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사람의 일이 곧 만 가지 일이다. 좋은 인재를 등용해서 그들에게 걸맞은 자리에 알맞게 배치해야 모든 일이 좋게 풀린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라도 직접 관리 가능한 범위에 한계가 있어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 그들이 보유한 지식과 전문성, 경험에 걸맞은 위치에 앉혀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아무리 풍부한 자본과 탄탄한 시스템을 갖춘 회사여도 몇몇 사람들로 인해 순식간에 흔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문에 기업의 인사는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그 업체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사항 중 하나로 분류되기도 한다. [人事萬事] 코너에선 기업의 인사를 조명해 기업의 만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매년 낙하산 의혹…‘상생의 악순환’, 尹정권에서도?
공영홈쇼핑(공영쇼핑)은 대한민국 중소기업과 농축수산업의 판로를 지원함으로써 건전한 유통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2015년 설립된 공기업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최대주주(50.0%)로 있고, 2대 주주 역할은 국내산 농산물의 원활한 수급에 기여하기 위해 농협경제지주(45.0%)가 맡고 있다. 판매하는 상품도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만든 제품, 우리나라 농가가 일군 국산 농축수산물 등으로 민간 홈쇼핑업체와 사뭇 다르다. 대기업 홈쇼핑의 높은 진입장벽 앞에서 좌절한 생산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소비자들에겐 우수한 품질의 가성비 제품을 소개해 '상생의 선순환'을 꾀하는 게 공영홈쇼핑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공영홈쇼핑을 둘러싸고 터진 각종 논란과 의혹들을 감안했을 때 이 회사의 존재 이유는 상생의 선순환이 아니라 '상생의 악순환'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상생의 대상은 국내 중소기업·농가가 아닌 '제 식구'다.
지난 30일 공영홈쇼핑은 '임원의변동' 보고서를 공시하고 성이경 창녕농협 조합장(前 농협하나로유통 비상근이사), 김흥수 새로운민심 새민연 사무총장(前 KBS 아나운서실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른바 '낙하산' 인사로 의심받을 여지가 적잖다는 것이다.
경남 창녕군의회의장을 지낸 바 있는 성이경 사외이사는 역대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 소속으로 창녕군수 자리에 지속적으로 도전한 인물로, 윤석열 대통령이 유력 대선후보로 분류될 때부터 지역에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 사외이사는 2022년 창녕군수 선거 때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려 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으며, 현재는 오는 4월 치러질 예정인 창녕군수 보궐선거의 잠재적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김흥수 사외이사는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조전혁 서울시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 캠프 대변인을 지냈다. 김 사외이사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시민단체 새로운민심 새민연(이하 새민연)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올바른 민심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자유우파 시민단체'를 표방하며 지난해 11월 공식 출범했다. 출범 행사 당시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김대남 시민소통비서관,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새민연은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날리면' 논란과 관련해 〈MBC〉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고, 〈MBC〉 퇴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공영홈쇼핑에서 낙하산으로 의심되는 인사가 단행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공영홈쇼핑은 거의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와 비슷한 의혹으로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인 2018년 공영홈쇼핑 대표로 취임한 최창희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고등학교 4년 선배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홍보고문을 맡아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만든 인물이다. 홈쇼핑·유통 관련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와 더불어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고, 최 대표가 취임한 같은 해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실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김진석 전 보좌관이 공영홈쇼핑 감사로, 최 대표와 대학(홍익대) 동문인 이기연 질경이 우리옷 대표이사가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되면서 낙하산 논란은 증폭됐다. 이후에도 상생의 악순환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석종훈 전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가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일자리수석실 중소벤처비서관으로 임명되고 이듬해인 2020년 석 전 대표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조영주 나무온 대표가 공영홈쇼핑 사외이사로 임명됐다. 나무온은 석 전 대표가 만든 업체다. 2021년엔 문재인 대통령 후보 방송연설팀장, 이낙연 국무총리 소통메시지비서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메시지부실장 등을 지낸 유창오 전 금강기획 PD가 감사로 선임돼 '알박기' 의혹까지 불거졌다.
