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임기 막판까지 '탈원전'을 고수하던 문재인 시대가 저물고, '원전 최강국'을 공언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일제히 원자력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지난 10일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보도자료를 내고 오세철 대표가 미국 뉴스케일파워사(社) 최고경영진과 면담을 갖고 '글로벌 SMR사업 공동진출과 시장확대를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뉴스케일파워는 차세대 원전 기술 중 하나인 SMR(소형모듈원자로) 관련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현재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세계 SMR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뉴스케일파워에 7000만 달러(2021년 2000만 달러·2022년 5000만 달러) 규모 지분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번 면담에서 양사 최고경영진은 오는 2029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추진되고 있는 SMR 프로젝트의 시공계획 수립, 기술 인력 파견 등에 대해 각자 축적한 기술·역략을 상호 공유키로 했다. 또한 동유럽 지역 SMR 관련 사업에도 전략적 파트너로서 협력하기로 했다. 오 대표는 "세계적 SMR 선도기업과 공고한 파트너십을 통해 향후 지속적으로 성장이 예상되는 SMR 관련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국내 건설업체들의 '원전 러시'는 20대 대선(지난 3월 9일)이 치러진 이후부터 본격 이뤄졌다. 현대건설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3월 28일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인디안포인트 원전해체사업'과 관련해 홀텍사(社)와 PM(Project Management)계약을 비롯한 '원전해체 협력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당시 양사는 △홀텍 소유 미국 원자력 발전소 해체 사업 참여 △글로벌 원자력 해체 시장 공동 진출 △마케팅·입찰 공동 추진 등에 대해 합의했다. 현대건설 측은 "선진 원전해체 기술을 축적해 향후 발주가 예상되는 국내 원전해체 사업의 선두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겠다"고 내세운 바 있다.
이어 지난달 20일 현대건설은 한전원자력원료와 '국내외 원전해체·사용후핵연료 사업 동반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양사는 원전해체, 사용후핵연료, SMR 등 원자력산업 신시장으로 평가되는 분야에서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기존 원자력발전소 시공은 물론, 관련 사업 전반에 걸쳐 사업 다각화를 수행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햇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현대건설은 부연했다.
비슷한 시기 현대건설의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도 해외 원전 관련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을 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달 6일 국제공인기구인 미국기계학회(ASME)로부터 원자력 부문 설치·공장 조립, 부품·배관 하위 조립품 제작, 지지물 제작 등에 대한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ASME의 원자력 시공 관련 인증은 원자력 보일러·압력용기·배관 제작과 설치 등에 대한 기술 인증으로, 해외 원자력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사업을 수행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게 현대엔지니어링의 설명이다. 이를 계기로 현대엔지니이링은 SMR 등 사업을 적극 진행하고 전사적 역량을 투입해 글로벌 시장 선점에 나설 계획이다.
아울러 대우건설·현대건설·GS건설 컨소시엄은 지난 4월 5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발주한 총 3632억 원 규모 '수출형 신형연구로·부대시설 건설공사' 시공권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해당 사업은 부산 기장군 장안읍 소재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일반산단 내 지하 4층~지상 3층 규모 개방수조형 원자로(15MW급)와 관련계통·이용설비 등을 짓는 프로젝트다. 주간사인 대우건설 측은 "EU의 그린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면서 상용원전, 연구로 등 원자력 분야 경쟁력에 대한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며 "향후 원전, 연구로 등 국내외 원자력 분야에 적극적인 참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원전 관련 사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향후 시장 성장 가능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영국국립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업체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SMR 시장의 경우 글로벌 시장 규모가 오는 2035년 최소 390조 원에서 최대 6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먹거리인 원전해체 시장도 오는 2030년까지 123조 원 규모로 확장될 것으로 추정(미국 베이츠화이트사 자료)된다. 그리고 '탈원전 백지화·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공약을 내세운 윤 대통령이 정권교체를 이룬 게 원전 관련 사업 추진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대선 공약이 허언이 되지 않도록 정치권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정밀한 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前)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산업생태계가 급격히 악화됐고, 건설사들도 원전 관련 사업 추진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음에도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여럿 놓친 셈"이라며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릴 때다. 규제 완화, 상용화 계획 수립, 제도 정비 등을 통해 SMR을 비롯한 원전 분야 신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분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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