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못한 바른미래당 실험 실패했다”,“손‧안‧유 정치력 부재, 통합하는데 한계”
“새판 짜려 탈당했다, 安 답할 날 올 것”, “내년 총선, 文심판론과 87 체제의 종식”
“12대 총선처럼 파워풀 3지대 가능성↑”, “김종인‧정의화 등 통합전도사 나와야”
“유승민은 전신성형 한국당 원하는 것”, “한국당이 합리적 보수되면 통합 가능”
“수도권과 호남 민심 달라, 못 합칠 듯”, “국민 중심의 정치 혁명 이루는 게 꿈”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한설희 기자)
다른 얘기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스크린 쿼터철폐를 반대한 때가 있었다. 국산영화 보호막이 뚫리면 할리우드와의 경쟁에 밀려 고사되고 말 거라는 절규였다. 그 뒤 어떻게 됐나. 한국 영화는 천만 관객을 거뜬히 동원했다. 영화 시장의 관객 점유율 과반을 차지할 만큼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문병호 전 국회의원의 얘기를 들으며 스크린 쿼터제 철폐 때가 생각났다. 선거법과 공수처 법에 대해 묻던 대목에서였다.
그로선 국회 파행 기억이 세 번이라고 했다.
“하나는 사학법 파동이다. 과거 박근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표가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며 추위 속 장외투쟁만 몇 달을 했다. 결국 통과됐지만, 지금 바뀐 게 있나. 없다. 그다음 방송법. 종편만은 안 된다고 민주당에서 얼마나 반대하고 농성했나. MB(이명박)정부와 여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할 거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통과됐다. 지금 보면 어떤가.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권이 넓어졌다. 국민의 알 권리와 정치적 관심도도 높아졌다.”
‘지나고 보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선거법과 공수처 법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다.
“죽고 살고의 이슈가 아니다. 양당이 타협을 못할 이유가 없다. 죽자 살자 싸우는 건 양당 다 무능하고 실력이 없음이다. 여당은 어떻게든 이기려고만 하고 있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 저급한 정치만 되풀이되고 있음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그는 단 20여 표차로 낙선했다. 치열한 삼파전이었다. 실험적 신당(국민의당)의 후보로 수도권에 도전한데 따른 한계이자 진전된 가능성을 엿본 계기였다. ‘한 명의 유권자만 더 만났더라면.’ 누구보다 아쉬웠을 테지만, 그간의 마음고생이 초연함을 안겨준 듯 느낌이었다. 제로섬 게임 같은 현 정국이 미래적 관점에서 보면 해석이 달리 될 수도 있음을 아는 듯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는 제3의 지평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했다. 여전하다. 훗날 이 모습은 또 어떻게 평가될까. 당장은 알 수 없다. 지난 4일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실험과 실패 사이>
패스트트랙 정국이 마무리되는 대로 바른미래당의 탈당 러시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월 창당 후 2년도 안 된 동거 기간이 종료되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실험은 실패했을까.
문 전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했다고 본다. 솔직히 안철수‧유승민 두 분이 합당한 이유를 모르겠다. 왜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는지 그 설명을 정확히 들어본 적이 없다.”
- 외연 확대의 문제 아니었나.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유 전 대표의 목표 의식은 선명해 보인다. 개혁보수의 확장으로 바라본 것 같다. 안 전 대표는 입장이 애매하다. 개혁보수로 간 건지, 중도 확장으로 간 건지 솔직히 의중을 모르겠다. 보수로 한 발을 내디딘 것도 같다.”
지난해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안 전 대표는 당 소멸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통합의 길에 나섰다고 밝힌 바 있다.
-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했다.