현재 공영홈쇼핑 사령탑인 조성호 대표를 둘러싼 잡음도 있었다. 국민의힘 권명호 의원은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조 대표에게 "낙하산 인사 문제, 불법 주식 거래 의혹 등이 매년 국회와 언론을 통해 지적되고 있다. 잘 알고 있는가"라며 "항간에 조 대표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척이라는 얘기가 있다. 10촌 이내 아니냐. 사실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조 대표는 "학연, 지연, 혈연 전혀 아니다. 일면식도 없고, 통화를 한 적도 없다. 친인척 관계는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리고 정권이 교체되자 앞서 거론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인물들이 공영홈쇼핑 사외이사 자리에 앉은 것이다. 자기 사람들을 챙겨주는 상생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인사가 바로 안 서니…만사도 바로 안 서네
인사가 올바르게 이뤄지지 않으면 그 회사의 만사는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영홈쇼핑이 그랬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최창희 전 대표는 브랜드 컨설팅, 디자인 개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무자들에게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라고 지시하는 등 계약 사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억 원의 회삿돈이 특정 마케팅·광고대행사에 지급되기도 했다. 마케팅본부장 채용 비리 의혹도 불거진 바 있으나 중기부는 부정채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조성호 체제에서도 내부 기강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는 눈치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공영홈쇼핑의 내부감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공영홈쇼핑은 지난해 실무자들이 품질보증 업무 프로세스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생산자가 원산지 표시를 위반해 납품한 참기름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용역업체 관리 담당자가 한 용역업체 직원에게 사적 업무지시, 상대 비하 등 '매우 부적절한 언행'을 해 징계를 받는 사건도 있었다. 특히 전임 사장 시절 문제가 됐던 계약사무 업무와 관련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초까지 종합감사가 이뤄졌는데, 그 결과 △계약사무처리기준 미준수 △계약현황 관리·계약서 검토 미흡 △재하도급 △장기간 동일업체 수의계약 등 개선·권고·시정사항이 발견됐다.
실적 정상화도 요원해 지고 있다. 공영홈쇼핑은 코로나19 사태 가운데 공적 마스크 판매 업체로 지정되기 전까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설립 이후 2019년까지 약 500억 원 규모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2020년 창사 5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루긴 했으나 2021년엔 다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2.41%, 47.05% 감소했다. 국내 홈쇼핑업체 중 영업이익이 가장 낮고, 점유율은 꼴찌(3%)다. 인사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산자위 소속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공영홈쇼핑의 예산은 2380억 원인데, 투입 예산보다 더 적은 매출을 내고 있다. 민간기업이라면 존재할 수 있겠느냐"며 "왜 그런지 보니 전문가가 없다. 최창희 직전 대표는 문재인 대선 캠프 홍보 고문, 김진석 전 감사는 김태년 의원 보좌관, 유창오 현 감사는 문재인 후보 방송연설팀장이다. 공영홈쇼핑은 중소기업을 위한 곳인지, 낙하산 인사 서식처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공영홈쇼핑이 바로 서려면…
낙하산 등 인사 관련 의혹과 관련해 공영홈쇼핑에서 내놓는 해명은 '후보자에 대한 평가 등 선정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규정에도 어긋남 없이 공정한 절차를 밟았다', '사실무근이다', '공공기관에 부합하도록 선임 절차를 개선하겠다' 등 매번 동일하다. 그럼에도 해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중기부, 국회 차원에서 공영홈쇼핑을 비롯해 홈앤쇼핑 등 공공성을 띤 홈쇼핑업체의 인사 관련 규칙을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중소기업유통센터, 농협 등 대주주들의 경영 간섭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가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논란과 의혹에 중심에 선 인사라도 제대로 업무를 수행한다면 회사의 만사가 꼬일 리 없다. 그러나 공영홈쇼핑의 경우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눈치다. 알리오에 따르면 공영홈쇼핑은 2022년 12차례 이사회를 열었는데, 이사들이 전원 출석한 회의는 이중 절반 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 절반 중엔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통신수단'을 사용해 이사들이 참석하는 사례들도 여럿 있었다. 경영진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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