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포럼] 정청래 “북한 핵개발 목적은 체제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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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포럼] 정청래 “북한 핵개발 목적은 체제 안정”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10.10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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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58)〉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어머니의 꿈’이 곧 ‘정청래의 꿈’이라며, 조국통일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어머니의 꿈’이 곧 ‘정청래의 꿈’이라며, 조국통일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또 대북정책 강연이야?”
“그러게. 좀 많이 하긴 했지?”

10월 8일 <북악정치포럼>이 열린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강의실. 앞쪽에 붙은 강연 주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발견한 학생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고 성과 중 하나로 꼽히는 분야가 대북(對北) 정책인 만큼, 그동안 비슷한 내용의 강연이 자주 이뤄졌던 탓이다.

그러나 강의실 분위기가 ‘싫증’에서 ‘흥미’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단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이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까닭이다. 정 전 의원은 짤막하게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더니, 자연스럽게 문재인 정부 정책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90분이라는 시간을 가득 채웠다.

“조국통일은 내가 정치 시작한 이유”

먼저 정 전 의원은 어려운 정치 이야기 대신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의 꿈’이 곧 ‘정청래의 꿈’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제 고향이 충남 금산입니다. 6·25 때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가면서 차지했던 곳이죠. 제가 10남매 중 막내라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낮에 국군이 오면 밥해주고, 저녁 때 인민군이 오면 또 밥해주고 그러셨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어느 날은 아버지가 인민군한테 끌려갔다가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이상하다 싶어서 눈치를 채고 아버지 신발도 못 벗게 하고 바로 읍내 지서에 가서 신고를 해 살아남은 적도 있었습니다. ‘내 남편이 인민군한테 협박을 당해서 협조하기로 한 것 같다. 그래서 바로 신고하러 왔다’ 이랬던 거죠. 만약에 바로 신고를 안 하고 집에서 하루 잤으면, 다음 날 국군한테 죽는 거였어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신 거죠.

제가 대학을 가고 나서는, 어머니가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됩니다. 저희 동네는 산골 오지라, 동네에서 서울로 대학을 간 최초의 대학생이 바로 저였습니다. 얼마나 기대가 컸겠습니까. 그런데 아시다시피 제가 데모를 해서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까. 제가 서울 구치소에 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어요. 55분간 울기만 하시더라고. 그러고는 집에 가시기 전에 딱 한 말씀 하시고 가셨어요. ‘막내야, 삼시세끼는 꼬박꼬박 챙겨먹어라’라고. 근데 너무 충격을 받으신 나머지, 사흘 뒤에 어머니가 도라지 밭에서 쓰러져서 반신마비가 온 거예요. 그리고 6개월 후에 돌아가셨어요. 그때 제가 생각을 했죠. ‘이제 나는 어머니를 위해서 살겠다. 저희 어머니뿐만 아니라 제 어머니 같은 더 많은 어머니들. 치열하게 한국 현대사를 살아오신 어머니들은 어떤 나라를 꿈꾸면서 사셨을까.’ 이걸 고민하기 시작했던 거죠.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나라 잃은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고 하지 않나. 분명 독립 국가를 꿈꿨을 것이다. 둘째, 전쟁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쟁 없는 평화로운 국가를 꿈꿨을 것이다. 셋째, 구치소에 면회를 와서 하셨던 말씀처럼 삼시세끼 걱정 안 해도 되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가를 꿈꿨을 것이다. 넷째, 막내를 낳았는데 민주화운동 한다고 감옥에 가고 그러지 않는 민주화된 국가를 꿈꿨을 것이다. 이제는 민주화도 됐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국가가 됐으니, 통일 하나 남았죠. 그래서 저 정청래는 분단극복 조국통일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 옳은 길로 가고 있어”

정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통일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정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통일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어머니의 꿈을 말한 정 전 의원은, 그것이 곧 자신의 꿈이라며 통일을 ‘필생(畢生)의 숙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통일을 위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상황만 말하면 정쟁이 되죠. 그래서 저는 독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69년 독일에서는 우리로 치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습니다. 빌리 브란트 수상이라고, 동방정책을 추진한 분이죠. ‘언제까지 서독 동독으로 나뉘어 살아야 하는가. 좀 잘 사는 우리 서독이 먼저 손을 내밀자’ 했던 게 동방정책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햇볕정책이죠. 그렇게 빌리 브란트 수상이 손을 내밀면서, 서독과 동독은 약 40여 차례 정상회담을 합니다. 이후 19년 동안 서독이 동독에 579억 달러, 우리 돈으로 60조 원 정도를 지원해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서독이 동독에 1년에 3조 원 정도 지원을 하니까 동독 사람들의 서독에 대한 반감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을 먹고 살게 해주니까요. 자연히 동독 사람들은 서독을 좋아하고 동경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사민당이 보수 정당인 기민당에게 정권을 빼앗겨요. 우리 같으면 그동안의 정책을 폐기하겠지만, 동서독 국민들의 반발이 워낙 심하다 보니 헬무트 콜 수상이 동방정책을 계속 유지하기로 합니다. 그 결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고, 헬무트 콜은 최초의 통일독일 총리가 되죠.

여기서 우리 상황을 봅시다. 한반도에서 북핵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이유가 뭘까요. 먼저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로 위협을 느낀 탓이 크고, 그런 상황에서 노태우 정권이 북방외교로 중국, 소련과 국교를 맺었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이때 위험을 감지한 북한이 1992년 김용순 비서를 워싱턴에 보내서 미국과 수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이걸 거절하죠. 곧 망할 나라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러니까 북한이 NPT를 탈퇴해버립니다. 이게 1차 핵 위기죠.

2005년에는 9·19 공동성명을 합니다. 비핵화에 대해서 합의를 한 건데요. 지금 미국과 북한 두 정상이 하려고 하는 합의는 사실 그때 다 이뤄진 거죠. 그런데 그 다음 날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사건이 터집니다. 김정일 비자금이 거기 들어있는 것 같으니 동결하자고 했던 거죠. 거기서 판이 깨져버립니다. 그러고 나서 2006년 10월 9일에 1차 핵실험이 강행됩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북한이 원하는 건 체제 안정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비핵화와 체제 안정 이 두 가지를 테이블에 놓고 미국과 북한이 25년 동안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뭐가 좋으냐. 꼭 해야 하느냐. 철도를 연결하면 물류 이동의 중심지가 되고, 북한의 지하 광물 자원도 활용할 수 있고 등등 장점이 많습니다만, 저는 이걸 제일 강조하고 싶습니다. 전쟁의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요. 몇 년 전에 우리가 대북확성기를 설치하고 북한이 원점 타격한다고 대응했을 때, 하루에 34조 원이 우리나라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연평도 포격 때는 두 시간 만에 8조 원이 빠져나갔어요. 이뿐만이 아니라, 평화가 정착되면 국방비에서 25조 원 정도를 줄일 수가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돈이냐면, ‘아기 낳으면 2000만 원씩 통장에 꽂아주겠다’ 해도 6조 원밖에 안 듭니다. 전 대학생 무상등록금을 해도 10조 원이면 돼요. 그래도 9조 원이 남아서 65세 이상 어르신들께 기초노령연금을 100만 원으로 올려드릴 수 있는 돈입니다. 내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려고 하는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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