“사실 지방선거 때문이다. 둘 다 답답하니까. 세력 키워보겠다고 합친 건데 각자 출마한 것보다 못한 게 돼버렸다. 합당 후 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에서도, 지지율 면에서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창당하기 2주 전이었을 게다. 갤럽조사 결과 합당하면 16%가 나올 거라고 했다. 합당하기 1주 전에는 국민의당 5%, 바른정당이 8%였다. 도합 13%였다. 그런데 정작 합당 직후 여론조사 지지율은 얼마였는지 아나. 멀쩡한 두 당이 합한 결과물은 고작 8%였다. 한 번도 그 이상 간 적이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진단도 하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다는 얘기도 못 들었다. 목표가 잘못됐든지, 과정이 문제라든지…. 두 분이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기호 3번으로 출발한 바른미래당은 시도지사와 기초의회 통틀어 26석에 그쳤다. 그 직전 떨어져 나간 민주평화당이 얻은 57석의 절반도 못 됐다. 대참패였다.
- 원인이 뭐라고 보나.
“처음부터 세팅이 잘못된 거다. 내가 안 전 대표한테 얘기한 적이 있다. 합당하려면 개혁의 합당이 돼야 한다. ‘국민여러분, 저 안철수‧유승민이가 혁신을 위해 창당했는데 제가 힘에 부칩니다. 같이 힘 합쳐서 개혁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된다고 했다. 통합선언문에는 그렇게 돼있다. 그런데 보여준 모습은 개혁신당이 아니었다. 기대를 주는 인물 영입도, 정책 이슈도, 메시지도 부족했다. 합치기에만 급급했다. 국민이 보기엔 ‘웃기지 마라’ 할 수밖에. 정치 공학적으로 세력을 키우려는 의도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그렇게 무력하게 1년 6개월을 보냈다. 두 분 정치력의 부재가 결정타라고 본다. 손학규 대표 책임도 있고.”
문 전 의원은 처음엔 통합을 반대했던 경우다.
“나로선 처음엔 궤도 이탈했다고 비판했다. 제3의 길을 걷고 기성 양당과 차별화하라는 사명을 국민이 줬다. 그런데 왜 보수로 가냐. 당시 내 입장은 그랬다. 왜 개혁 노선을 가지 않고 보수 코스프레를 하느냐.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1년 동안 관심도 안 뒀다.”
바뀌기 시작한 것은 최고위원이 되면서부터다.
“정부가 못할수록 바른미래당의 그릇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치 않게 세팅이 잘 돼있더라.”
- 어떤 면에서?
“내년 총선의 가장 큰 이슈가 현 대통령 심판론이다. ‘문재인이 좋으냐 vs 싫으냐’의 문제다. 문 정권이라는 게 자칭 진보 정권이지 않나. 대립 구도에서 보면 야당의 주요 표밭은 보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강경 노선의 극우보수나 수구보수와는 바른미래당은 함께할 수가 없다. 개혁보수와 중도를 끌어안는 게 유일한 살길이다. 근데 중도 아이콘인 안철수, 개혁보수의 유승민이 우리에게 있지 않나. 두 사람이 2% 정도 부족하다. 마침 손학규라는 경륜과 노련한 정치인이 있더라. 손 전 대표가 보완하면서 세 명이 결합하면 대박 나겠구나 생각했다. 손‧안‧유 연대를 계속 주장한 이유다. 근데 잘 안 됐다. 셋 다 통합할 능력이 못 됐다.”
문 전 의원은 “유 전 대표보다 손 대표에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더 많이 했다”고 했다.
“손 대표가 3지대 판짜기를 했어야 됐다. 양당을 뺀 3지대는 폭도 넓고 에너지도 있다. 맏형인 손 대표가 3지대 판짜기에 헌신했어야 됐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했다. 근데 말만 하고 자기 당권 지키는 데만 몰두했다. 갈등만 유발했다. 통합이 되기가 어려웠다.”
- 통합이 잘 됐다면 성공했을까.
“개혁엔진의 동력을 살려나갔다면 성공했다. 당부터 통합하고 개혁 이슈나 비전을 내세워 바깥에 있는 원희룡‧정의화‧김종인‧반기문 등과 세력화했다면 희망이 보였을 거다. 그러기는커녕 자체 통합도 못해 문제였지만.”
-그래서 탈당한 건가. 본인의 탈당 명분은 뭔가?
