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재조명 필요”
“정치인들, YS의 흐름 읽는 눈 배웠으면”
“국민 공천제, 양극화 부추기는 측면 있어”
“진영에 얽매인 정치, 한국 사회 병들게 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가나의 혼인잔치(The Wedding at Cana)’라는 작품이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베네치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가 그린 것으로,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역동성이 느껴지는 명작이다. 크기도 높이 677cm, 너비 994cm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크다.
하지만 루브르를 방문한 대다수 사람들은 이 그림을 기억하지 못한다. 바로 맞은편에 그 유명한 ‘모나리자(Mona Lisa)’가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에 관심을 빼앗긴 관광객들은 등 뒤에 걸린 거대한 걸작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래서 가나의 혼인잔치는 ‘루브르에서 가장 슬픈 작품’이라고도 불린다.
혹자는 ‘대통령 김영삼’의 성과를 가나의 혼인잔치에 비유한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에게 필요한 개혁 정책을 실시해 선진국 진입의 토대를 닦은 지도자임에도, ‘민주화투사 김영삼’의 화려한 업적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가 김영삼 전 대통령(YS)에게 천착하는 것도 그래서다.
“민주화투사로서의 이미지가 워낙 잘 알려져서 그렇지, YS만큼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대통령도 드뭅니다. 대통령이 된 뒤 YS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는 정책을 밀어붙였어요. 그럼에도 YS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통령으로서 YS가 남긴 성과를 재조명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YS의 국정 철학이 1964년 4개월간의 세계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동수 대표가 문민정부 탄생 30주년을 맞아 <YS 세계를 보다>를 펴낸 까닭이다. 그렇다면 YS가 120일간의 여행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시사오늘>은 2월 16일 김영삼도서관에서 이동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YS 국정철학, 30년 전부터 준비된 것”
이동수 대표가 쓴 <YS 세계를 보다>는 YS가 1964년 발행한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의 표현과 문장을 다듬고, 편저자의 해설을 담아 새로 낸 책이다. 1988년생인 이동수 대표가 60여 년 전의 여행기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부터 물었다.
-문민정부 탄생 30주년을 맞아 <YS 세계를 보다>를 펴냈는데, 이유가 뭔가.
“저는 YS가 우리나라 대통령 중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이고, 이분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흥미를 갖고 YS라는 인물을 접하기 위해서는 어떤 콘텐츠가 필요할까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1964년에 YS가 낸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가 떠오르더라.
이 책이 여행기적 요소들도 있고, 또 지금과 그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서 많은 분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YS의 철학과 가치관 같은 것들이 잘 녹아 있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었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를 통해 뭘 느꼈는지 궁금하다.
“YS가 생각보다 더 깨어 있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64년 4개월 동안 세계를 둘러보면서 본인이 얻은 결론이 ‘이념의 시대는 끝났고 실리가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었는데, 지금이야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떠올려 보면 YS가 가진 통찰력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알 수 있다.
1964년은 이제 막 미국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지고, 린든 존슨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본격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게 된 시기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독재를 강화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냉전의 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시기에 YS는 이념의 시대가 끝났고 실리가 주도하는 시대가 온다는 걸 예측한 거다. YS가 대통령으로서 쌓은 업적의 바탕에는 이런 통찰력이 있었다고 본다.”
쿠바 미사일 위기란 1962년 소련이 미국 바로 아래에 위치한 쿠바에 핵탄도미사일을 배치하려 하자, 미국이 이에 반발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일을 말한다. 또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4년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베트남전 참전을 결정했다. YS는 이처럼 이념 전쟁이 극으로 치닫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 속에서 ‘이념 시대의 종말’을 예견한 것으로 알려진다.
-어떤 측면에서 YS의 국정 철학에 당시 경험이 반영됐다고 보나.
“대통령 YS는 이념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사회의 부조리를 걷어낸 개혁가였다. 그 시대에 한국 사회가 필요로 했던 정책들을 추진했고, 우리 편에 손해가 될 수 있는 사안도 외면하지 않았다. 정세를 읽지 못하고 이념이라는 프레임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정치인이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왔고, 그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념을 넘어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책에 언급된 구체적 사례가 있다면.
“가장 대표적인 게 공직자 재산공개다. YS가 첫 국무회의 자리에서 본인 재산을 공개하며 ‘공직자들도 다 재산 공개하라’고 지시해 시작된 건데, 당시 사람들은 이걸 깜짝쇼니 포퓰리즘 정치니 하면서 비판했다.
하지만 이건 오래 전부터 준비된 거였다. 1964년 YS가 미국에 갔을 때, 당시 진행 중이었던 미국 대선에서 현직 린든 존슨 대통령의 재산 문제가 비판거리가 됐다. 재산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부정 축재 논란이 일었던 거다. 그때 린든 존슨 대통령이 최초로 공직자 재산 공개를 하면서 ‘나는 어떻게 돈을 벌었고 내 재산이 얼마다’라는 걸 발표했다. 이때 YS가 ‘깨끗한 정치에 대한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구나’ 느꼈던 것 같다. 공직자 재산공개는 어떻게 보면 30년 정도 된 오랜 구상이었던 셈이다.
국정 철학과 관련된 건 아니지만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당시 YS가 미국에 갔을 때 보니까 미국 정치인들은 차를 타면 문을 잠그는 습관이 있더란다. 그걸 보고 YS도 ‘나도 항상 저런 습관을 들여야겠다’ 생각하고 실천했는데,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초산 테러 사건이 났다.
그 사건 때 테러범이 차문을 열고 초산을 뿌리려 했는데 YS가 차문을 잠가 둔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YS가 미국에 가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바뀌었을 거다.”
