시와 동촌동 등이 있는 연수을은 인천의 강남으로 불린다. 황우여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를 네 번이나 당선시킬만큼 국민의힘 표심이 강한 곳이다. 15대 총선을 기점으로 역대 선거상 국민의힘이 6번 이겼고 민주당 후보는 두 번에 그쳤다. 보수세가 센 지역인 만큼 ‘우리 동네 대변인’을 어필하며 출마했던 민 전 의원 또한 20대 총선 당시 여유롭게 당선된 바 있다.
하지만 21대 4‧15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개표 결과 39.5%를 얻었다. 범여권에서 전국적으로 180석을 가져갔을 때였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연수을도 상황이 많이 달라진 듯했다. 실제 체감은 어떨까. 그러자 민 전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에 숫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십여 분 넘게 통계적 문제를 설명해 나갔다.
“4‧15 총선 결과에 따르면 3등인 정의당 후보가 18.4%를 득표했는데 민주당 후보가 41.8%를 득표했습니다. 24년간 우파 동네인 인천연수을이 좌파 후보들에게 무려 60.23% 표를 몰아줬다는 것이 됩니다. 지역 언론인들도 정의당 후보가 18.4%를 득표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인천의 대표적인 우파 동네인 연수을이 전북(64%)과 전남(65%)처럼 된 것인데도 말입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숫자, 통계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세 후보의 사전투표에서 0.39라는 숫자가 공통적으로 발견됐습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허병기 인하대 명예교수는 조작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두 후보가 얻은 사전투표에서 일정 부분을 훔쳐갔다고 보면 비로소 정의당 후보가 어떻게 18.4%를 얻을 수 있는지가 이해되더라고요.”
이후 여백이 이상한 투표지, 배춧잎 투표지, 일장기 투표지 등이 발견되면서 민 전 의원은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인천연수을 당 경선? 자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심기일전하고 재도전하려는 만큼 각오가 남다를 듯했다.
“지역 유권자 중에서는 저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 관문이 있겠지만 지지해주는 분들의 기운을 받아 잘 헤쳐 나가겠습니다.”
당내 공천 경쟁 또한 관건이다. 이에 “경쟁을 한다면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고 답해온다.
평소 의리와 명분,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전 정부 시절 김지하 시인의 원색적 시구를 인용해 비판하다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내심 억울해하는 눈치도 엿보였다. 코로나 정국 때 사경을 헤맨 적도 있다. 구사일생한 것은 신앙 덕분이었다고 소회했다. 중도 이미지로부터 멀어진 것을 놓고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부정선거를 밝히라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덤덤한 답변이 돌아왔다. 호탕한 웃음 뒤로 내적 신념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요즘은 <다큐멘터리 <왜 더 카르텔>(감독 까뿌까)을 비롯해 허병기 교수와 함께 펴낸 책 <비밀지령 2-∞>을 열심히 홍보 중이다.
“이봉규TV 소개로 만났는데 그분이 확신을 하는 겁니다. 잘못된 선거였다고 말입니다. 허 교수께서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 3년 반 동안 육필로 다 쓴 책입니다.”
장장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저도 옆에서 듣고 공부하고 여쭤보고 그랬는데 이분의 주장은 그겁니다. 사전투표와 관외사전투표, 당일투표 3개가 거의 비슷해야 한다. 이것은 인류가 이뤄놓은 공리다. 4‧15총선은 현격하게 잘못돼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손을 거쳐 조작된 것이다. 이런 가정 하에 실질적으로 5000번도 넘는 숱한 시뮬레이션을 돌려 대입해 본 결과 가정이 맞았다는 것이지요.”
시큰둥하니 고개를 갸웃하자 이번엔 도발이 던져졌다. “읽어보고 정말로 우리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본다면 당당하게 반박 도전을 신청하기 바랍니다.” 그 말에 섣불리 답은 못했다. 일단 읽어나 봐야겠다. 그나저나 연수을에 재도전하는 그의 굳세게 버텨온 뚝심은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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