“나는 판을 만들려고 탈당했다. 손‧안‧유 세분이 흩어지는 분위기에선 희망이 없다고 봤다. 유 전 대표는 탈당하려는 분위기였고, 안 전 대표는 오지도 않았다. 손 대표는 정체불명의 3지대를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슨 희망이 있느냐, 새판 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 전 의원은 지난 10월 탈당하며 당권파 체제와 결별했다.
- 탈당 당시 안철수 전 대표의 복귀를 촉구했다. 나름 안 전 대표한테 보내는 메시지로도 읽혔다.
“손‧안‧유 연대가 불발되자, 차선책으로 주장한 것이 ‘안유’연합이었다. 정당이 성공하려면 대선주자 내지는 간판스타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안‧유가 있다. 지금도 지지율 조사하면 3‧4‧5위를 하곤 한다. 그 정도면 큰 거다.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 ‘안철수가 유승민과 잘 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도 전해지지만, 난 그래도 3지대나 새 정치의 흐름을 만들려면 두 분이 손을 잡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다만 새로운 비전과 깃발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다시 뛰는 안‧유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자 했다.”
<3의 길로 가는 길>
생각해보면 문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할 때도 망설이지 않고 직진한 스타일이었다. 안 전 대표가 광야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호탕한 걸음걸이로 그의 뒤를 따랐다. 국민의당 창당을 도왔고,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시간이 지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번엔 안 전 대표가 선두로 깃발을 들었다면 이번엔 그가 먼저 든 경우였다.
- 안철수 전 대표는 언제 올 것으로 예상하나.
“직접적 교감을 하는 상황은 아니다. 타이밍을 생각하면 늦어도 1월 달엔 오지 않을까 짐작된다. 신당을 창당한다면 여러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변혁’(현 새로운 보수당)에 힘을 싣겠다든지, 손 대표랑 하겠다든지, 12월 내로 의견을 표명하지 않을까.”
유승민계를 중심으로 안철수계가 함께했던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은 지난 8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갖고 공모전을 거쳐 ‘새로운 보수당’이라는 당명을 발표했다. 중도보수를 표방하지만 보수당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안철수계의 합류가 불투명해졌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안 전 대표가 복귀할 경우 독자노선은 어렵다고 보나.
“어렵다고 본다. 이번엔 어느 한 사람의 주도로 되지 않는다. 3년 전엔 안 전 대표가 밀고 가면 따라왔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모든 걸 다 협의해서 결정하는 구조다. 시간이 전보다 많이 걸린다. 신당 창당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많이 투여된다. 다만 이번 총선만 바라보는 게 아니고, 길게 보고 독자노선으로 간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 안‧유가 다시 합치게 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구도로 전개될 것 같은가.
“나는 내년 총선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간 양당 구도로 싸운다는 게 상상이 잘 안 간다. 제3당이 지리멸렬해도 과연 양당구도로 갈까? 사실 의문이다. 87 체제가 너무 끝자락에 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87 체제 안에서 살고 있다. 화제는 87 체제를 가능하게 했던 12대 총선으로 넘어갔다.
“85년 12대 총선이 정치권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만약 신민당 돌풍이 없고 관제야당인 민한당이 제1야당이 됐다면 어땠을까. 전두환이 두 번 더 집권했을지도 모른다. 신민당 돌풍이 불면서 제1야당이 교체되고 군사독재를 종식시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87 체제가 등장한 거다. (김영삼‧김대중) 양김 시대가 열렸고, 두 분 다 대통령을 했다. 이명박‧박근혜‧노무현 세 대통령은 양김의 아류들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그게 끝났다고 본다. 원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서 끝났어야 했다. 거기서 못 끝내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왔다.”
문 전 의원은 처음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것도 87 체제의 종식을 바라는 국민 열망이 투영된 것으로 봤다.
