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국토교통부가 지난 29일 '2021년도 시공능력평가'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시공능력평가는 발주자가 적정한 건설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매년 각 건설사들의 공사실적과 경영상태, 기술능력, 신인도 등을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해 공시하는 제도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입찰제한이 이뤄지고, 조달청에서 유자격자명부제나 도급하한제 등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시공능력평가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데요.
특히 엎치락뒤치락하는 개별 건설사들의 순위에 대한 관심이 매년 높은 편입니다. 올해에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8년 연속 1위 수성, DL이앤씨(구 대림산업)의 기업분할에 따른 상위 10위권 내 순위 연쇄 변동 등이 눈길을 끌었으며, 대방건설·서희건설·부영주택 등 전년 대비 순위가 급등한 중견업체들과 반도건설·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효성중공업 등 같은 기간 순위가 급락한 중견사들의 엇갈린 희비도 이슈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1년도 시공능력평가에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앞서 간단히 설명했지만 시공능력평가는 건설업체들의 공사실적, 경영상태, 기술능력, 신인도 등을 종합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공사실적평가액은 '최근 3년간 연차별 가중평균 공사실적'으로 산출하는데요. 말 그대로 건설사가 최근 얼마나 많은 공사를 수주하고 수행했는지를 평가합니다. 경영평가액은 '실질자본금'과 '경영평점'을 고려하는 항목으로, 각 회사의 자기자본, 실적, 차입금의존도 등 재무구조 전반을 잣대로 삼습니다. 기술능력은 해당 업체의 보유기술자 수, 기술자 1인당 평균생산액, 최근 3년간 기술개발(R&D) 투자 규모 등을 평가하고요. 신인도평가액은 신기술지정, 협력관계 평가, 부도, 영업정지·과징금, 부실벌점, 재해율 등을 감안해 가·감산합니다.
올해 전체 토목건축공사업 시공능력평가액은 258조9382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이중 경영평가액이 99조9591억 원으로 가장 높은 비중(38.6%)을 차지했습니다. 이어 실적평가액(98조7742억 원) 38.1%, 기술평가액(42조3683억 원) 16.4%, 신인도평가액(17조8366억 원) 6.9% 등으로 나타났는데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영평가액이 실적평가액보다 높다는 겁니다. 경영평가액이 실적평가액을 넘어선 건, 실제 시공실적 대비 시공능력이 과다 평가되고 있다는 이유에서 경영평가액 비율을 90%에서 75%(현행 80%)로 하향 조정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는데요.
해당 기간 동안 전체 시공능력평가액에서 실적평가액과 경영평가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0년 실적 41.7%-경영 27.8%, 2011년 43.4%-26.4%, 2012년 40.7%-26.4%, 2013년 39.2%-26.5%, 2014년 39.5%-23.7%, 2015년 38.5%-25.6% 등으로 경영평가액 비중이 30%를 넘긴 적이 없다가, 기업 안정성 진단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경영평가액 비율을 현행 80%로 상향 조정한 2016년 37.5%-30.3%를 기록하며 30%대에 진입합니다. 그뒤부터는 2017년 38.5%-33.4%, 2018년 40.5%-34.3%, 2019년 40.4-36.1% 등 실적평가액과 경영평가액 비중이 동시에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시장 과열로 국내 주택경기가 활성화되면서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으로 꽤 재미를 봤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2020년에는 39.0%-38.2%로 실적평가액과 경영평가액 격차가 0%대로 급격히 줄었고, 급기야 2021년 38.1%-38.6%로 역전되고야 맙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19년은 국내 건설사들에게 가혹한 시기였습니다. 2018년 9·13 대책을 비롯한 부동산 규제가 본격 적용되는 시기인 만큼 국내 주택사업에서 실적을 내기 어려웠고 해외사업에서는 최대 텃밭인 중동에서의 부진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불과 1년 전 최대 이익을 경신했던 대형 건설사들 대부분의 기세가 꺾였죠. 또한 2020년은 코로나19 사태가 전(全)산업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선별 수주, 플랜트부문 구조조정, 재무구조 개선 등 내실을 키우는 경영 전략이 건설업계의 대세로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가 2021년 시공능력평가로 나타나 경영평가액이 실적평가액을 넘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같은 현상은 오는 2022년 시공능력평가에서도 발생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국내 부동산시장이 뜨겁다지만 정비사업 규제 완화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대규모 공급대책과 SOC사업 등도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차기 대선이라는 대형 정치 이벤트까지 있고요. 해외수주 역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개별 업체들이 외형 대신 내실로 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10대 건설사 중 올해 2분기 잠정 실적을 공시한 업체 6곳 가운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증가한 회사는 대우건설, DL이앤씨(구 대림산업) 등 2곳에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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