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득이한 사유'에 '부친상' 포함되나…절차적 공정에 물음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차명주식 관련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3일 고발 조치했다. 공정위는 "이 회장이 2016~2018년 지정자료를 제출하면서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차명주주가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기재한 행위는 정당한 이유 없이 허위의 자료를 제출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차명주식의 소유․관리라는 악의적인 동기 하에 위반 행위가 발생한 만큼, 위반 행위의 중대성이 상당해 이 회장을 고발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응당 취해야 할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하나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8일 세종심판정에서 열린 제1소회의에서 이 회장의 지정자료 허위제출행위에 대해 심의·의결했다. 해당 회의는 '정몽진(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케이씨씨의 동일인)의 지정자료 허위제출행위에 대한 건'을 다루는 자리이기도 했다. 비슷한 사안인 데다, 사건번호는 오히려 후자가 앞섰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태광 관련 의결서만 이날 공개한 것이다.
당초 공정위는 주간 보도계획에서 'KCC 동일인의 기업집단 지정자료 허위제출행위 제재 조치'에 대한 자료를 지난 1일 공개하고 브리핑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정은 미뤄졌다. 정몽진 KCC그룹 회장의 부친인 故 정상영 명예회장이 지난달 30일 저녁 별세하면서 브리핑과 의결서 공개 일정을 연기했다는 게 한 공정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부친상 가운데 제재 조치를 발표하는 게 조금 그래서 순연됐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의결 등의 공개에 관한 지침' 제4조 제4항에서는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의결서 등 공개 기한의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1회에 한해 2주일의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아마 공정위에서는 KCC그룹 동일인의 부친상을 '부득이한 사유'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에서 구속·수감 중인 자가 결혼·장례 등을 치를 경우 이를 '상당한 이유'로 보고 관련 절차를 밟아 집행정지를 받아주는 것과 흡사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니라면 말이다. 구속·수감 중인 자에게 집행정지 결정을 하는 건 그들이 결혼·장례를 치러야 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자유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KCC그룹 동일인은 자유가 제한되지도 않았고, 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고발 등 제재 조치 발표와 관련 자료 공개는 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대기업 오너일가가 아니라 중소기업 대표 신분으로 부친상을 당했다면 과연 공정위는 일정을 미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별일 아닌 사안으로 문제를 제기한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공정위는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결과만 정의로우면 되는 게 아니라, 절차적 정의에 근거해 결과적 정의를 실현해야 진정한 정의라고 평가하듯, 공정이라는 것도 '절차적 공정'이 지켜져야 진정한 공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정위는 이르면 다음주 중 KCC그룹 동일인의 기업집단 지정자료 허위제출행위 제재 조치에 대해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대비할 시간을 번 셈이다. 제재 수위를 떠나서 이미 절차적 공정과 투명성에는 물음표가 붙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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