“87 체제를 종식해달라고 국민이 안철수를 불렀다. 백면서생이던 양반이 어느 날 갑자기 대선후보로 올라설 정도로 폭풍이 몰아쳤다. 국민의당도 전국 투표 2위를 했다. 돌풍이었다. 탄핵 국면 때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 것도 새 변화에 대한 요구였다. 박근혜에서 문재인으로 교체하라는 게 아니었다. (장미 대선에서) 나는 안 전 대표한테 ‘새 대한민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안했다. 결국은 문 대통령 쪽에서 쓰더라. 안 전 대표는 무엇을 했나. 광화문에서의 국민들 외침에 단 1%도 응답한 게 없다고 본다. 그 열망과 에너지는 쌓여가고 있다. 20대 국회 당시 민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한국당 심판. 두 번째는 정치 혁신. 20대 국회에 혁신이 있었나? 아무것도 없다.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 변화의 열망이나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에너지는 쌓여있는데 그걸 받아먹을 그릇이 없는 거다. 지금.”
- 3지대가 신민당처럼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본다. 내년에 잘만 그릇을 만들면 제1당도될 수 있다. (12대 총선) 그때는 1‧2등을 뽑는 중선거구제였다. 민정당인 여당 후보 1명은 무조건 당선되는 구조였다. 전두환 독재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신민당이 사실상 제1당인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였다.”
물론 “지금처럼 소선거구였으면 결과가 어땠을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85년 12대 총선 결과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신민당은 67석을 차지하며 전두환의 민정당(148석)에 이어 단숨에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 그래서 신당의 명분은 뭔가. 아까 말한 정부 심판론인가, 87 체제의 종식인가. 내년 총선의 어젠다로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 다다. 심판론이 우선이긴 하다. 현실적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원래 선거는 하나 갖고 하는 거다. 그냥 ‘문재인이 좋냐, 싫으냐.’ ‘87 체제 종식론’은 몇 가지 이슈 잡아서 가야 한다. 허울 좋은 민주주의였을 뿐 기득권의 대변론자였다는 것을 정확히 지적해야 한다. 87 체제의 종식이 의미하는 것은 진짜 국민을 대변하는 세력이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걸 뜻한다. 그게 문 심판론과 맞물려서 가야 할 거다.”
전략은 “수도권 지향의 신당이 돼야한다”는 점이다.
“수도권 흐름이 우선이고 원칙이다. 수도권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호남‧영남은 플러스알파로 생각하고 있다. 신당은 ‘새가치 비전+문재인 심판’ 이면 된다. 새정치·새비전·새가치로 선거에서 승부가 가능하게 돼야 한다. 3년 전 국민의당이 그 노선이었지만 잘하지를 못했다.”
<3지대 리더>
과거 신민당 판은 YS라는 리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판은 누가 그 역할을 하게 될까.
- 3지대 리더는 누가 돼야 한다고 보나.
“이번 3지대는 어느 한 사람이 주도할 수 없다. 연합 세력으로 가야한다. 어떻게 보면 그게 더 좋은 거다.”
이 대목에서 문 전 의원은 “3지대 판이되려면 둘 중 하나”라고 했다.
“첫째는 강력한 지도자가 있을 때다.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 처럼. 강국이 주변 군소국을 하나로 통합해 나가는 거다. 두 번째는 통합의 전도사가 있을 때다. 난 지금이 춘추전국시대라고 본다. 한 사람이 깃발 들고 ‘따르라’는 시대가 아니다. 연합 정치를 해야 성공하는 시대다. 널려있는 구도를 잘 꿰고 통합해 연합정치를 하는 통합의 전도사가 필요하다.”
- 통합의 전도사로서 적임자로 보면 누구인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영환 전 의원? 나도 그 역할을 하려고 한다.”
- 김종인‧정의화 등 모두 전면에 나서기엔 세대교체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각도 나올 듯하다.
“그분들이 앞장선다는 얘기는 아니다. 70년대 생 이후가 나서야 한다. 한편으로 보면 젊은 층이 나약한 것도 같다. 40~50년 전에 과감하게 대통령에 나서겠다는 젊은 주자들이 있었다. 프론트 정신을 갖춘 젊은이들이 필요할 때다.”
- 역대 정치권을 보면 여야 막론하고 청년 정치인을 액세서리로 쓰는 면이 있던 것 같다.
“맞다. 그동안 장식용으로 썼다. 과감하게 그분들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고 역할을 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게 새로운 정치일 거다.”
