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예상치 못한 허리케인이 삶을 한차례 강타하고 지나간 후, 이제 겉으론 평범한 일상 속 잔잔한 물결이 넘실댄다. 격랑의 시간을 보내고 주변을 둘러보니 마당엔 수국, 백일홍, 루드비키아, 채송화 그리고 봉숭아까지 환하게 웃으며 날 반긴다.
지난 거센 파도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고, 펼쳐지는 난감한 현실에 자신을 내맡긴 채 의연하게 관망하듯 응대했다. 이제 처음 암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흘러 휴지기를 맞았다고 해야 하나, 끝이 난 걸까.
완치와 완전관해
끝은 바로 시작이다.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 또 수술까지, 이 모든 과정이 끝났다고 치료 종결은 아니다. 암 치료 후 재발 전이 없이 5년이 지나면 완치라는 게 일반적인 대중적 통념이자 시각이다. 그러나 실제 유방암은 표준 치료가 끝나고 검사상 문제가 없어도 완치라 명명하기 어렵고 완전 관해라는 개념이 걸맞다.
완전관해란 초음파, CT나 MRI에 전혀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영상의학적 검사의 한계로 0.5cm보다 작은 암세포는 진단하지 못해, 암 크기가 0.5cm 이하면 촬영한 사진에서 안 보일 뿐이다.
따라서 병원 치료를 다 끝냈다 하더라도 암의 성장이 최대한 억제될 뿐, 암이 100% 사라질 확률은 희박하다. 이에 미세 잔존 암세포가 더 이상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꾸준히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암환자에게 제일 무서운 재발, 그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니 올바른 생활 습관을 계속 유지하고 먹거리와 운동 등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나의 현주소
그렇다면 치료가 끝난 이 시점,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을까. 그런 아니다. 탈모로 사라졌던 머리칼은 많이 자라 가발을 벗어던졌으나 애석하게도 원래 숱의 2/3만 채워져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인다. 대충 모자로 커버할 수밖에 없는데 볼 때마다 썩 유쾌하진 않다. 항암치료 중엔 다 끝나면 자라겠지 했으나 계속 이렇게 갈 수도 있겠다 싶으니 서글퍼지기도 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나아지려나….
그 다음, 체력이 예전만 못하고 위, 폐, 심장 기능 저하가 역력 하다. 보편적으로 폐, 심장 등 기능 회복에 몇 년 걸린다더니 오래 움직이면 숨이 차 수시로 쉬어야 한다. 예전엔 1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움직여 일을 했다면 지금은 기껏해야 10분 정도 가능하다. 따라서 육체노동 시 조금씩 자주 움직이는 방법으로 시간과 체력 안배를 통해 활동할 수밖에 없다. 말하는 것도 에너지 소비가 커 기운차게 소리 낼 수 없으니 이젠 큰 소리로 악악거리며 부부싸움도 못한다. 의사 표현은 충분히 해도 길게 혹은 큰소리 내는 일은 힘에 부친다.
또한 입원 중 겨드랑이 림프절 제거술 후 림프 부종 방지 교육을 받을 때, 수술한 팔 사용을 최대한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많은 유방암 환자들이 제거된 림프절로 인해 림프 부종을 겪게 된다. 겨드랑이에 있던 림프절을 제거함으로써, 순환되어야 할 림프액이 돌지 못해 팔이 붓기 때문이다. 팔을 아끼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한 쪽 팔만 쓸 수도 없는데, 무리하게 사용한 건지 언제부턴가 왼쪽 팔 부종이 나타났고, 현재 두 팔 둘레 차이가 2cm 이상 난다. 결국 재활의학과까지 다니며 아침저녁 팔 마사지와 압박 붕대를 사용해 부종이 있는 팔 관리 중이다.
식이요법과 운동
한편, 환우 카페엔 전문가 못지않은 환우와 환우 가족들이 올린 자료가 풍성하다. 그 정보들에 기초하여 관리 방법 매뉴얼을 짜고 참고한다. 그 중 먹거리로 뭘 선택할까가 핵심 관심사일 수밖에 없고, 하루 메뉴와 재료 성분을 체크하는 게 주요 일과로 신중하게 가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생수 마시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토마토 당근 브로콜리 양배추를 삶아 믹서에 간 야채 주스, 신선한 야채가 주 재료인 야채샐러드와 삶은 계란, 연어 등을 아침 식단 메뉴로 삼는다.
