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국민의힘과 ‘이준석 낙선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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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국민의힘과 ‘이준석 낙선 리스크’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6.07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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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개혁의 상징 된 이준석…낙선 시 후폭풍 클 수밖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준석 후보의 돌풍이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준석 후보의 돌풍이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 3일 정오 즈음, 기자에게 문자메시지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나선 이준석 후보의 대구·경북 합동연설회 연설문 내용이었습니다. 한 줄 한 줄 연설문을 읽던 기자는, 곧 메시지에서 눈을 돌렸습니다. ‘가짜뉴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준석이라도 대구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이 후보가 연단에 섰습니다. 그러고는 익숙한 단어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보스턴, 오바마, 이라크 전쟁, 박근혜, 탄핵…. 기자가 점심 때 읽었던 연설문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이윽고 1985년생 젊은 정치인은, ‘보수의 본산’ 대구에 핵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못해서 국가가 통치불능의 사태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은 그 시점에 정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이 후보에 대한 TK(대구·경북) 지역 지지율 변화에 쏠렸습니다. 전체 당원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TK가 돌아선다면 ‘이준석 대세론’은 한 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머니투데이>와 <미래한국연구소> 의뢰로 PNR리서치가 5일 수행해 6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의 지지율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TK에서 높게(48.7%) 나타났습니다. ‘이준석 돌풍’이 ‘탄핵의 강’마저 건넌 겁니다.

여론조사 결과 발표 다음 날인 7일. <시사오늘>과 만난 정치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쯤 되면 이준석이 이길 수밖에 없고, 또 이겨야 한다. 경선을 치르면서 이준석은 새 정치의 상징, 변화의 상징이 됐다. 여기서 뒤집어지면 국민의힘은 구태 정치가 새 정치를 누른 정당, 아직도 탄핵의 망령이 살아 있는 정당이 된다. 이러면 대선은 필패다.”

실제로 이 후보는 지난 네 차례의 합동연설회 과정에서 ‘새 정치’의 구체적 방향을 보여줬습니다.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는 전혀 없었고, 대신 그 자리는 보수정당의 가치와 철학, 지역의 발전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으로 채웠습니다. 광주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자유롭게 체득한 보수정당 당대표’를 말했고, 부산에서는 부산이 데이터센터 유치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미래의 먹거리’를 제시했습니다.

‘교육의 도시’ 대전에서는 보수정당이 지향해야 할 교육의 방향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는 ‘탄핵은 정당했다’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처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까지 품어줘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변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반면 이 후보의 경쟁자들은 네거티브와 실현 가능성 낮은 공약(空約), 해당 지역 또는 특정인과의 인연을 앞세우는 전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준석 후보는 유승민계”, “박근혜 석방”, “박정희 공항 건설”, “충청대망론”, “윤석열 배제” 등이 주장의 전부였습니다. 오죽하면 홍문표 후보가 “흙탕물에 계보 싸움 무슨 짓이냐. 제1 야당 후보가 할 짓이 아니다”라며 “실력과 능력이 안 되면 그만 두라”고 직격할 정도였습니다.

이러다 보니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변화·개혁·중도’의 상징 이준석 대 ‘네거티브·박근혜’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중도의 구도로 흘러간다는 분석입니다. 앞선 관계자는 “중진 후보들이 구시대적인 네거티브와 강성보수 결집 전략을 쓰는 바람에 이제 이준석이 지면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을 ‘도로 한국당’ 정도가 아니라 구제불능 꼰대정당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습니다.

기자와 만난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이준석이 지면 국민의힘에게는 기대를 접겠다”거나 “이제 좀 네거티브 안 하고 박근혜 얘기 안 하는 사람이 나왔는데 여기서 지면 국민의힘은 희망이 없다”는 등의 말을 자주 했습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여전히 ‘이준석 돌풍은 여기서 멈추는 게 정권교체를 위해서 좋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이준석 당선 리스크’보다 ‘이준석 낙선 리스크’가 더 커 보이기도 합니다. 과연 국민의힘 당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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