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일 김영삼민주센터 사무총장이 말하는 YS
도서관 개관특별전, YS 단식 집중 조명…“민주화 결정적 계기”
“노인들 잠깐 방문하는 반공전시관 싫어…미래세대가 주 방문객”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민주화 업적을 기념하는 김영삼도서관이 지난 30일 문을 열었다. YS와 민주화 세력의 ‘반독재 투쟁’ 본거지였던 상도동 한복판,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와 동작구의 기부채납 협약으로 지상 8층짜리 거대한 문화 향유 공간이 자리 잡았다.
“YS가 생전에 강조하시던 게 있어요. ‘국민에게 내놓자’. 다 내주자. 이 뜻을 이어받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게 저희 목표였지요. 구내에 이런 공간이 많이 없어요. 개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공부하는 학생들, 책을 빌리러 온 주민들이 많이 와서 오히려 걱정될 정도에요.” -김동일 김영삼민주센터 사무총장, 지난 10일.
YS의 서명 ‘김영삼’ 서체를 본뜬 간판을 따라 정문으로 들어가면,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연결되는 기다란 서가가 시선을 압도한다.
도서관은 지하 2~3층에 자리 잡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세미나룸 및 대강당을 시작으로 △지하 1층 김영삼대통령 전시실 △1층 VR 체험관과 유아·어린이존 △2층 북카페 △3층 디지털미디어존 △4~6층 일반자료실 △7층 노인과 장애인 등 정보 취약계층 공간 순으로 구성돼 있다. 주민들 누구나 쉬어 갈 수 있게끔 조성한 옥상 정원과 북 카페 역시 눈길을 끈다.
지난 10일 오후, 〈시사오늘〉은 YS 문민정부에서 5년 동안 청와대 언론정책담당 행정관 등으로 근무했던 김동일 김영삼민주센터 사무총장과 동행해 도서관 내 설치된 ‘김영삼의 서재’ 및 ‘김영삼전시관’을 둘러봤다. 다음은 당시 시대상황의 생생함을 담은 김 사무총장의 ‘큐레이션’으로 재조명된 전시 내용이다.
-김영삼 전시관 이름이 ‘YS AGORA :민주주의의 새벽을 열다’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
“YS의 50년 가까운 정치인생을 이 좁은 70평의 공간에 다 넣으려고 하니 어렵더라. 그래서 최대한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꼽아 봤다. YS 하면 민주주의 아닌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공헌을 담았다. 동시에 이 도서관이 ‘민주주의 교육의 장’, ‘소통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고라(광장)’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말대로 전시관은 ‘학습’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전시관에 발을 디디면 ‘역사상 최초를 가장 많이 이룬 대통령’이라는 내용의 YS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전시실 한 가운데엔 ‘조선총독부 철거 게임’, ‘역사바로세우기 게임’을 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 놓여 있다. 문민정부의 공과(功過)를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반공 전시관’이라는 확실한 반면교사가 있었다. 그곳은 온통 노인들뿐이다. 그들도 한 번 방문하면 다신 안 온다. 그런 곳은 되기 싫었다. 여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교 1,2학년 까지, 즉 ‘미래 세대’들이 주 이용객이다. 도서관에서 책 하나 뽑아 온 다음, 여기(전시관)서 뒹굴면서 놀게끔 유도하는 유연한 소통의 공간이 되고 싶었다.”
-전시실 내부에 영상관을 두 개 설치할 정도로, 영상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이렇게 좁은 공간을 텍스트로 빼곡하게 채워놓으면 읽기도 힘들고, 시류에도 맞지 않다. ‘권위주의 쿠테타 정부’와 ‘YS 민주주의 정부’가 어떻게 다른지, 어린 학생들도 직관적으로 와 닿을 수 있게끔 영상에 투자를 많이 했다.”
영상실에선 4~5분 분량의 영상 7개가 순서대로 재생된다. 그중 4번째 순서인 ‘03 nation’은 YS의 개혁정신을 현대 스타일의 랩으로 재해석해 눈에 띈다. 영상실 맞은편 벽엔 YS의 대통령 재임 시절 업적 ‘빅3(변화·개혁·세계화)’가 나열돼 있다.
-전시에서 ‘개혁’ 부분이 유독 강조된 듯하다.
“지금 시대에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 많다고 본다. 솔선수범이 진짜 개혁이지, 남들 앞장세우는 개혁은 진짜가 아니다. YS는 대통령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게 재산공개, 지방자치다. 내가 청와대 근무할 적만 해도, 전국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했다. 대통령이 ‘니 군수 해라’ 하면 군수가 됐던 시대다. YS는 그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준 사람이다. 진정한 개혁가적 면모다.”
전시를 둘러보던 김 사무총장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라며 벽을 가리켰다. YS가 클린턴 미국 대통령,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가운데서 웃고 있는 그림이 놓여 있었다.
“YS는 참 독특한 친화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사람 하나 꽉 붙잡고 ‘꼼짝 마라’고 한다. 하하. 그렇게 일본이 혼자 다 차린 밥상인 2002년 월드컵도 IOC니 FIFA니 일일이 뒤로 접촉해 기어코 한·일 월드컵으로 개최한 사람 아닌가.”
전시실의 마지막은 개관특별전 ‘단식, 민주주의의 새벽을 열다’가 장식했다. 1983년 5월 18일,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YS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주년을 기념해 ‘민주화 5개항’ 요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단식 농성에 들어간 사건이 현장 사진, 실제 육성, 종이 복사본과 함께 정리돼 있다.
-YS의 단식을 특별전 주제로 삼은 이유가 있나.
“대한민국 민주화의 결정적인 계기라고 봤다. 군정의 핍박에 흩어지고 숨죽였던 민주화 투쟁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결정적 힘을 준 게 YS의 단식이었다. 단식을 알아야 80년대 민주화투쟁을 알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가 한 장의 사진을 가리켰다. 김덕룡·이민우·이기택·김영삼·한광옥·서석재·박관용·최형우 등 그 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이 모여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고 있는 사진이다.
“단식을 통해 민주화 세력들이 뭉쳤고, 이 사람들이 모여 민추협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87년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6월 항쟁을 주도한 사람도 YS다. YS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담판 끝에 ‘협상은 결렬됐다’고 완전히 몰아붙인 것이 계기가 됐다.”
-기억에 남는 YS와의 일화가 있다면.
“예전에 모 신문사 정치부 차장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거다. ‘YS랑 DJ랑 시위하다가 최루탄이 터지면 YS는 주변 사람한테 박카스를 돌리고, DJ는 우리가 왜 싸워야하는지 웅변했다더라.’ 사실 여부가 궁금해서 YS와 식사하면서 물어봤다가 앞에서 장난 삼아 핀잔을 들었다. ‘니 어디서 왔나?’고 하더라. 하하. 그 양반이 ‘DJ는 제대로 된 가두시위에 나온 적도 없다’, ‘앞장은 우리가 섰다’고 항변했던 기억이 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