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내 친명계, ‘위장 탈당’ 민형배 의원 복당 논의
1992년 민자당 의원 빼내기·2000년 민주당 의원 꿔주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 23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입법 과정에서 ‘위장탈당’을 통해 통과된 점 등이 위법하지만 법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소식과 함께 민주당 친명계 내에선 무소속 민형배 의원의 복당을 승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정권교체가 확정되고 한 달이 흐른 지난해 4월, 민주당은 검찰 수사권 조정 내용을 담은 일명 검수완박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합니다. 이때 민형배 의원이 법안의 빠른 처리를 위해 탈당을 감행해 논란이 됩니다.
법률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상정 전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 전체회의 등을 거쳐야 하는데요. 국회법 57조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으면 소위원회 심사를 거친 것으로 간주하고 상임위 전체 회의에 곧장 상정할 수 있습니다. 안건조정위는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무소속 1명이 참여하는 구조였습니다.
민주당은 탈당한 민형배 의원을 ‘무소속’ 안건조정위원으로 참여시킴으로써 4대 2로 법사위를 통과하려는 구상이었던 거죠. 민 의원의 이러한 행보는 ‘꼼수 탈당’, ‘위장 탈당’이라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의 복당 논의가 이뤄져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헌재 판결이 나온 뒤인 지난 30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민형배 의원의 논리적이고 선명한 역할에 대해서 우리들이 평가를 높게 한다”며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민형배 복당시켜야 한다는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권자는 후보 개개인의 당적을 고려해 투표합니다. 당마다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선택하는 것이죠. 그 때문에 본인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적을 쉽게 바꾸는 행위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낮출 위험과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표현한 민심을 져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과거 정치권이 정국 운영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의원 꿔주기’, ‘의원 빼오기’ 등 행태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사례가 있습니다. <시사오늘>은 1992년 반수 이상 의석을 달성하지 못해 의원 빼내기를 시도했던 민자당과 2000년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해 의원을 꿔준 새천년민주당의 경우를 31일 살펴봤습니다.
14대 총선 이후 민자당, 무소속·야당 의원 영입 추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은 과반에서 한 석 모자란 149석을 획득했습니다. 김대중의 민주당과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은 차례로 97석(32.44%), 31석(10.36%)을 얻었습니다.
민자당은 총선 직후 경북 점촌·문경과 부산 사하, 경북 안동에서 무소속으로 각각 당선된 이승무, 서석재, 김길홍의 입당으로 의석 과반을 넘겼습니다. 논란이 된 것은 민자당이 총선 과정에서부터 입당을 약속한 후보들 외에, 무소속 또는 야당 의원을 접촉해 영입작업을 추진한 것이었는데요. 언론 보도에 당시 상황이 나와 있습니다.
국민당의 14대 당선자를 상대로 한 김영삼 민자당 대표 측의 계속되는 영입 공세로 국민당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김 대표 측은 이미 국민당의 조윤형 최고위원과 접촉, 입당을 권유한 데 이어 양순직 당고문 및 박희부(연기), 김찬우(청송·영덕), 송영진(당진), 정태영(금산), 김범명(논산), 원광호(원주), 윤항렬(광명), 이호정(수원 장안) 당선자 등과도 물밑 접촉을 통해 본격적인 영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 대표 측은 심지어 국민당의 김효영 사무총장과 윤영탁 정책위의장 등 고위당직자에게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당의 장래에 대한 우려의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 1992년 5월 28일 자 <동아일보> ‘당선자 빼가기 거센 외풍…국민당 집안단속 초비상’
무소속의 서석재, 박헌기, 하순봉, 정필근 의원 등 4명이 2일 오전 민자당에 입당했다. 이로써 민자당 의석은 이미 입당 절차를 마친 김길홍, 이승무, 최돈웅 의원을 포함해 모두 156석이 됐다.
민자당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들 무소속 입당자 7명에 대한 환영식을 가졌다.
- 1992년 6월 2일 <동아일보> ‘민자 무소속 4명 입당 156석으로’
14대 국회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민자당이 선거로 과반 미달이라는 결과가 나타났음에도 인위적으로 수를 조정하고, 다수의 힘으로 국회를 운영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부 제기됐습니다.
새천년민주당, 자민련 원내교섭단체 만드려 ‘의원 4명 꿔주기’
2000년 총선에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42.12%)을 얻어 자민련과 합해도 한나라당(133석, 48.71%) 의석수를 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은 17석을 얻어 20석 이상이어야 하는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여당은 ‘DJP 공조’를 복원하고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어 국회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민주당은 자민련과 힘을 합해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20석 이상’에서 ‘10석 이상’으로 변경하는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지만 결국 무산됩니다. 그리고 나온 것이 민주당 의원을 꿔주어 자민련이 20명 이상 의원을 확보토록 하는 방안이었습니다.
민주당 배기선(裵基善), 송영진(宋榮珍), 송석찬(宋錫贊) 의원 3명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을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키로 했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민주당 탈당과 자민련 입당은 현재 17명인 자민련 소속 의원을 20명으로 늘려 국회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도와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 복원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향후 정국에 큰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 2000년 12월 30일 자 <연합뉴스> ‘여의원 3명 자민련 전격 입당-1’
강창희 당시 자민련 부총재가 민주당 의원 3명의 이적 소식에 “정도를 벗어난 이런 교섭단체에는 찬성할 수 없다”며 반발하자 자민련은 강 의원을 제명 조처 합니다. 이후 민주당에서 추가로 보내온 장재식 의원이 자민련에 입당함으로써 교섭단체 요건이 채워집니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정권 초 연립정부를 약속했지만 이후 의원 내각제 개헌, 남북관계 문제 등에서 이견으로 충돌하며 멀어지다가,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자민련이 찬성표를 던지며 두 당의 공조도 막을 내립니다.
물론 과거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지명하는 등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됐던 군사 독재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를 이룬 뒤엔 민주주의를 퇴행시킨다는 비판을 받은 의원 꿔주기, 위성정당 등 꼼수 행위는 모두 크게 지적받아왔습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3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민형배 의원 본인은 위장 탈당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국민 눈높이에서 받아들여질 지 모르겠다. 법은 법대로 지켰다지만 이러한 논란을 일으킨 것은 국회 선진화법 자체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것으로 본다”고 지적하며 “정치권이 이런 비판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과거 DJP 공조도 의원 꿔주기를 해서 논란이 됐다”고 짚었습니다.
여야간 대립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에서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 적 한 번쯤 있을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과거 정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학습효과 아닐까요. ‘김자영의 정치여행’은 현 정치 상황을 75년 간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비춰 해석해봤습니다. <시사오늘>은 ‘위장 탈당’, ‘의원 꿔주기’ 등 정치권이 꼼수로 비판받은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 찾아뵙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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