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치상식] 만40세 미만 대통령 출마제한, 박정희가 YS·DJ 견제하려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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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치상식] 만40세 미만 대통령 출마제한, 박정희가 YS·DJ 견제하려 만들었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6.14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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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대통령 나이제한 포함된 건 1962년…YS·DJ가 박정희 경쟁자 떠오른 건 1971년 이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박정희가 YS·DJ 견제를 위해 ‘40세 미만 대통령 출마불가’ 조항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뉴시스
박정희가 YS·DJ 견제를 위해 ‘40세 미만 대통령 출마불가’ 조항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뉴시스

“‘40세 미만 대통령 출마불가’ 헌법조항은 차별이자 불공정이다. 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조항은 박정희가 만들었다. 당시 박정희는 40대였고, 그가 바꾼 헌법은 30대 경쟁자들로 하여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톡톡한 역할을 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30대 기수론은 이미 국내에 60년대부터 존재했다. 군사쿠데타 직후였던 1962년 박정희의 대항마로 부상하던 김영삼은 35세, 김대중은 38세의 청년이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

지난 5월 30일.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0세 미만 대통령 출마불가’ 헌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며 “이 조항은 박정희가 30대 경쟁자들이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1962년 박정희 대항마로 부상하던 김영삼은 35세, 김대중은 38세였다”며 강 대표가 말한 ‘30대 경쟁자들’이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뜻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죠.

하지만 이 주장, 어딘가 이상합니다. 우선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제한 규정이 헌법에 포함된 건 1962년 제5차 개헌(제3공화국 헌법) 때가 맞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제정된 제헌 헌법에는 대통령 출마자 연령 제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YS와 DJ 같은 ‘30대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정변을 일으킨 건 1961년이었고, 제3공화국 헌법이 제정된 건 그 이듬해인 1962년입니다.

1962년 당시 YS는 겨우 재선 의원이었고, DJ는 이제 막 처음 선거에서 당선된 상황이었습니다. DJ는 1961년 5월 13일에 있었던 재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요. 선거가 치러지고 채 3일도 지나지 않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의정 활동은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재선 의원 한 명과 아직 국회에서 입 한 번 떼보지 못한 정치인을 견제하기 위해 헌법까지 고쳤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죠.

게다가 YS와 DJ는 제3공화국 헌법 제정 후 7년이 지난 1969년까지도 ‘유력 대선 후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YS가 1969년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을 당시, 당내에서 ‘구상유취(口尙乳臭·입에서 아직 젖내가 남)’라는 비판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DJ 최측근이었던 김상현 전 의원이 2009년 <시사오늘>과의 가진 인터뷰 내용을 보시면 DJ는 당시 상황에서 40대 기수론은 승산이 없다고 보고 아예 경선에 출마조차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에 참여하기를 망설였는데 김상현 전 의원께서 적극적으로 설득해 김 전 대통령이 뛰어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김영삼과 이철승이 40대 기수론의 기치를 내걸고 나왔지만 김 전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 40대 기수론에 동참하지 않으면 앞으로 지도자 대열에서 영원히 탈락할 수 있으니 선언에 동참해야 한다’고 했더니, 김 전 대통령은 ‘아무런 준비도 안됐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느냐.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선언이 준비’라고 설득했습니다. 제가 서울의 ‘뉴 서울호텔’에서 차 한 잔 하자고 만난 자리에서였습니다. 저는 김 전 대통령에게 40대 기수론에 참여해야 정치적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김 전 대통령이 ‘하루만 생각하고 내일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음 날 ‘풍림’이라는 한정식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40대 기수론에) 동참의 뜻을 밝혔습니다. 나 아니었으면 김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에 참여하지 않았을 겁니다.” -2009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 중

 

YS와 DJ가 박정희의 경쟁자로 떠오른 건 1971년 40대 기수론이 성공한 후의 일이니, 군사쿠데타 직후였던 1962년 YS와 DJ가 박정희의 대항마로 부상하고 있었다는 장혜영 의원의 말은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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