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모든 것은 한 줄의 조항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제1항은 국방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문구에서 ‘모든 국민’이 논란이었다. 왜 여성은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지, 왜 남성만이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국방의 의무, 그 중에서도 병역 논쟁은 그간 형태만 달리했을 뿐 핵심은 같았다. ‘군 가산점’에서 ‘여성 징병제’로, ‘모병제’와 ‘남녀평등복무제’에 이르기까지.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규모 축소를 우려한 현실적인 제안인 동시에, 남성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됐다. 성별 대립으로 격화될수록 전자는 흐려지고, 후자의 목표 달성이 뚜렷해졌다.
<시사오늘>은 과거의 인물, 그리고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당대 신문들의 평가를 재조명하며, 보수와 진보 언론 양극단의 평가를 비교해왔다. 여기서 ‘어떤 평가가 옳은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전면 배제한다. 판단은 ‘사상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동시에 ‘과잉 이념’의 시대에 지쳤을 독자들에게 맡길 예정이다. 이번 열세 번째 ‘옛날신문 보기’는 1999년, 2010년과 2016년 ‘병역 논쟁’이다.
시작은 장애인 남성의 ‘군 가산점’ 문제 제기
논쟁의 시작은 ‘군 가산점’ 제도였다. 1990년대,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군복무 가산점 제도의 형평성 논란이 생겨났다. 당시 공무원 시험은 △2년 이상 군필자는 총점의 5% △2년 미만 군필자는 3%의 가점을 부여했다. 그러나 1~2점으로 합격이 엇갈리는 시험에서, 총점 800점 중 40점 혹은 24점을 부여하는 제도는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
1994년, 이화여대 교수 75명과 학생 2천여 명이 관계기관에 폐지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중요한 시기에 3년간 군복무를 하는 남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한다”면서도,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이 정당한 취업의 기회를 원천봉쇄 당한다면 이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군복무자들이 가산점뿐만 아니라 취업 후의 호봉 산정에서도 혜택을 받는 것은 이중 혜택”이라며, 제도를 폐지하거나 가산점을 줄이고 취업 후 호봉 산정 배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1998년, 국무회의에서도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국방부장관 및 남성 위원들과, “여성 공무원 진출이 저하될 수 있다”는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여성 위원들 간 성별 대립이 격화됐다.
결국 논쟁은 헌법재판소까지 이어졌다(98헌바33). 그러나 가장 먼저 헌법소원을 제기한 청구인은 장애인 남성이었다. 청구인은 지체장애인 3급으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는 7급 시험에서 78.33점으로 응시자 중 133위에 그쳐 불합격했다. 그러나 군 가산점을 뺐을 경우 28위로, 석차가 무려 105위나 차이 났다.
이에 헌재는 “가산점 제도는 현역복무를 할 수 있는 신체 건장한 남자와 심신장애 등으로 병역을 감당할 수 없는 남자를 차별하는 제도”라며 “결과적으로 장애인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초래해 적합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것”이라 판단했다.
<조선일보>는 “수긍할 구석이 있다”면서도, 가산점 제도 자체를 위헌으로 판결한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외에도 위헌 판결을 비판하는 외부 인사들의 칼럼을 다수 실었다. 반면 <동아일보>는 유시민 시사평론가의 칼럼을 통해 “위헌 결정은 당연한 일”이라 평가해 대조됐다.
[사설] 군필자 가산점 ‘위헌’ 파문
문제가 된 7, 9급 공무원 시험은 제대 군인이 전체 합격자의 70%를 차지해서 군에 가지 않은 사람에게 심히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적어도 이 점에서만은 헌재의 판결에 수긍할 구석이 있다.
그러나 헌재가 군필자 가산제 자체를 정면으로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우선 헌재는 군필자 가산제를 다른 응시자들에게 덜 불리한 방향으로 개정하라고 판시할 수도 있었다.
(중략) 헌재 판결은 결과론적으로는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병역 기피가 만연한 나라에서 군복무를 너무 가벼이 취급한 점, 그리고 양성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설명한 점은 문제라 하겠다.
- <조선일보>, 1999.12.27. 3면.
