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과반(過半). 미래통합당 이진복 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제시한 제21대 총선 목표 의석수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고려했을 때,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과제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를 받아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수행해 2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통합당 지지율은 28.2%로 43.0%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에 14.8%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여타 여론조사에서도 범(凡) 여권 우세 흐름이 포착된다.
그럼에도 통합당이 선거에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샤이(shy) 보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샤이 보수란 공개적인 여론조사나 정치적 토론에서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투표장에서 ‘표’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보수층을 뜻한다. 1992년 영국 총선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노동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보수당이 승리를 거둔 것을 ‘샤이 토리(Tory·영국 보수당의 옛 명칭)’라고 표현한 데서 기인했다.
역사적으로도 ‘샤이 지지층’이 선거 판도를 바꾼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시종일관 뒤쳐졌지만, 실제 선거 결과는 전혀 달랐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트럼프 지지자는 인종주의자 또는 차별주의자’라는 사회적 인식에 부담을 느낀 트럼프 지지자들이 본심을 숨긴 탓이라고 분석했다.
통합당이 기대하는 것도 이런 부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정당에서는 ‘중도층 이탈 현상’이 벌어졌다. 이러자 보수 정당에는 ‘강성 보수 지지층’만 남게 됐고, 자정(自淨) 능력을 상실한 보수 정당은 강성 보수 지지층의 뜻에 따라 더욱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보수 정당은 비이성적(非理性的)이고 비합리적(非合理的)인 ‘극우(極右)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보수 정당에 비이성적·비합리적 이미지가 씌워지면 그 지지자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된다. 이런 이유로 통합당 지지자들이 공개적인 여론조사나 정치적 토론에서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샤이 보수론’의 요체다.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문재인 정부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 또 통합당의 혁신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권자들이 투표장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다.
지난해 4월 3일 열린 창원성산 보궐선거에서는 ‘샤이 보수’의 결집이 두드러졌다. MBC경남이 의뢰하고 <리얼미터>가 선거 직전인 2019년 3월 26일부터 27일까지 실시해 28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정의당 여영국 후보는 지지율 44.8%로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35.7%)를 여유 있게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는 여 후보 45.75%, 강 후보 45.21%로 불과 504표 차 접전이 벌어졌다. 산술적으로 ‘샤이 보수’가 10% 가까이 존재했던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 역시 3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오랜 독재를 겪은 우리나라는 야당을 지지하면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심리가 있어 기본적으로 ‘샤이 야권’ 지지표가 많은 편”이라며 “게다가 지금은 탄핵 영향으로 보수 성향을 드러내기 어려운 면이 있고, 강성 여당 지지자들이 반대파들을 비난하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침묵의 나선 이론’이 작동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고 했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란, 전체 여론과 비교해 자신의 의견이 소수 의견일 경우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는 현상을 뜻한다.
다만 ‘샤이 보수’의 크기가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을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2017년 대선 때나 2018년 지방선거 때도 ‘샤이 보수’의 존재가 확인되기는 했지만, 영향은 미미했던 까닭이다. 제19대 대선에서 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24.0%의 득표율을 기록해 20.1%에 그친 선거 직전 여론조사(프레시안 의뢰·리서치뷰 2017년 4월 30일~5월 2일 수행 3일 공개)보다 4%포인트가량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승패를 바꾸지는 못했다.
2018년 지방선거 때도 전체적으로 한국당 후보들이 여론조사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결과는 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났다. 여론조사상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를 벗어난 경우에는 ‘샤이 지지층’이 승패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주당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도 3월 30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층에 야당 표가 숨어있는 것은 일반적 패턴이기는 하나 크기 자체가 크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내다봤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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