1969년 6월,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반대하던 YS는 상도동 자택 앞 골목길에서 이른바 ‘초산테러’를 당한다. 테러를 가한 괴한 세 명은 YS가 탄 차문을 열려다가 실패하자 차에 질산을 든 유리병을 던졌다. 이로 인해 차 오른쪽 뒷문 철판이 녹아내렸지만, 문을 잠가 둔 YS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의 정치인들이 이 책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을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배웠으면 좋겠다. YS는 세계적으로 냉전이 고조되고 이념 전쟁이 극화되던 시기에 ‘미국과 유럽을 가봤더니 결국 경제력이 중요하지 이념은 아무것도 아니더라’라는 걸 깨달았다.
저는 리더가 이렇게 흐름을 읽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지 않나. 병자호란 때 이미 명(明)은 기울어가는 나라였고 청(淸)은 사실상의 패권국가로 떠올랐는데, 그 흐름을 못 읽으니 백성들에게 피해가 갔다. 그런 점에서 YS의 통찰력을 배우는 정치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진영 목소리만 대변하는 정치인, 사회 병들게 해”
이동수 대표는 자신을 ‘중도진보’라고 말한다. 양극화된 우리 정치의 이념적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면, YS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쪽에 가까운 인사다. 그럼에도 그가 YS에게 집중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스스로 중도진보 성향을 가졌다고 소개하는데, YS에 천착하는 이유가 뭔가.
“저는 YS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한다. 화끈하게 용단을 내리는 그분들의 캐릭터 자체가 저와 잘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이미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진보진영에서 존경하는 대통령을 꼽으면 두 손가락 안에 꼽히고, 대한민국 전체로 봐도 호평을 받고 있다. 반면 YS는 한국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고 큰 영향을 끼쳤음에도 너무 평가가 박하다고 생각한다.”
-YS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제일 큰 이유는 역시 IMF 외환위기를 제대로 막지 못한 것 아니겠나. 다만 저는 이 책임을 오롯이 YS에게 물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즘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때 부동산값이 두 배씩 올라서 비판을 받았는데,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집값이 크게 뛴 영향이 컸다. IMF 외환위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당시 아시아 전반에 외환위기가 왔고 우리나라도 그 흐름에 타격을 입은 건데, 이걸 전적으로 YS 탓이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대통령이 얼마나 잘 대응을 했는가 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IMF 외환위기 하나로 공이 너무 많이 묻혀버린 감이 있다.
또 하나는 YS가 진영을 초월한 정치를 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회 청산은 말할 것도 없고, 공직자 재산공개나 금융실명제도 보수정당의 주요 지지 기반인 기업과 고소득층에게 불리한 이슈였다.
그럼에도 YS는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과감하게 진행시켰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지지 기반을 무너뜨린 모양새가 됐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업적이 아이러니하게도 저평가의 원인이 된 거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로 진영논리가 강해진 이유는 뭘까.
“분권의 역설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당이 걸출한 리더를 중심으로 뭉쳐 있었고, 리더의 권한도 워낙 컸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상대 당과 협상도 타협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총재의 권한이 깨지지 않았나. 이를 기점으로 완전한 민주화가 되면 좋은데, 총재의 약화된 권한을 그 아래 스피커들이 갖게 됐다. 중세 시대 왕의 권한이 약화되면서 지방 봉건 영주들의 권한이 강화된 것과 비슷하다.
이러면 국민 전체를 보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영역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게 된다. 이렇게 팬덤의 인기를 얻기 위한 목소리를 내다 보니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 같다. 진보진영의 김어준 씨, 보수진영의 가로세로연구소가 그런 기능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제도의 문제도 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주장이 정당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기는 면도 있다. 당내 경선에는 일반인들이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강성 팬덤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하게 되고,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지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제도가 발전한 것 같지만 현실은 퇴보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YS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진영을 초월하는 정치인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좀 쉽게 표현하면 ‘장사가 안 되니까’ 그런 게 아닐까. YS 때만 해도 국민적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잘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 전체 의견과 관계없이 강력한 팬덤만 갖고 있으면 재선도 3선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면 팬덤에 영합하는 게 자기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과거 사례를 보면서 정치인들이 느낀 점도 있는 것 같다. YS는 물론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가를 위해서라면 자기 신념과 배치되는 일을 추진하곤 했다. 한미 FTA 체결, 이라크전 파병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가 어땠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서 마지막에는 쓸쓸하게 퇴장했다. 그런 사례를 보면서 정치인들이 ‘오래 정치를 하려면 우리 편의 요구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면 안 되겠구나’ 느끼게 된 것 아닌가 싶다.”
-‘다시 YS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공직자 재산공개나 금융실명제는 YS의 지지층에 불리한 제도였다. 또 고용보험은 전통적으로 진보 의제였다. 그럼에도 YS는 국민 전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추진했다. 그런데 지금 정치인들은 표 떨어질까 봐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냥 김어준의 뉴스공장, 가로세로연구소 같은 데 나가서 자기편이 하는 주장을 더 세게 내지르는 게 전부다.
저는 정치인들의 이런 행위들이 한국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고 본다.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들에게 필요한 일을 과감하게 추진한 YS의 모습을 배워야 한다.”
-‘YS를 좋아하는 중도진보’ 자체도 진영을 초월한 상징성이 있어 보이는데, 앞으로 정치를 할 계획이 있나.
“지금 당장 정치를 할 생각은 없다. 기회가 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를 하더라도 명확한 목적의식 없이 무작정 뛰어들지는 않을 거다. 사실 저는 이주노동자 문제, 이민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미 지방에서는 이주노동자 없이 일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한쪽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민을 반대하고. 얼마나 모순적인가. 지금 손을 놓고 있으면 앞으로 불거져 나오는 갈등을 감당할 수 없을 거다. 정치는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