[칼럼-유시민의 세상읽기] 그래도 세상을 넓게 보자
제대군인지원법 제8조에 의거해서 과목별 만점의 3~5%를 덤으로 받으니 이것이 바로 문제의 ‘군필자 가산점 제도’다. 취지야 좋다. 3년씩이나 국가안보를 위해 청춘을 바친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 사이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군대 갈 의무가 없는 여성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장애인들이 ‘남자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 제도로 인해 막대한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공무원 채용시험에서는 소수점 이하 점수 차이로 당락이 갈라진다. 그런데 경쟁자가 예비역 병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목별 만점의 3~5%를 덤으로 받으니 여성과 장애인들이 여기에 승복할 리가 만무하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와 보호’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헌결정을 내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동아일보>, 1998.12.28. 7면.
이처럼 1990년대에 시작된 병역 논쟁까지만 해도 성 대결 양상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상 군대를 갈 수 있는 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녀 간 대립이었다. 무엇보다도 논쟁의 핵심은 ‘형평성’에 있었다. “군 복무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하에, 가산점에 대한 입장차가 있을 뿐이었다. 여성들 또한 헌재 판결 전후 여론조사에서 호봉 등 다른 방법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남성에 한정한 병역의무 부과’는 정당한가
2000년대에 들어서자, 제1국민역 남성들의 불만은 본격적으로 여성을 향했다. 분노는 “왜 남성만 군대에 가느냐”로 요약됐다. 현재까지 헌법재판소가 판결한 ‘남성에 한정한 병역의무 부과(병역법 제3조 제1항)’ 사건은 총 18개다. 이 가운데 △2006헌마328 △2010헌마460 △2011헌마825 등 3개 사건만이 기각됐으며, 나머지는 모두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됐다.
헌재는 공통적으로 성별에 따른 신체적 특성을 근거로, 병역의무가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정 요지에 따르면, “집단으로서의 남자는 집단으로서의 여자에 비하여 보다 전투에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자의 경우에도 월경이나 임신, 출산 등으로 인한 신체적 특성상 병력자원으로 투입하기에 부담이 크다”고 명시했다.
뿐만 아니라 남성 청구인의 자기 관련성 및 심판 청구의 이익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관 민형기는 “종래 여자들이 병역의무를 부담하지 않던 혜택이 제거되는 것일 뿐 청구인과 같은 남자들이 병역의무 등에 어떠한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2010년 각하 판결을 냈다.
2011년 청구인은 성별에 따른 신체적 차이를 부정하고, 군복무와 출산 사이의 상관관계를 부정했다. 특히 남성이 병역의무 수행으로 인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취업준비를 하지 못함으로써 입는 불이익이 심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헌재는 법률조항이 “헌법이 특별히 양성평등을 요구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즉, 군복무는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결국 2000년대 들어서며 누적된 남성들의 불만은, 판결에 의해 좌절되는 양상을 보였다.
대권 단골 소재가 된 ‘모병제’
2010년대에 들어서자, 논쟁은 본격적으로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이들은 징집 방법의 변화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촉발된 논쟁이 ‘모병제’였다. 마침 이 시기는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축소가 가시화되던 때였다.
2016년, 남경필 당시 경기지사는 차기 대선 공약으로 모병제를 내세웠다. 남 전 지사는 그 당위성을 ‘인구절벽’에서 찾았다. 병력 규모는 유지하면서 인구 절벽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려면, 자발성에 기초한 모병제로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여기에 김두관 의원 역시 모병제 도입에 힘을 보탰다. 김 의원은 2012년 대선 경선 후보일 당시 모병제 전환을 공약했었다. 김 의원과 남 전 지사는 모병제는 청년들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두 사람은 임금을 9급 공무원 초봉 수준인 월 200만원 수준으로 끌어 올리자고 주장했다.
이렇듯 모병제는 당권 및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에게 매력적인 카드였다. 남성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저출산·청년 실업·경제 활성화 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선거를 앞두고 이슈를 선점해 주목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후 2017년, 대권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사병 복무기간 단축 공약을 내세웠다. 이후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18개월 복무는 2020년 6월 입대자부터 이뤄졌다.
언론은 모병제에서 촉발된 군 복무 단축 등의 공약에 ‘포퓰리즘’이라 비판했다. <한국경제>는 모병제를 “꿀 발린 제안”이라고, <문화일보>는 “현 단계에서는 환상”이라 꼬집었다.
