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號 ‘증권사 우선’→임종룡號 ‘매물 우선?’
상상인저축銀, 상반기 적자…인수땐 정상화 과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우리금융그룹이 상상인저축은행 인수 검토를 공식화한 가운데 손태승 전 회장때부터 이어진 증권사 최우선 M&A 전략에 변화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임종룡 현 회장 체제에서 우리금융이 저축은행 확장에 먼저 나서면서 손 전 회장과는 사뭇 다른 M&A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불거져 시장에 급매물로 나온 상상인계열저축은행 2곳중 상상인저축은행에 대한 인수를 검토중이다. 이같은 사실은 우리금융 3분기 컨퍼런스콜과 공시를 통해 재차 확인됐다.
우리금융그룹과 상상인그룹은 지난 27일 공시를 통해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매각)와 관련해 검토중에 있으나 공시 시점 현재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있었던 컨퍼런스콜 Q&A과정에서 김건호 우리금융 미래사업추진부문 상무가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검토중인 것은이 맞다’고 답변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인수 추진으로 확대 해석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의 공식입장은 ‘상상인저축은행 인수 검토’가 맞는 셈이다. 이는 비은행부문 강화를 위한 포트폴리오 확대로 읽힌다.
앞서 우리금융은 2019년 우리은행에서 우리금융지주로 지주사 전환한 이후 비은행 확대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이 같은 기조는 손 전 회장에 이어 임 회장 체제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우리금융 이성욱 CFO(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도 최근 컨콜에서 “우리금융은 비은행부문 경쟁력 강화에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그룹간 시너지 확대와 신규사업 발굴 등을 통해 핵심수수료 중심으로 수익 창출력을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저축은행 인수가 현실화 될 경우 핵심수수료 중심 수익 창출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저축은행은 은행업과 마찬가지로 이자수익이 중심이다. 비은행부문으로 분류되지만 비이자이익부문은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보험사와 증권사가 부재한 우리금융은 비은행부문 포트폴리오가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빈약해 수익성 개선을 위해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가 그룹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실제로 우리금융의 비이자이익 부문 실적을 보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올 3분기 누적 비이자수익은 89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환율과 금리 변동성 확대에 따른 자본시장 관련 이익이 줄어든 영향이다. 핵심수수료수익만 놓고 보면 매분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보험사와 증권사라는 주요 비은행부문이 없어 비이자이익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의 저축은행 인수 검토에 대해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냐는 의문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번 3분기 컨콜에서도 사업전략 변화를 묻는 질의가 나왔다.
이에 대해 김 상무는 “M&A 전략에 특별한 변동은 없다”며 “우리금융은 저축은행, 증권, 보험사 등 적당한 매물이 있게 되면 인수를 할 계획”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열린 1분기 컨콜에서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앞서 임종룡 회장 취임 후 열린 첫 컨콜에서 주요 질문 중 하나는 역시 M&A 전략 변화 여부였다.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 당시 우리금융 관계자는 “지금까지 우리금융이 밝혔던 증권사를 우선하고 다음에 보험사를 검토하는 기본적인 M&A 정책은 큰 변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그룹 시너지에 조금 더 유리하고 균형 잡힌 수익 구조를 보유한 중형급 이상 증권사를 선호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컨콜 답변만 비교해보면 ‘증권사 우선’에서 ‘매물 우선’으로 증권사 인수에 대한 열의에서 온도차가 느껴진다.
실제로 우리금융이 저축은행 인수를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급하게 지분 매각에 나선 상상인저축은행의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김 상무도 이번 컨콜에서 “금융위에서 대주주 관련 적격성에 문제가 있는 저축은행은 인수 합병이 가능하다는 개선 명령이 있어 이를 고려했다”며 상상인저축은행 인수 검토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임종룡 회장 체제에서 우리금융이 저축은행 인수를 저울추에 올린 가운데, 실제 인수가 이뤄질 경우 증권사 인수 시점은 더 늦춰질 전망이다.
현재 저축은행 업계는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상상인저축은행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상상인그룹 공시에 따르면 수도권(경기도)에 기반을 둔 상상인저축은행의 상반기 영업규모는 총자산 3조 2992억원, 총예수금 2조 8905억원, 총대출금 2조 7360억원에 달한다. 다만, 누적 영업손실 315억원, 당기순손실 2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로 전환된 상황이다.
금융사 최대 과제가 리스크 관리와 건전성 강화인 상황에서 우리금융이 상상인저축은행을 인수하게 된다면 정상화가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한다. 이에 따라 증권사 인수 시점은 저축은행 정상화 이후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우리금융이 저축은행 인수 검토에 들어간 배경에는 마땅한 증권사 매물이 없는 시장 상황도 일정부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우리금융은 지난해 6월 SK증권 인수설이 불거졌지만, 당사자인 SK증권은 최대주주인 제이앤더블유 비아이지 유한회사에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공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손태승 체제에서 사실상 이렇다할 M&A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 공을 넘겨받은 임종룡 체제 우리금융이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 성과를 내고자 급매물로 나온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저울질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금융권 안팎에서 나온다. 시기상으로도 우리금융의 저축은행 인수 검토 착수는 재빠르게 이뤄졌다.
상상인그룹이 금융위로부터 저축은행 지분 매각명령 조치통보를 받았다고 공시한 건 지난 5일이고, 우리금융의 상상인저축은행 인수설이 처음으로 불거진 건 지난 17일이다. 기존 M&A 전략이 증권사와 보험사를 우선에 둔 상황에서 불과 10여일만에 저축은행 인수 검토에 들어간 셈이다.
한편, 우리금융은 상상인저축은행 인수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확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할 예정이다.
좌우명 : 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