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도 그들을 위해 싸웠다"
"MZ 노조 탄생도 노동운동 흐름 바꿀 신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1970년에도 근로기준법은 있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계천 일대 평화시장의 나이 어린 근로자들을 위해 싸웠다. 그로부터 50여 년, 반세기가 흐른 뒤에도 여전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있다. 영세 업체 등에서 일하는 1500만 가량의 노동자들이다.
정부가 대기업 근로자와 이들 영세 업체 근로자들 간에 너무 벌어져 있는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상생(相生) 임금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위원회로는 아무래도 노동자들의 온전한 바람을 담은 방안이 마련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전태일 재단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한석호 씨가 이 위원회에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민주노총 조직실장도 지냈었다.
민주노총은 그에게 위원회에서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그 위원회가 임금을 하향평준화하려는 반노동기구라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절반도 못 되는 임금을 받는 1500만 명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대기업 근로자들의 희생이 다소간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그 작업 자체를 부인하는 건 노조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의 울타리 밖에 있는 근로자들을 위해 투쟁했던 ‘전태일 정신’에도 반하는 일이다.
MZ 노조의 발족을 응원하며
MZ 세대가 노동운동의 전면에 등장했다. 20대와 30대 5200여 명이 속한 8개 노동조합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에서 발대식을 했다. LG전자 서울교통공사 등의 20대 30대 사무직과 기술직이 주축이 됐다.
“정치 투쟁은 없다”라며 순수한 노조 활동을 지향한단다. 유준환(32) 의장은 “사업장 중심의 노조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운동의 정석을 추구하겠다며 거대 노조와는 결이 다른 점을 보여 출범과 동시에 노동계 안팎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불법을 불사하는 투쟁·쟁의 대신 평화·합법을, 정치적 색깔 대신 권익 보호와 연대를 앞세운다. 공정한 평가·보상, 대·중소기업이 상생하는 노동시장 조성 등이 목표란다.
기존 노조도 이 젊은 노조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 일단 환영한다는 공식 반응을 내보냈다. 단지 정부의 노동 개악의 명분이 되거나 양대 노총을 비난하는 도구로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려스러운 부분일지는 몰라도 젊은 노조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언급이겠다.
그러나 MZ 노조는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협의회 소속 노조가 대부분 직장 내 소수 노조이며 교섭권이 없다. 이 노조의 최우선적인 작업은 그래서 소수 노조의 활동을 제한하는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를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 이 협의회가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는 건 노동계 안팎에서 변화의 바람을 인정하고 희망하는 기류가 보이는 점이다.
각 직장의 MZ 세대로부터 지지를 얻을 뿐만 아니라 거대 노총의 변화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흐름
정부는 대기업 노조의 횡포를 겨냥, 공정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며 노동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른바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의 하나다. 당연히 노동개혁은 거대 노총과 건설노조 등을 겨냥하고 있다. 정부의 노조 탄압이라며 맞서기에 앞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은 자정 작업부터 서둘러야 할 때다. 이제 그런 시점이 됐다.
1980년대 말 민주화 바람과 함께 30여 년간 급속하게 노조가 커오면서 자연스럽게 노조의 일탈행위도 늘어났다. 가장 큰 일탈행위가 특정인 석방 운동, 주한미군 철수 등 정치행위다. 정치결사체인지 노동단체인지 헷갈릴 때도 많았고 최근엔 사직당국에 의해 노조 간부의 간첩단 연루 사례까지 밝혀졌다. 노조 회계 불투명성 등을 포함한 이런 일탈 행위들이 바로 MZ 노조가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지난달 말엔 서울경찰청, 인천경찰청 등이 건설노조 간부들을 조합원 채용 강요, 노조 전임비 명목의 금품 요구 등의 혐의로 잇따라 구속했다.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이 다소 과격하게 ‘건폭(建暴)’ 용어를 쓰게 된 이유를 뒤늦게나마 알 수 있게 한다. 정부가 노조를 탄압한다며 노조가 벌인 도심 대규모 시위도 설득력을 잃게 됐다.
거대 노조의 일탈행위와 이상비대 현상은 사실 과거 정부의 노조 억압에도 책임이 크다. 전태일 이전 세대인 자유당, 3공화국 때의 ‘노조 빨갱이 몰이’ 시대는 차치하고서라도 정부 당국은 이후에 노동활동을 심하게 억압해왔었다.
1950년대 이후 개신교가 중심이 된 ‘도시산업선교회’라는 단체가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문제와 빈민 문제를 들여다보고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수도권에서 활동했다. ‘도산’이란 약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태일 이후에도 도산에 대한 정부의 억압 시책은 계속돼왔다. 심지어 당시의 노동청과 산별 노조 등을 중심으로 도산을 취재하던 몇몇 노동담당 기자들에게까지 당국의 사찰이 이어져 노동계의 불만이 쌓여올 수밖에 없었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벌어진 그런 노동 탄압의 반작용으로 1980년대 말 이후 노조의 활동이 극한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노조의 정치화가 가속하면서 30여 년 세월이 흘러왔고 노조 비대화에 지친 민심에 또 다른 반작용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MZ 노조의 순수한 노동운동 선언에 민심이 기대를 거는 이유다.
“강성 기득권 노조의 불법행위로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강성 노조의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 ”노조 간부 자녀가 채용되고, 남은 자리로 채용 장사하는 불법행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MZ 세대를 노동 개혁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잇따른 강성 발언이 여론의 비판 대신 지지를 얻는 상황도 노동운동 흐름의 변화를 읽게 해주는 한 사례다. 그런 발언의 저변에는, 대기업 근로자와 영세기업 근로자 간의 심한 임금 격차가 개인 간 능력보다는 ‘노조 능력’에 기인했다는 세간의 인식이 깔려있기도 하다.
전태일이 희생자, 노조는 수혜자였다
노동운동의 희생자는 전태일을 포함한 당시 엄혹한 시대의 노동운동가들이었다. 이후의 노조, 특히 요즘의 노조는 수혜자다. 그것도 과도한 정도의 수혜다. 전태일 등을 들먹이며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전태일이 깨끗하고 가슴 따뜻한 노동운동가로 추앙받는 건 그가 분신자살해서가 아니다. 동료 여성 노동자가 폐렴에 걸린 상태에서 해고되자 그녀를 도우려다가 자신도 해고되는 일을 당했다. 이후에 좋은 대우를 받던 재단사가 되었으나 그에 안주하지 않고 동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점 등이 평가받았다. 노동운동가로서의 순수한 열정이다. 제 자식을 제 자리에 취직시키려는 요즘의 일부 노조 간부와는 진정성과 지향점이 크게 달랐다.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전태일의 유지는 그의 어머니가 아니라 노조가 받들어야 했다. 받들기는커녕 전태일이 구하고자 했던 영세 근로자들을 결과적으로 더 못 살게 하는 일에 가담하는 짓을 벌여온 게 노조의 민낯이다.
거듭 말하지만, 세월과 함께 세대도 바뀌어 노동운동의 흐름도 바뀔 때가 됐다. 강성노조는 이제 MZ 노조에 많은 자리를 내주고, 대기업 근로자들은 영세기업 근로자들에게 일정 몫을 양보해야 할 때가 됐다.
김형석(金亨錫)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