- 수도권 중심의 젊은 정당이 되려면 새로운 간판도 중요하지 않나.
“윤석열 검찰총장 같은 사람이 신당을 만들면 주목을 받겠지만, 정치인이란 게 갑자기 나오기는 어렵다. 프랑스 마크롱도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됐지만, 장관 등 정치 이력은 상당했다. 30~40대 유력 정치인들 보면 지방의원이나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나 김수민 의원 같은 이들을 전면에 세운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아이디어도 있고.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본다.”
<보수통합과 마지노선>
바른미래당 안유계에 러브콜을 보낸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나 김무성 전 대표 등은 반문(문재인) 연대 기치의 보수 대통합이 필요하다는 쪽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도 보수 대통합에,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중도보수 대통합을 제안하는 중이다.
- 결국 한국당과의 통합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함께할 가능성은 어떻게 되나.
“애매하다. 속된 말로 민낯에 화장이라도 해서 선거 치르자는 게 한국당 얘기다. 그들이 말하는 보수 대통합이란 화장 좀 진하게 한 한국당 밖에 안 된다. 나나 김종인 전 대표는 한국당 중심이면 안 된다는 거다. 한국당이 해체되고 제3신당 중심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승민 전 대표는 그 중간이다. 절충형이다. 표현하자면 한국당을 전신 성형 정도 해서 쓰자는 것이다. 결국 한국당 중심의 보수 대통합이냐 3지대 신당 중심의 삼국지 노선이냐. 요 싸움이다. 지금의 개혁보수들은 한국당 중심의 보수 대통합이 현실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유승민 전 대표의 보수 재건 3대 원칙에 대해 동의하나?
“동의한다.”
유 전 대표는 얼마 전 황 대표의 보수 대통합 제안에 대한 조건으로 탄핵의 강을 건널 것, 낡은 집을 허물 것, 새집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한국당이 어떻게 해야 통합이 가능한가?
“합리적인 보수로 간다면 가능하다. 친박(박근혜) 정리하고 탄핵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 한국당의 김영우 의원이 얘기한 것처럼, 탄핵당하게 된 원인제공자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보수의 가치를 반공주의에서 탈피해 제대로 된 보수의 길을 가야 한다. 그 정도로 환골탈태한다면 큰 발전일 거다. 지금은 한국정치가 기형화돼지 않나. 진보 보수가 극단으로 갈려 싸움만 일삼고 있다. 진보도 왜곡된 진보, 보수도 왜곡된 보수다. 결국 제3당이 나와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면 양당 스스로 합리적인 보수, 합리적인 진보로 바뀌어야 한다. 공생관계인 한쪽이 바뀌면 다른 쪽도 바뀌게 돼있다. 그러나 지금은 수구 보수와 강한 진보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그러니 양당이 환골탈태 하는 것보단 3지대가 등장해서 정치를 바꾸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 한국당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할 거라고 보는 건가.
“과연 포기할까 싶다. 친박 굴레를 벗어나는 것도 힘들 것이다. 한국당은 기본 몸체가 친박이다. 그 자체가 한국당의 중심이다. 황 대표가 (친박을) 정리한다? 못할 거다. 자기도 친박에 얹혀있다. 본인 목숨 날아가는데 과연 하겠나. 김영우‧김세연 같은 의원들이 불출마한 것도 문제다. 소는 누가 키우나.”
문 전 의원은 그런 점에서 ‘어게인 12대 총선’에 무게를 더 두고 있었다.
“한국당이 지금은 지지율이 높지만 한계가 있는 지지율이다. 황교안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냐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친박‧영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확장성의 한계론도 있다. 개혁보수가 황 체제를 대체해 확장성을 높인다? 그것보다는 3지대를 통해 확장성을 넓혀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잘하면 3지대 신당이 역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당의 비영남권 현역도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3지대 판이 커질수록 한국당은 12대 총선의 민한당처럼 쪼그라들 수 있다는 얘기다.”
- 신당 중심의 빅텐트론으로 갈 수 있는 마지노선은 언제까지로 보나.
“1월 말까지다.”