[사설] 넘치는 ‘대권병(炳)’ 주자들, 벌써부터 포퓰리즘 경쟁인가
때 이르게도 자칭 대권주자가 범람하고 있다. 가뜩이나 퇴행적 정치과잉을 부채질하는 때 이른 선동 정치의 부상이다. 임기의 절반밖에 못 채운 시장·도지사들이 나서니 기초단체장까지 대통령 후보를 자처하고 있다. (중략) 문제는 사방에서 덩달아 뛰어오르는 자칭 대권 후보들의 싸구려 철학들이다. 이들은 증오와 분열 아니면 허구에 가득 찬 가짜 경제학을 팔고 있다.
(중략) 남경필 경기지사도 소위 대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남 지사는 ‘모병제’라는 꿀 발린 제안으로 주목을 끌었다.
- <한국경제>, 2016.09.08.
[사설] 與 일각의 募兵制(모병제) 발상, 安保 도외시한 포퓰리즘이다
시민단체나 야권 일각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되던 모병제(募兵制) 주장이 보수 집권당에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누구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발랄하게 입장을 밝힐 수는 있다. 그러나 안보(安保)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그 보루가 되겠다는 세력이라면 곤란하다. 게다가 ‘내년 대선’까지 운운하니 새누리당이 안보 포퓰리즘을 부추기는 것으로도 비쳐 황당할 뿐이다. ‘청년실업(失業) 대책’으로까지 거론하니 북한 체제는 물론 국방·통일에 대한 기본 개념이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중략)
모병제로 이뤄진 ‘30만 정도의 작지만 강한 군대’가 먼 훗날의 꿈일 수 있겠지만 현 단계에서는 환상일 뿐이다. 우선, 모병제로 ‘강군’을 만들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데, 대한민국 재정으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 <문화일보>, 2016.09.06.
2021년 ‘남녀평등복무제’…‘군 가산점’ 부활할까
올해는 ‘남녀평등복무제’다. 더불어민주당은 4·7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에 주목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 이러한 결과 앞에서 민주당은 ‘페미니즘’에 이르렀다. 민주당의 여성 친화적 정책 방향에 대한 20대 남성의 반기란 결론이었다.
이에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와 1980~90년대생 청년 의원들이 또 한 번 병역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용진 의원은 출간한 책을 통해 모병제 전환 및 남녀평등복무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는 남녀불문 40~100일 정도의 의무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혼합병역제도다. 박 의원은 “의무복무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청년 세대의 경력 단절을 줄일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남녀 차별 논란을 종식시킬 수도 있고, 병역 의무 면제·회피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민주당 20·30대 남성 의원은 ‘군 가산점’의 부활을 알렸다. 전용기 의원은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승진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을 발의했다. 그러면서 전 의원은 “군 가산점 재도입에 대한 논의도 진행할 계획”이라며 “위헌이라서 다시 도입하지 못한다면, 개헌을 해서라도 전역 장병이 최소한의 보상은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국 의원은 지자체 채용 시 군 경력 반영 법적 근거 마련을 예고했다. 김 의원은 “채용 시 군에서 활동한 전문적인 경험과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젊은 시절을 희생해서 국방 의무를 이행하면서 쌓은 경력이, 다른 곳도 아닌 공공기관에서조차 명확한 기준 없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밝혔다.
물론 병력 감축에 따른 새로운 병역제도에 대한 논의는 필연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만약 논의가 오직 20대 남성의 표를 위한 선심성 정책이라면, 문제가 된다. 무려 22년 전 헌재 판결을 뒤집기 위해 개헌을 주장하는 것 또한 본질을 흐리고, 소모적인 남녀 갈등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모병제 도입의 전제는 ‘병력 충원’ 가능성과 ‘군사력 첨단화’ 예산 확보 가능성이다. 그러나 한국국방연구원은 이러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연구원은 “2025년을 목표로 삼았을 때, 모병제 국가 사례는 병력규모 30만 명 유지를 위한 병력 충원이 매우 어렵고 20만 명 수준도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며 “병력규모를 감축하면서 최소한 현 수준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방 예산의 획기적인 증가가 필요한데, 미래의 경제 여건은 그 수준을 뒷받침하기 어려울 것(제1657호 국방논단)”이라 분석했다. 그러면서 징병제 유지를 통한 일정 수준의 병력 규모 유지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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