그리고 현미위주의 밥과 나물류 반찬을 우선시하고, 면 요리를 즐기는 난 여름엔 냉면을 자주 먹고 또 라면 빵도 좋아했지만, 밀가루 대신 100% 메밀가루를 쓰고 메밀국수를 대안으로 챙겨 먹는다. 밀가루는 성분상 체내 혈당 수치를 올려 암세포의 유리한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밀가루 음식뿐 아니라 당분인 설탕, 백미 같은 탄수화물 역시 거리를 둔다. 과일도 과당이 많아 적당히 섭취해야 하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또한 튀김 요리나 숯불에 열을 가해 조리한 음식, 탄산음료나 커피도 일차적으로 멀리한다.
아무래도 섭취하는 음식에 대한 제한을 두다보니 스트레스 받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불편한 건 사실이다. 가끔 치팅 데이를 설정하여 먹고 싶은 그러나 그렇게 추천하지 않은 재료나 메뉴를 섭취하기도 한다. 야식은 되도록 자제하는 입장이지만 간혹 당길 때는 토마토 같은 과일로 대체한다. 당도 높은 과일 섭취가 많은 날은 다른 탄수화물 음식은 아예 입에 대질 않는다.
음식을 통한 관리 외에 본격적인 면역 치료로 비타민 C, D, 셀레늄, 코큐텐 같은 항산화제를 복용하고, 고용량 비타민 C 등 면역주사도 정기적으로 맞는다. 암 요양 병원이나 내과, 가정의학과를 통해 더 안정적인 유지관리를 도모하고 있다.
식이요법과 함께 저하된 에너지 회복과 암 재발 방지를 위해 우선되어야 할 것이 운동이다. 모든 운동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추천 종목은 역시 걷기다. 가벼운 산책에서부터 등산까지 개인적 체력에 따라 그 난이도와 단계적 코스를 설정할 것이다. 나는 산책 이상은 못해 보통 하루 30분 이상 최소 5000보는 걸으려 노력한다.
암환자로 살아간다는 것
암환자에게 정기검진은 가장 필수적 요소다. 매월 병원 갈 일이 주요 일정으로 메모장에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유방외과를 필두로 이비인후과, 종양내과, 산부인과, 방사선치료학과, 재활치료학과까지 병원 방문이 매월 주된 행사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숙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현재 약간 후유증이 남아 있어도 편하게 식사할 수 있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또 시력은 원래대로 다 회복되었고 인지 기능도 돌아와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다. 고용량 비타민 주사 등 면역치료와 다양한 항산화제 섭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려 한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해 삶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장해물에 대처하기 위해 긴장과 이완 두 가지 평행선을 잘 변주, 평생 관리하는 게 암환자의 과제다. 물론 암환자라는 사실을 너무 의식해 몰입하기보다 적당히 거리를 두며 조정해 나가면,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 확신한다. 이에 두 선로처럼 팽팽한 긴장감속에서도 하루 일상을 여유롭게 영위해 가고 있다.
눈을 뜨면 기도로 하루를 열고 마음을 다스린다. 새 날이 주어짐에 감사하며 설레는 가슴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유쾌하게 보내고자 한다. 그리고 ‘긍정의 힘’을 믿고 하루 일과를 다이내믹하고 다양하게 채운다.
규칙적인 식사, 수면, 운동습관 갖기는 기본이고, 몰입할 수 있는 취미생활 하기, 글이나 그림으로 감정 표현하기, 산 강뿐 아니라 텃밭이나 화초를 가꾸며 자연환경 가까이하기, 긍정적 말투를 사용하고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등도 스케줄에 포함된다. 요즘처럼 거리두기 상황에서 사회활동에 제약이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지만, 적절한 인간관계를 도모해 나가야 긴 싸움에서 지치거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이제 다시 출발선상에 서서 긴 대장정을 떠날 채비를 한다. 암세포가 강하지만 현대 의학과 인간의 생명력, 의지도 못지않게 강하다. 인동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약초다. 혹독한 추위의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로서, 나 역시 인동초처럼 다가오는 어려움과 시련에 맞서 굳건히 견디고 이겨내리라. 그리고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는 동지 암환우와 가족들의 건투를 빈다. 마지막으로 ‘슬기로운 환자생활’을 맺으며, 기도와 물심양면으로 나의 길을 지켜봐 준 가족, 친지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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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