- 실패하면 다음 단계는 뭔가.
“(한국당과의) 보수 대통합 과정을 맞을 수밖에 없겠지.”
원치 않는 차선책이지만 그리 되면 내년 총선은 “민주당 vs 한국당 양강 구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시대 흐름상 분명 양강 구도로 가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내년 총선은 100% 장담 못한다.”
- 얼마 전 권은희 의원과도 만난 것으로 안다.
“권은희 의원은 탈피했더라. 지역구가 호남이지만 당선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새로운 정치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권 의원은 안철수계 의원 중 유일하게 바른정당계 중심의 신당 창당 발기인대회에 참여한 상태다.
<또 다른 3지대, 호남>
바른미래당의 분당은 호남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3지대발 정계개편도 분화시키는 모습이다.
- 호남을 기반으로 바른미래당 당권파와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간의 3지대 빅텐트론도 부상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할 수는 없는 건가.
“제일 좋은 것은 다 합치는 거다. 양당 빼고. 난 그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지대 신당이 굉장히 파워풀해진다면 호남 정치인들도 올 거라고 본다. 지금은 호남 민심이 민주당이 못마땅해도 3지대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칫 그 과실이 한국당으로 갈까봐서이다. 만약 1대 1대 1로 대등한 삼국지 시대가 오면 호남도 3지대를 찍을 수 있다. 민주당도 생각보다 조국 사태, 유재수‧백원우 건으로 무너지고 있다. 아마 2~3월쯤 되면 대형 부정부패 사건이 터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은 듯했다. 당장 내년 총선을 함께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시각도 보태졌다.
- 이유는.
“수도권 야당하고 호남 야당 하고 같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 야당은 문 심판 전면에 내걸고 선거 이슈로 내세워야 한다. 호남은 그렇게 못한다. 여당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심판까지는 못 가는 게 호남이다. ‘민주당이 개혁을 완수해라’ 하는 입장이다. 거기서 전략 차이가 나온다. 호남노선은 문재인 비판, 수도권은 문재인 심판이다. 비판까지는 같이해도 심판 까지는 공조가 안 되는 것이다. 여야 관점으로 보면 준여당 비슷하게 갈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비판하면 선거를 치르기 힘들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이상 이해관계가 어쩔 수 없다.”
문 전 의원은 원래 천정배계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교감을 나누던 사이였다. 3지대가 양분화된 상황에서 대안신당에 있는 천 의원과는 어떤 얘기를 했을지 궁금했다.
“천 의원도 한계를 알고 있을 거다. 답답할 것도 같더라.”
이렇듯 선거 표심의 지형적 유불리와 가치 노선에 따라 3지대 길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그의 얼굴에도 이상과 현실의 갭이 교차되며 착잡함이 어렸다.
환기할 겸 신당의 내일에 대해 물었다.
- 3지대 신당 성공을 위해 어떤 이슈들에 집중할 계획인가.
“공공개혁은 3지대 신당이 내세워야 할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공공개혁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민주당이 해야 하는데 지지기반이 공공부문이라 하지를 못하고 있다. 신당이 성장하면 공공개혁, 조세개혁에 나설 거다.”
문 전 의원은 전남 영암이 고향이며 1979년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해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학생운동‧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87년 전후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인천에서 터를 잡고 약자들을 위한 무료법률상담소 운영 등 인권 변호사와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았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며 인천부평갑에서 17‧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민의당‧바른미래당을 거쳐 현재 무소속이다.
- 끝으로 정치 철학, 소신을 말해 달라.
“국민중심의 정치혁명을 성공시키고 싶다. 진짜 국민 편의 정치를 하는 게 내 목표고 소신이다. 예전 국민의당 이름도 내가 지었는데,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 국민은 이미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의 대변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안철수를 불러낸 거였다. 국민 반란이었다. 국민 편의 정치를 하라는 요구였다. 리모델링으로는 어렵다. 완전히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되돌아 나오는 길에 든 생각은 그거였다. ‘어쩌면 바른미래당의 분당조차 큰 위에서 보면 새 길을 위한 실험적 전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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