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합당하지 않은 일을 변화시키는 것”
“지는 선거에서도 좋은 이미지 남길 줄 알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그는 흔히 말하는 ‘흙수저’였다. 점심시간마다 집으로 향했다. 집이 가난해 급식 먹을 돈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서울대 사범대 불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는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0년간 공직 생활을 하다가 다시 사법시험에 도전, 판사로 임용됐다. 2020년 사표를 던지고 정치권에 뛰어들어 2022년 6월 1일 재보궐선거를 통해 금배지를 달았다.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의 이력은 화려하다. 흙수저 출신으로 서울대에 입학해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을 모두 패스한 뒤 국회의원이 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와!’라는 감탄사 못지않게 ‘왜?’라는 의문도 따라붙는다.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을까. 왜 행정고시에 합격하고도 사법시험에 도전했을까. 왜 판사라는 자리를 던지고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대체 그를 움직이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시사오늘>이 3월 14일 ‘내 삶을 바꾸는 것들’을 주제로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선 그를 찾아간 이유였다.
“사람과 불안, 사랑이 삶의 원동력”
강연 시작과 동시에 장 의원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내놨다. 그가 밝힌 답은 ‘사람’, ‘불안’, ‘사랑’이었다.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 보면, 아침에 눈을 뜨게 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다짐하게 한 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일어나서 공부를 하고, 제가 조는 동안에도 계속 책을 보고 있는 1등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사법시험을 본 것도 그래서입니다. 제 전공이 프랑스어다 보니까, 고민을 하다가 행정고시를 쳤습니다. 그렇게 공직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저하고 같이 서울대 시험을 쳤다가 떨어져서 군대에 갔던 그 1등 친구가 결국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에 붙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원래도 제 꿈은 판사였지만, 매년 사법시험에서 몇 백 명의 합격자가 나오는 건 저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1등 친구가 판사가 됐다고 하니, 더 이상 저와 무관한 일이 아니게 되더군요. 그래서 사표를 쓰고 나와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경쟁했던 친구들, 그 좋은 친구들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겁니다.
또 한 가지는 불안입니다. 요즘 저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요. ‘내 지위가 어떻게 될까, 내 삶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그 마음이 사람들의 삶을 조금씩 바꿔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과도한 불안은 사람을 망가지게 하지만, 적절한 불안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이성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 존경을 받고 싶다’라고 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제가 정치를 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정치인이 있었지, 그래 그 정치인은 이런 사람이었지’ 하면서 칭찬받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마음. 제가 정치를 끝낼 때쯤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그런 정치인이 한 명 있었다’고 기억해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저를 나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올바르지 않은 관념 제거하는 것”
자신의 목표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장 의원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정치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여기고 살아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졌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왕이 있고 계급이 있고 노예가 있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입고 있는 옷처럼 편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뿐, 조금만 고민해보면 합당하지 않은 제도와 사회현상이 있을 겁니다.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돌이켜 보면 ‘과연 이래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일. 정치는 거기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이처럼 정치는 특정한 사람들이 만든 특정한 관념을 깨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즉, 정치는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면밀히 분석해서 특정한 사람들이 만든 특정한 관념 중 올바르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 행위입니다.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일 수도 있지만, 정치인이 세심하게 두드려보고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걸 찾아서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 해결하는 것, 그게 정치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은 시대정신 읽을 줄 알아야”
이어서 그는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주장한 정치인의 세 가지 덕목을 설명하며 현 정치권의 문제점을 짚었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들고 있습니다. 제가 19대 국회 말에서 20대 국회 초에 2년간 파견 판사로 있었는데요. 그때는 국회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법사위에서 여당이 필요로 하는 법안 3개가 있으면 야당과 협상을 합니다. ‘이 법안 3개랑 야당이 필요로 하는 법안 3개를 같이 통과시키자. 그런데 이대로는 문제가 있으니까 이렇게 이렇게 수정해서 하자’는 식입니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반대하는 의원이 있으면 끝까지 설득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법사위가 거의 만장일치제로 운영이 됐습니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답답한 것 같지만, 오히려 그때 법안 통과율이 더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서로 토론하고 협상하고 양보하던 국회의 기능이 다 사라졌습니다. 때문에 요즘 국회의원으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가. 예전보다 훨씬 시끄럽고 뜨거워 보이는데, 정작 법안은 통과되지 않고 우리 삶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책임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정치인들은 명분이 없으면 자리에서 내려올 줄 알았습니다. 법적 책임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일을 했을 때 물러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 국회에 그런 정치인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균형감각입니다. 정치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균형감각이라는 건 늘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운데가 어딘지 알 수도 없습니다. 한쪽은 이쪽에서 이쪽 이야기를 하고, 한쪽은 저쪽에서 저쪽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양극단이 아닌 어느 한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는 게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요즘 우리 정치가 그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여기에 더해 정치인은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농담으로 정치는 ‘운칠복삼’이라고 얘기합니다. 운칠복삼을 다시 말하면 시대정신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세상이 부르지 않으면, 즉 시대정신에 맞지 않으면 당선되지 않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일정 정도 이상의 조건을 갖춘 사람 중에서 그 시대의 정신이 부르는 사람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는 겁니다. 앞으로 4년 후 어떤 시대정신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될 것인지 고민하고 거기 따라가지 못하면 정치인으로서의 미래는 없습니다. 늘 시대정신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미리 예측하고 앞서가려 해야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생명력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좋은 정치인 되려면 대통령 꿈꾸라”
끝으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를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님께서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통령을 꿈꾸라.’ 무슨 뜻일까요. 첫 번째는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반드시 이루겠다고 하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정치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결정 하나하나를 할 때 내 자신을 돌아보고, 장차 걸림돌이 될 일은 조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정치에는 여러 번 낙선했지만 한 번도 선거에서 지지 않은 정치인이 있습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선거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꿈을 꾸는 정치인은 지는 선거에서도 ‘남기는 선거’를 합니다. 항상 유권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고 선거를 치릅니다. 저는 이게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