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 강정화 기자]
인천 한복판 ‘유령도시’가 존재하고 있다. 무려 1만 5000세대가 살던 인천 구도심을 최첨단 입체도시로 만들겠다던 LH공사(한국주택공사, 사장 이지송)의 계획이 자리를 못잡아 만들어진 도심구역이다. 지난 2006년 인천시와 LH공사가 뛰어든 가정오거리 재개발(루원시티 도시재생사업)이 대부분 주민들이 정든 터전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인천시가 국토부와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바로 옆 경인고속도로를 일반도로로 바꾸는 것을 전제로 개발 계획을 수립한 뒤 덜컥 보상과 주민 이주부터 실시했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불가 방침에 토지 이용계획이 어긋나자 사업은 전면 중단됐다.
LH공사는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인천시에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경인고속도로 일반화사업이고, 앵커시설이라 할 수 있는 소위 ‘인천시청 이전’과 같은 주문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직까지 남은 30세대 정도의 집 주인들은 “지금 사업이 제대로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 언제 이사 가서 언제 돌아올 수 있어요? 애초에 사업을 제대로 했어야죠. 제대로 된 이주 대책을 해 주셨어야죠”라며 불만을 강하게 토로했다.
입체복합도시 ‘루원시티’는 무엇인가?
인천시의 중점 사업가운데 하나는 구도심 개발이었다. ‘루원시티’는 인천 서구 가정오거리 일대를 최첨단 입체 복합 도시로 조성한다는 목표로 추진됐다. 인천의 동서축과 남북축이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인 가정오거리와 인근의 경인고속도로를 직선화하고 이 일대를 재개발해서 3만 명 입주 규모의 신 도심을 만드는 사업이다.
2009년에 경인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지하도로로 바꾸는 방식으로 공사 계획안이 제출됐다. 인천시는 고속도로가 이 지역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고속도로 일부 구간의 일반도로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는 인천항 물동량 수송에 지장이 있다며 반대해 왔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인천시가 새로 떠안게 될 고속도로지하화 공사비 3천5백억 원이다. 최근 인천시는 송영길 시장 취임 후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시민모임은 “인천시가 파산 위기를 면하기 위해서는 아시안게임 반납 등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현재 진행 중인 지하철 2호선 건설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게다가 사업 초기 보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LH공사가 지급한 보상비는 이미 1조 6000억 원이다. 이자만 매년 700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고속도로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2011년 부터 주민들의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사업에 차질이 우려됐다. 4년 전부터 현재까지 철거 예정 건물에 대한 법원의 강제집행과 이주 예정민의 몸싸움이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매일 밤에는 이주 재정착을 원하는 이주민들만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지자체의 실수 아니면 시행사의 계산기 탓…
먼저, 루원시티사업에 대한 사업자의 문제다. LH공사의 그간 누적된 ‘재무적 부담’은 사업영역을 축소시켜야 했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반을 둔 개발사업에 대한 선행된 이해가 필요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루원시티사업이 2006년부터 본격화되어 지방정부가 바뀌기까지 4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LH공사의 자금력만 믿고 무리하게 개발을 진행한 인천시의 착각이었다.
2005년 인천시가 입안할 당시에는 1조 9,974억 원(건축비 별도)이었던 것이 2010년에는 2조8,926억 원으로 변했다. 5년 사이에 1조원 이상의 사업비가 뛰었다. 사업비가 많이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가정오거리에 입주하는 주민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입주율이 떨어지면 사업시행자가 손해를 본다.
문제는 최초에 사업을 진행할 때 LH공사는 무작정 ‘묻지마 투자’를 했다는 거다. 또한 경인고속도로 일반화사업의 승인처는 국토해양부이다. 인천시는 누구보다 경인고속도로 일반화사업에 목말라하고 있다. 단지, 경인고속도로에 관한 변경 승인을 국토해양부가 거부하고 있는데 LH공사는 인천시와만 협상(?)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해결 방법만 찾는… 허송세월이 몇년째?
안상수 전임 인천시장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대형프로젝트 사업의 하나인 루원시티가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사업이라고 지목된 것은 송영길 인천시장직 인수위원회에서였다.
당시 LH는 처음으로 루원시티 사업에서 8천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공개했다. 인천시의 재정악화에 대해 선거 내내 목소리를 높였던 송 시장 진영에서는 루원시티 사업을 ‘뜨거운 감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LH측은 사업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앵커시설 및 기관 유치 계획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더 이상의 사업비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장기 표류 가능성마저 나타나고 있는 원인이 됐다.
지난 2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송 시장은 “루원시티 사업이 장기 표류되고 있는 것이 아쉽다”며 “올해 말까지 철거를 마무리하고 전체 개발을 선도할 앵커시설을 유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LH가 우선 사업비를 투입하고 완공 후 인천시와 50대50으로 수익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인천시는 매년 450억 원(연 금융비용 손실의 50%)씩의 금융비 손실을 보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5천억 원의 사업 손실을 재정 부담으로 안게 될 수도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사업성 확보를 위한 공공기관과 환승센터, 다중집객시설 등 앵커시설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올해 안에 구체적인 개발 방향을 세워 건설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사업 손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설픈 사업 계획으로 매년 수백억 원을 빨아들이는 유령 도시.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 인천시의 재정난까지 겹치면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올 연말까지 또 늦춰진 계획, 시민들만…
진보신당 인천시당은 4일 성명을 통해 “시가 국토해양부로부터 기존 경인고속도로 폐지와 경인고속도로 연결허가를 받지 않고, 주택이 밀집돼 있는 지역에 도시개발법을 적용해 강제수용 방식으로 무리하게 진행한 사업”이라고 제기했다.
또 “LH공사는 토지 등 소유자에게 이주 및 생활대책 대상자 심사 및 선정과 이주 및 생활대책공급 대상자를 확정해 통보치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소유자들과 소유권 이전에 대한 사전협의 없이 강제로 LH공사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고 건물명도, 임대료 청구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루원시티 공동대책위 소속 주민들은 공동사업시행자인 인천시(장)와 LH공사(사장)에 대해 법도 무시하고 인권을 유린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이주대책’을 요구하면서 시청 정문 앞 노숙농성을 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인천시 의회는 ‘LH공사 관련사업 행정사무조사 요구의 건’을 발의할 것이라고 지난달 20일 밝혔다. LH공사는 루원시티 도시개발사업을 포함한 검단신도시 조성사업, 영종하늘도시 등 10여 개 사업을 인천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 및 LH공사의 경영 악화로 사업을 정상 추진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대해 시의회는 “LH공사는 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탓만 할 뿐 본연의 책임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사를 통해 LH공사의 빚 탕감을 하든, 본연의 업무를 하지 못하는 LH공사를 해체하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특위 구성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인천시 지역개발 관계자는 “현재 2009년 4월 계획했던 내용을 변경작업 중이고 사업화를 고려해 연내 다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LH공사 관계자는 “원래의 사업계획이 변경됐으니 ‘사업성개선방안’을 재검토해 하반기내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지자체와 국영기업이 사업성 여부와 계획수정으로 문제삼아 외곽으로 선회하는 동안 애꿎은 시민들만 고생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