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한민족은 유난히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수천년간 농경민족으로 살아온 탓인지 토지 소유욕이 과도할 정도다. 물론 외적의 잦은 침략에 맞섰던 원동력도 ‘내 땅을 지키겠다’는 불굴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의 조일전쟁이다. 일본이 개전 보름 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할 정도로 조선의 국방은 무력했다. 세계 최신 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기세에 눌려 조선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연전연패했다.
일본군도 조선이 이정도로 무력할지 상상하지 못했다. 천혜의 요새 조령을 포기하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던 신립도 황당했다. 심지어 한강 방어선도 포기하며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의 도피 행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일본군은 한강을 도하할 선박이 없었고, 조선군과의 일전으로 상당한 피해를 예상했지만 한양에 무혈입성했다. 일본으로선 조선 정복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본의 조기 승전 예감은 꿈에 불과했다. 조선 정부와 관군은 예상밖의 최약체였지만 조선 백성은 달랐다. 바로 ‘의병’의 존재였다. 조일 전쟁 직전까지 일본은 백년이 넘는 전국시대를 겪었다. 일본의 내전은 다이묘끼리의 전쟁이었다. 승리한 다이묘가 패배한 다이묘의 영지를 획득하면 백성들도 그대로 따랐다. 땅은 백성의 몫이 아니라 다이묘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새로운 영주만 맞이하면 됐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백성에게도 내 땅이 있었다. 물론 양반이 지주로서 군림했지만 백성도 소규모라도 내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 외적이 침략해서 나라가 망하면 내 땅도 같이 빼앗긴다는 의식이 존재했다.
이들은 선조가 한양도 평양도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치는 행태에 분노했지만 내 땅을 지키기 위해선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거병했다. 이들은 자기 지역의 지리 사정에 밝았다. 세계 최강 미군도 마적 수준의 베트콩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던 ‘유격전’이 조선 의병의 주무기였다.
역설적으로 일본군은 조선 정부와 관군의 무능이 초래한 신속한 진격이 오히려 독이 됐다. 너무나 길어진 병참선의 길목을 의병이 차단했다. 아무리 최신식 무기 조총도 화약과 탄환이 없으면 무거운 쇠붙이에 불과했다. 군량미 조달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역사는 조일전쟁의 중요한 승전 요인으로 이순신 장군의 제해권 장악으로 인한 일본의 수륙병진전략 좌절. 명군의 참전과 함께 의병의 활약을 손꼽는다. 의병이 없었다면 조선의 승전은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LH 전·현직 직원들의 토지 투기 의혹으로 대한민국이 분노에 휩싸였다. 이들은 내부 정보를 통해 신도시 개발 지역 토지를 집중 매입했고, 수익 극대화를 위해 쪼개기 매입 등으로 투기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LH 전·현직 직원들의 토지 투기 의혹은 여권 인사들에게 불똥이 튀어 향후 정국을 예측하기 어려운 대혼란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높다. 조선의 의병은 ‘내 땅’을 지키기 위해 외적에 맞서 조국을 지켰지만, LH 전·현직 직원들은 ‘내 땅’을 소유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으로 투기도 불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LH 전·현직 직원들의 행각을 보니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명나라 망명까지 도모했던 선조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필자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